밝은 방, 어두운 방 그리고 그 소통의 경계

김용호展 / KIMYONGHO / 金勇昊 / video.installation   2006_0421 ▶ 2006_0426

김용호_예술 역사 연구 STUDY FOR THE HISTORY OF ART_단채널 영상_00:03:50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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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421_금요일_03:00pm

서산시 문화회관 충남 서산시 읍내동 510번지 Tel. 041_665_1779 culture.seosan.go.kr

밝은 방, 어두운 방 그리고 그 소통의 벽 ● 2005년도 8월에 기획된 개인전에서 나는 인류가 문화라는 것을 형성해 나가기 이전의 세계는 아무런 경계가 없는 무경계의 연속체였다는 것을 가정하고, 인류 문화가 시작되면서 세계는 인간에 의해 설정된 경계들에 의해 각 분야간의 미세한 벽이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우리가 거시적인 안목으로 그 동안의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과학·기술을 비롯한 각종 분야에서 인간이 이룩한 성과들이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그 자체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려는 인문주의 미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종이나 캔버스에 물감으로 어떤 것을 표현하는 예술은 회화이고, 3차원의 공간에 입체적인 것을 만드는 활동은 조각이라는 관념이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이 직면한 21세기의 사회 현상은 모든 것을 구획 지어 파악하는 이러한 전통적인 접근 방법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경직된 구분과 분리는 계급 사회에서나 가능했으며, 아날로그적인 발상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제 계급 사회는 종말을 고했으며,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는 디지털의 힘에 밀려 역사의 잔재로 남아 있을 뿐이다.

김용호_벨라스케스의 팝 이노센트 10세 연구 STUDY FOR THE POP INNOCENT X BY DIEGO DE VELAZQUEZ_단채널 영상_00:08:30_2006

최근 나의 관심은 인간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형성된 미세한 경계 구조들을 허물고, 현재와 과거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은 미지의 땅을 일구어나가는 개척민의 정신과도 같다. 세분화된 경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에서 어떤 새로운 형태를 찾아내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회화, 조각, 무용, 건축, 음악, 문학, 연극, 영화, 정보통신 등의 모든 장르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벽'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인터미디어(inter-media)'를 통해서 개척해나가는 것이 예술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멀티(multi)' 혹은 '인터(inter)'라는 접두사가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변화를 예감케 한다. 사실 현대의 새로운 전자 매체들은 멀티 어플리케이션(multi application)이 가능하게 되어서 누구나 쉽게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매체들을 사용한 예술 작업에서는 진정성(authenticity)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언어인 0과 1이 만들어내는 메타 형태와 비트 매핑 형태를 통해서 일상의 현상들을 변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즉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고정적이고 자기 동일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처리되고 변형되기 위한 과정적 이미지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는 다른 형태의 이미지에 쉽게 동화되는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로 우리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놀라움을 접하게 되고 새로운 인식의 허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예술의 역사에서 '해프닝(happening)'이라는 장르가 회화, 조각, 음악, 연극 사이의 미지의 영역에서 인터미디어(inter-media)적인 특성을 가지고 생겨났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시도는 회화, 조각, 사진, 연극과 영화 등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장르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특정 장르로 범주화되지 않고 전통적인 매체 사이의 경계들이 가지는 규칙이나 규범을 탈피하려는 개방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비디오, 영화 비평가인 영블러드(Gene Youngblood)는 "모든 예술은 실험적이다. 그렇지 아니한 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어떻게 생각하면 현대 예술(contemporary art)로 대변되는 예술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김용호_예술 역사 연구 STUDY FOR THE HISTORY OF ART_단채널 영상_00:06:30_2006

프랑스어 보자르(beaux-arts)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번역해서 우리가 현재까지 사용해오고 있는 '미술'이라는 용어는 과거의 예술 형식에서는 통용될 수 있었지만,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제한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은 채 여전히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그 동안 '미술'이라는 용어로 이해했던 예술 형식들은 21세기에는 너무나도 다변화되고 다양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미술'이라는 용어로는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현대에 와서 미술이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직접적인 메타 형태로 바뀐 것이라면, 이 낱말에 가장 근접한 의미를 지닌 것은 예술을 포함하여 우리의 삶을 통합적으로 제시해온 '문화'라는 말일 것이다. 만약 미술이라는 용어 대신에 이렇게 통합된 형식으로서의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미술의 영역은 보다 확대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화를 정의하기 위해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그의 말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서의 예술의 가능성을 찾아보기를 원하는데 그에 따르면, "극히 자연적인 생물학적 종들은 서로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지만 서로 결합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새로운 개체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인공의 산물인 문화적 변화는 다른 전통과의 소통과 결합을 통해 강력한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문화의 영역에서는 잡종이 순종보다 더 강력하고 혁신적이고 건전하다"는 것이다. 잡종이 건전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말속에서 우리는 그 동안 이루어져 온 순수 지향적인 예술 활동과 현대의 예술 활동이 마주친 문제 사이에 작은 간극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미술은 문화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나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미술에 대한 재검토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서 나는 다양한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혼성과 잡종의 형식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작업에서 얻어진 이미지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화된 것도 아니다. 단지 잠재적인 이미지이며 아마도 질 들뢰즈(Gill Deulez)가 말한 '아이온(aion)'적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아카이브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불러내어 마우스를 사용해서 오려내고, 깎아내고, 패러디 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미지는 디지털 스캔화 작업을 거치게 된다. 대상을 시뮬레이션(simulation)하는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단지 이미지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변형된 전자적인 것일 뿐, 그것이 모방한 대상들은 사라져버린다.

김용호_예술 역사 연구 STUDY FOR THE HISTORY OF ART_단채널 영상_00:06:30_2006

이번 전시의 주제는 「밝은 방, 어두운 방 그리고 소통의 벽」이다. 이 주제에서 '소통의 벽'은 앞에서 언급한 구획적인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투명한 경계를 의미한다. 경계가 '투명'하다는 것은 그 경계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공간은 하나의 벽을 사이에 두고 밝은 방과 빛이 완전히 차단된 어두운 공간으로 분리되어있다. 이 두 개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영상과 설치 작품들은 서로 대립되는 특성을 가지는 동시에 상호 보완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우선 밝은 방에는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이미지들이 벽에 걸려 있다. 어두운 방에는 우리의 의식에 잠재된, 그리고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설치되어 있다. 밝은 방은 우리가 빛이 있는 상태에서 눈을 뜬 상태로 바라보는 세계, 즉 실재를 나타낸다. 반면에 어두운 방은 빛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또는 우리가 눈을 감은 상태에서 우리의 의식에 떠오르는 상상적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이다.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경계로서의 벽은 상징성을 가지게 되는데, 벽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영역을 만들어내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영역을 차별화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며, 하나의 영역에 대응하는 다른 영역을 가정한다. 벽은 인간의 그러한 본능, 즉 '차이'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차이' 지어진 두 개의 영역은 어떤 형태로든지, 어떤 과정을 거치든지 간에 서로 이어져 있다. 분리된 두 개의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 상징적인 가치를 띤 기호가 존재한다. 그 기호는 언어일 수도 있고, 상징적인 표시일 수도 있다. '문((門)'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벽으로 나뉜 두 공간의 경계는 한 쪽 공간이 다른 쪽 공간의 간섭을 차단하면서 자기보호의 기능을 하는데, 자기보호 기능에는 항상 '가둠'의 의미가 따르게 된다. 벽은 분리된 두 공간을 정비하고, 계획하고, 세분화시키면서 두 공간의 흐름을 차단한다. 그러나 나는 벽이 만들어 내는 차단의 구조에서 두 공간을 소통시키는 형식을 찾아보려고 했다. 닫히고 분리된 공간은 예술가로서의 현재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창작 형식을 제한하는 각 장르들 사이 가로놓인 경계에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나의 생각이다. 장르 사이에 가로놓인 벽에 소통의 문을 내기 위해서 나는 플로산 트라비스(F. Travis)가 말한, 소통의 역할을 담당하는 문의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다. 트라비스는 "존재하고 있는 성스러운 모든 개구부, 모든 경계는 그것이 인체의 출입구일 것이고 인간이 창조한 공간의 통과 경계일 것이며, 공격을 받기 쉬운 생사가 걸려 있는 것이므로 방어의 패턴의 접점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나는 트라비스의 말을 통해서 '문은 방어의 접점이기도 하지만, 성스러운 개구부'라는 것에 상호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김용호_예술 역사 연구 STUDY FOR THE HISTORY OF ART_단채널 영상_00:10:30_2006

기술적인 측면에서 나의 근작들은 영화를 일종의 표현주의적 회화로 접근했던 몇몇 아방가르드 영화 작가들의 기법을 참고하고 있다. 그들은 촬영용 필름 위에 선을 긋고 물감을 흩뿌리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 그들만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했다. 그들의 작업은 하나의 프레임안에 새로운 형식들을 혼합하려는 시도였다. 그들은 다양한 표현 방법의 하나로, 잘라내기와 붙이기라는 콜라주 전략을 응용하게 되는데, 그들이 시도한 이러한 색칠과 합성의 방법은 이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기술적인 혁신으로 쉽게 조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미지들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의 기능은 어떤 하나의 디지털 이미지가 별개의 여러 레이어(layers)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이미지들을 하나의 프레임안에 혼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여러 개의 영상 레이어(layers)가 합성된 디지털 이미지의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을 촬영한 한 장면보다 더 모듈적이다. 컴퓨터의 편집 소프트웨어는 레이어(layers)를 각각 분리해서 조정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를 통한 자유로운 분리와 합성조작은 이제 그 동안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 현상' 전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또한 개체를 분리하고 합성하는 조작 방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과도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조작방법은 혼성 모방과 인용이라는 포스트 모던적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한 화면 안에 결합하는 기능을 획득하면서 우리의 감각들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원판 혹은 다른 비디오 소스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은 디지털 합성을 거쳐서 손쉽게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게 된다. 디지털 합성을 통해서 한 장면 안에 수백 개의 이미지 레이어(layers)를 만들 수 있으며, 레이어(layers)들을 자유자재로 분리하거나 다시 통합시킬 수 있다. 합성 편집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컴퓨터 시대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아닌 공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존재하는 공간으로 믿게 만드는 이미지를 만들어왔던 그 동안의 회화, 사진, 영화 등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기술 발전의 다음 단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영화에서 경험한 이미지들은 이제 시간에 구속되는 회화의 특정 분야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와 별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지금까지 영상 이미지를 '키노-아이(kino-eye)'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해해왔지만, 이제는 움직이는 붓을 의미 하는 '키노-브러쉬(kino-brush)'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김용호_소비-생산자 PROSUMER_단채널 영상_00:05:45_2006

이번 전시회에서 소개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나는 콜라주 원리를 차용한 마스크 효과들을 사용했다. 이 효과로 얻어진 이미지는 실사 필름과 합성하는 과정에서 해상도가 조작되는데, 나는 특수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각 이미지 개체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처리하고,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되지 않을 정도의 잡티를 전체 이미지 위에 덧씌워서 두 개의 이미지가 서로 만나면서 환상을 자극하는 새로운 장면이 연출 되도록 했다. 다른 이웃한 개체와 엄밀하게 분리될 수 없으면서도 분리될 수도 있는 각 이미지 개체의 모서리는 다른 이미지 매체의 모서리와 뚜렷하게 식별할 수 없는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애매한 경계를 가진 이미지들은 결국 인간의 눈과 카메라의 시각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 상식적인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봉합된 형태의 이미지인 것이다. 이러한 나의 작업은 그리스의 전설에 등장하는 화가 제욱시스(Zeuxis)가 표현하려고 했던 리얼리티의 본질을 깨닫고, 환영(illusion)을 디지털의 힘을 빌려 새로운 리얼리티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리얼리티를 보강하기 위해서 채도와 명도를 조작하게 되는데, 이것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진 각 개체의 이미지들을 한 화면 안에 인위적으로 결합해서 현실 재현의 차원을 넘어서 또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 상징적인 그림 형식들을 통해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시각화하기 위해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사용한 기법, 한층 자연스럽고 움직이는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가 시도한 기법, 이 두 사람이 고안한 2차원 평면에 깊이 있는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기법, 그리고 근대의 사진과 영화에서 사용되는 기법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기법들은 그림을 바라보는 주체를 꼼짝 할 수 없게 강요한다. 더욱이 현대의 컴퓨터 스크린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을 사로잡아 강제로 몰입하게 한다. 발전되는 기술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우리의 시각에 점점 더 그럴듯하게 인식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는 더욱 요지부동의 구속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스크린의 사각 틀이 만들어 내는 경계는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서 더욱 그럴듯한 환영을 제공하지만, 거기에는 속박이 강하게 작용한다. ●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는 이렇게 기계가 만들어내는 리얼리티는 마치 거울과 같은 차가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순진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외적인 리얼리티는 결국 내적인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영혼, 꿈, 상상력을 억누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류의 역사는 비물질적이고 포착하기 힘든 대상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상력을 일깨우기보다는 물질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추구하는 레이스에 이미 돌입한 상태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허구 또는 환상이라 불리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의지로써 창조활동에 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각적인 감금을 통해서 몰입에 이를 수 있고 이 몰입의 경험이 우리 각자의 세계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몰입을 통해 우리의 지적 능력은 더욱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능력으로 향상될 수 있으며, 창조의 원천은 고갈되기는커녕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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