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라는 깊은 심연

최지윤 회화展   2006_0524 ▶︎ 2006_0603

최지윤_내 꽃을 보았니? I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73cm_2006 최지윤_내 꽃을 보았니? II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73cm_2006

초대일시_2006_0524_수요일_06:00pm

노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3번지 Tel. 02_732_3558

최지윤-자연이라는 깊은 심연자연에 대한 정서적 반응의 이미지화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자연을 통해 받은 느낌과 감정을 결정화시켜 이를 회화로 구현하고자 하는 모종의 욕망을 본다. 그 욕망은 자신의 몸과 의식을 부단히 자연대상에 이입하고 그로인해 자연은 또한 자신의 분신으로 투영되어 함께 유기적으로 생존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일과 겹쳐진다. ● "바람결에 따라 움직이는 꽃들에게 말을 걸어본다...그리고 그 꽃이 내 화면에 다른 형태의 꽃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다가온다."(최지윤) ● 자연과 내가 이렇게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목숨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위안과 위무는 동양예술의 핵심이었다는 생각이다. ● 동시에 그 자연은 꽃과 줄기, 바람과 대지로 기호화되어 이 기호들이 일종의 퍼즐처럼 여러 상황, 문장을 만들어 화면을 채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자연에 대한 재현과 달리 자연 대상을 간추린 상징들을 차용해 장식적이며 감각적인 화면구성을 선보이고 있다. ● 그러나 그것은 분명 작가의 심리적인 반응을 야기한 자연에 대한 구체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거친 바람이 부는 대자연 앞에서 작은 들꽃들이 마구 뒤척이는 상황성은 마치 우리네 삶에 대한 은유와도 같다. 작가 자신에 의해 취택되고 선별된 자연 대상들이 화면에서 재구성되고 연출되면서 자연에 대한 단상과 느낌을 극화하는 수단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흔들리는 나약해 보이는 들꽃에서 인간을, 자신의 초상을, 우리네 삶의 허망과 무망함을 동시에 겹쳐보았다. ●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모를 들꽃들의 자태를 보면서 개인적인 향수를 떠올리고 자신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모든 것들을 반추해보는 한편 순수함과 들꽃이 지닌 자생력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을 매개로 해서 작가는 자기 생을 거울처럼 들여다본다. 그 거울에 비친 자연은 자연이면서 나이기도하고 나이자 자연이다. 나와 자연은 하나의 얼굴, 같은 몸에서 자라나는 두 팔과 같다. 따라서 자연을 그리는 것은 결국 자기 얼굴과 몸과 마음을 그리는 일이다. 그것은 동시에 자연이란 수면에 비친 창백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래서 자연은 깊은 심연이고 그림 역시 그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에 해당한다. 심연을 본 자들은 심연을 보기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동시에 심연을 얼핏 본 이들은 더 깊은 바닥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망을 누그려 트릴 수 없기에 늘 고통스럽다. 모든 예술과 삶은 그런 깊이에의 강요이고 고통에 다름 아니다.

최지윤_꽃에게 말걸기 XII_캔버스에 혼합재료_32×41cm_2006
최지윤_봄속으로 날아가기III_장지에 혼합재료_각 46×29cm_2004

작가의 그림은 어느 면에서는 자연에서 받은 격한 감동이 앞서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이지적인 화면 구성에 따른 조형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그리고 이 둘은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공존한다. 그림은 그려진 부분과 종이콜라주, 발묵의 효과와 불투명한 색채의 층위를 단면으로 지닌 부위, 실제 자연을 연상시키는 배경과 허구적인 자연의 대비, 추상적인 색 면과 꽃의 구체적인 묘사, 가시적인 영역과 비가시적인 영역(바람, 호흡, 기운과 같은 것들)의 공존, 명료한 면의 분할과 유기적인 곡선의 교차 등으로 공존하면서 조율된다. 이 같은 대비적인 요소들의 충돌과 결합은 다소의 파격 미와 함께 기존 동양화의 관습을 다양한 회화의 총체적인 전략으로 재구성하는데 기여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동양화단에 불어 닥친 탈장르와 이질적인 요소들의 융합, 지필묵이란 재료에 잠긴 정신성과 그로인해 가능한 효과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이탈하는 한편 특정 소재의 습관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이른바 표현과 회화 자체의 특질을 평면의 화면에서 자유롭게 풀어나가는 맛들이 오롯이 베어있는 그림이다. 반면 기존 동양화에서 흔히 그려지는 꽃그림의 도식이 앞서 언급한 효과들과 다소 절충적으로 결합하고 있기도 하다.

최지윤_들꽃-소리_장지에 혼합재료_159×386cm_2006
최지윤_내 꽃을 보았니? V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73cm_2006

작가는 바람에 뒤척이는 여러 들꽃들을 패턴화 시켜 올려놓았다. 실제 대상들을 스케치한 후 이를 약간 변형시켜 만든 자취들이다. 따라서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이면서도 작가에 의해 상징적인 형상으로 재연된 꽃인데 그것들은 황량하고 광막한 대지위에서 기념비적으로 융기하거나 화병에 꽂혀 있다. 앞의 것들이 거친 자연에 맞서 견뎌내는 들꽃의 생명력에 대한 환기라면 후자의 것은 그 들꽃을 자기 일상의 공간으로 옮겨와 연출한 것이다. 더러 나비들이 그 꽃 주위를 선회한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은 조선시대 초충도나 민화 그림을 연상시킨다. 평면적인 장식성과 함께 자연, 생명체에 대한 극진한 관찰과 묘사, 그리고 그 대상들에 맺혀있던 기복적인 신앙, 믿음의 체계가 새삼 개인적인 치유와 마음의 위안, 기억으로 대체되는 한편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화면구성 아래 환생하고 있다. ● 그리고 이 꽃들은 움직인다. 우리 눈이 구불구불 올라가는 식물의 줄기나 한 방향으로 쏠려가는 꽃들의 자태를 뒤쫓아가다보면 망막과 마음들은 마냥 울렁인다. 배경인 화면 바탕 면에도 자잘한 선들이 스크래치 되어있거나 짧고 희미한 선들이 부유하듯이 그어져있고 자연대상, 그러니까 산이나 바위 등을 암시하는 듯한 분절된 직선들 또한 각지게 그려지거나 콜라주로 부착되어있다. ● 그것은 얇은 저부조로 화면 위에 올라와있다. 그로인해 슬그머니 환영감과 거리감 등이 부감된다. 그리다 망친 종이를 부분적으로 잘라 붙이면서 시작된 이 작가의 콜라주 기법이 화면 안에서 자아내는 효과가 흥미롭다. 분방한 붓질과 여러 색채를 한 번에 밀어 만든 색 면, 움직이고 진동하는 덩어리들이 놓여있고 그 위에 들꽃들이 콜라주 되어 부착되어 있다. 윤곽을 날카롭게 오려 부착한 콜라주 부분은 캔버스천이나 종이 위에 색채를 올려놓고 나이프로 속도감 있게 밀어낸 자취들이다. 그것은 손으로 그리고나 칠한 것과는 또 다른 맛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흡사 영상적 이미지, 주사선의 흐름, 화학적 이미지의 단면들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그런 효과가 그림에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서 감각적인 맛을 안긴다. 그려진 부분과 콜라주가 각각 지니고 있는 선의 맛과 윤곽, 종이 바탕에 수용되는 부분과 저부조로 부감되는 것 사이의 환영을 야기하는 낮은 깊이, 생생한 자연의 현장성과 이미지로 절취되어 고착된 부분 간의 대비가 주는 야릇한 이질감이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 박영택

Vol.20060523e | 최지윤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