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백 개의 별

박미현 회화展   2006_0601 ▶︎ 2006_0615 / 월요일 휴관

박미현_종이에 검정 펜_50.2×70.4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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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개막_2006_0601_목요일_05:30pm

가람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0번지 Tel. 02_732_6170 www.garamgallery.co.kr

박미현-백 개의 별"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통일성이다."(조르다노 부르노) ● 박미현은 종이에 작은 원형을 가득 그려 넣은 후 바탕을 까맣게 칠했다. 짙고 어두운 배경으로 하얀 점들이 별처럼 빛난다. 캄캄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총총히 떠있는 별들을 바라 볼 때와 같은 감흥이 모락거리는 것이다. 그려졌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밀하고 섬세한 그림이다. 점으로 남은 빈 공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어둠처럼 칠하는 행위는 그 별을 보이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내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득 점/별들을 세보고 싶다. 하나, 둘. 셋...백 개의 별이 떠있다. 낭만과 신비주의를 두른 별 그림이 새삼스럽다. 그런가하면 확고하고 명징한 형상과 기하학적인 자취로 가득한 도형들도 그려져 있다. 어린 시절 수학시간에 했던 작도가 연상된다. 컴퍼스와 삼각자를 가지고 여러 도형들을 그렸던 기억이 은연중 부감되는데 이 단호한 형상들은 김근태나 변용국의 드로잉을 떠올려준다. 딱딱하고 엄정한 형상들의 다른 한편에서는 편한 손놀림으로 솔가지 등의 자연물을 그린 목탄 드로잉이 부드럽게 다가와 시선과 마음을 풀어준다. 몸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저 먼 곳의 우주 그리고 그 대상을 도형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기하학의 자취, 그 사이에서 문득 눈을 떨구어 자기 눈앞의 생생한 자연/생명체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선회한다. ● 작가가 그린/작도한 몇몇 형상들은 이른바 플라톤 입체라고 부르는 5가지 정다면체를 연상시킨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늘을 탐구하는 일은 결국 구체적 球體的행위라고 여겼고, 때문에 구면좌표법의 이해가 필요했다고 한다. 여기서 입체는 정신의 물질화와 형상의 창조라는 근원적이며 영원히 계속되는 창조행위에 대한 또 하나의 은유적 전망을 제공한다. 해서 가장 본질적인 입체로는 정4면체, 정8면체, 정6면체, 정12면체, 그리고 정20면체가 있는데 이는 플라톤이 세계를 이루는 4가지 기본요소로 말한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연관된다. 그러니까 흙은 정6면체, 불은 정4면체, 공기는 정8면체, 물은 정20면체와 관계가 있고 마지막 5번째 요소는 에테르이다. 아울러 플라톤은 창조주가 질서를 만든 도구는 본질 형상과 원초의 수였다고 보았다. 그런가하면 힌두철학 전통에서도 정20면체는 우주 창조의 원판, 설계도로 이해된다. 새삼스레 박미현은 그와 같은 도형들을 작도해서 이를 하나의 회화로 끌어올려 옛사람들의 그 사유를 다시 내면화하는 한편 신비적인 명상과 수행적 차원으로 삼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오늘날 현대사회와 미술이 상실한 영성과 신비적 사유의 환생이란 의미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믿음과 고행, 수행의 차원에서의 그리기, 형태들을 명상하고 그 의미들을 조심스레 추적하기!

박미현_종이에 검정 펜_50.2×70.4cm_2005
박미현_종이에 검정 펜_50.2×70.4cm_2005
박미현_종이에 검정 펜_50.2×70.4cm_2005

파브리아노 수채화지나, 2절 아르쉬 종이를 4등분한 한 조각에 PILOT에서 나온 HI-TEC-C 0.4mm검정 펜으로 원형의 점은 비워두고 나머지 부분은 새까맣게 칠했다. 다른 작품은 앞서 언급한 도형들을 펜과 연필, 자, 컴퍼스를 이용해 작도했다. 오랫동안 미술가, 건축가, 장인들은 그리기의 도구로 실용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도구인 컴퍼스와 직선 자, 연필 등을 사용했는데, 그것들은 분명 신성한 속성을 지닌 도구들이었을 것이다. 그 도구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모든 창조물의 원리의 비밀을 풀어내는 일을 가능케 하는 행위가 추구되었는데 기하학이 바로 그것이다. 기하학이란 형상을 통해 우주의 근원적 일자一者와 조응하는 것을 말한다. 하늘의 보이지 않는 힘을 수적 비례를 통해서 나타내고 숫자들은 만물에 내재해있는 신성을 암시하는 상징이 된다. 수비학적인 계산을 통해 사물은 천상에 존재하는 행성이나 그에 해당하는 속성들과 조응하는 것으로 자리매김 되는데, 여기서 수의 원리는 모든 존재의 구성요소이며 조화는 결국 수를 말한다. 가시적인 영역에서의 미美 역시 경이로운 수數속에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는 도형들 역시 의미를 지닌 상징들이다. 고대 인도에서 원은 불멸하는 무아의 세계, 즉 공空을 나타냈다. 원은 하나의 씨앗이며 거기서 모든 것이 생겨나고 소멸되는데 그 원은 생겨나고 소멸하는 다수의 세계를 포함하는 통일성 그리고 전체성을 의미한다. 그런가하면 삼각형은 최초의 면적을 지닌 도형이고 우주의 태모를 의미하는 반면 정사각형은 자연을 의미한다. 이 정사각형을 가로지르는 대각선과 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의 비율이 바로 황금비율이다. 그러니까 모든 자연물은 기하학적 최소 단위인 원과 삼각형과 사각형의 무한한 반복으로 환원될 수 있고, 그 도형들이 만들어내는 형상들은 모두 최초의 창조의 울림을 나눠받고 있는 것이다. 이 기하학 작도에서는 어떤 행동도 하찮은 것이 없으며 세상의 창조 과정에 대해 심오한 상징을 갖지 않는 것 역시 없다. 아울러 작도 중 실수한 것도 지우지 않았는데, 마치 인생에서 저지른 잘못을 돌이킬 수 없듯이 작도 도중에 실수한 것도 그대로 남겨두고 그것들과 함께 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박미현은 바로 그 기하학을 드로잉화 했다. 수학적이고 기계적인 도면과 같은 드로잉은 엄격하면서도 여전히 비밀스러운 대상의 독해이자 가시적인 세계 너머를 연상시켜 주는 초현실적인 환영을 제공한다. 이 별과 도상은 일종의 매개이자 열쇠이다. ● 박미현의 이 드로잉은 고도의 집중 속에서 그려진다. A4크기의 종이에 육각형, 원형, 작은 사물들의 외형을 떠내 그 빈 내부를 직선으로 꼼꼼하게 채워 넣기도 했는데, 그 부분은 검정으로 완벽하게 칠해져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가늘고 섬세한 펜을 움직여 화면을 검정으로 물들이듯 칠해나가고 덮어나가는 방식은 다소 무모해 보인다. 손이 가지 않으면, 칠하지 않으면 채워질 수 없다. 여기에는 치밀한 계산과 엄청난 시간의 노동, 뾰족하고 깊은 몰입이 요구된다. 어쩌면 이 작업은 자신을 채근하고 독려하면서 의도적인 집중으로 몰고 가는 명상이나 수행을 연상시킨다.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그리기, 철저한 계산과 노동이 요구되는 제작행위는 작품의 아이디어와 그것의 완성까지의 과정을 온전하게 일치시킨다.

박미현_종이에 검정 펜_38.6×28.5cm×2_2004
박미현_종이에 검정 펜_57.2×76.5cm×2_2006

브루노 보체르트는 신비주의와 창조성을 연관시키며 상당수의 시각 예술가들이 신비주의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체로 영감에 의존하고 있고 불분명하고 무질서한 것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그렇다. 아울러 닥쳐올 무질서에 혼란스러워하지만, 그런 갈등을 소화하여 형태를 부여하여 위안을 찾는 존재들이다. 박미현 역시 그런 의미에서 자신도 모르는 질서의 혼돈, 의식의 균열을 무의식적으로 통합하려는 의지가 그림으로 표명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작업하는 순간만은 아무리 어깨가 아프고 힘이 들어도 어떤 이유에서이지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곤 한다고 고백한다. '분열'에 대한 통합 본능, 혹은 치유와 명상으로써의 작업인 셈이다. ● 오직 검정 펜으로만 칠해진 이 그림은 온통 까맣다. 어느 날 검은 색이 작가에게 '환'하게 다가왔기에 선택했단다. 작가는 색채를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편인데 직관을 벗어나는 색은 그 의미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게 되므로 곧잘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개념적인 작업이라도 미술은 물질로 소통하는 매체이기에 몸에 들러붙지 않은, 몸에 내려앉지 않는 색이나 그림은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다. 해서 마치 거미처럼 자신 속의 검정을 끊임없이 뽑아내듯 그리고 칠한다. 또 한편, 검정은 죽음의 영적인 영상이자 자아의 해체와 상징적 죽음을 의미하는 색이다. 작가는 그 검정을 통해 '완전한 죽음'을 탐했던 것 같다. 이미 있던 것의 완전한 죽음, 그 끝에 닿아야 무엇이든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가하면 밤하늘과 우주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그 검정 바탕 면은 더욱 필요했다. 나는 작가가 원형의 점들을 비워두고 나머지 부분을 검정으로 칠한 그 그림들을 보면서 설원기의 '은하', 오병욱의 '별', 김유선의 자개로 빛나는 '은하 풍경'. 그리고 토마스 루프의 별빛 가득한 밤하늘 사진을 떠올렸다. 하늘(우주)이나 바다는 넓고 크고, 인간의 눈앞에 늘 현존하지만 개별 인간이 그것의 실제 깊이를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같은 대상은 인간에게 숭고함을 안긴다. 인간의 시측과 실측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들 말이다. 따라서 그런 깊이를 지닌 것들은 경험보다는 믿음(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그것은 그저 광대한 평면으로 보이지만 그 평면은 깊이와 상상을 품은 평면이다. 리터럴literal한 평면이 아니라 어떤 신비한 에너지를 내뿜는 그런 평면인 것이다. 그것은 몽상가/화가들을 유혹하지만 잡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불가능한 것들을 납작한 평면에 올려놓는다. 이 화면 역시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나가는 기이한 공간을 지녔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매혹적인 평면이 존재하는 한 회화 역시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평면의 속성과 조응하는 대상을 찾고 그려나가는 것이 박미현의 회화인 셈이다.

박미현_종이에 검정 펜_38.6×28.5cm×2_2004
박미현_종이에 연필_35.9×24.4cm×4_2006

별을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쉽게 얻을 수 없는 '영성'을 '공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미현은 작업을 통해 근대를 관통해오며 잊혀져왔던 영성을 찾고 수행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는 육각형, 원형 모티프를 주로 사용하는데 수비학적 전통에서 이 육각형의 6은 미, 질서, 조화의 수인데 확대된 의미로는 대립되는 모든 것들 사이의 조화를 의미하는 수이다. 아울러 원(만다라 모티프)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전체성을 상징한다. 이 그림들은 일종의 만다라와 유사하다. 요가 수행과 명상법 중 얀트라Yantra라는 도상을 명상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정사각형 안에 동심원, 그리고 원 안에 위로 향한 삼각형과 아래로 향한 삼각형이 무수히 교차되는 구도를 지닌 도상이다. 이는 우주에 잠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창조력을 상징한다. 작가가 '만다라'에 몰두 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자기 내부를 봉합하고 치유하려는 본능, 분열에 대한 자기통합적인 본능'일 수 있는 한편, 그 행위의 과정은 결벽증적이며 완고하다. 그러한 완고함은 만다라를 그리는 행위(과정) 자체의 수행성과 통해있다. ● 작가는 특별히 각 모티프가 주는 상징적 의미보다는 그간 집착해왔던 색채와 형상을 통해, 그것이 품고 있는 '모종의 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의 파장 속에 자신이 놓여있음을 깨닫곤 한단다. 자기 자신이 삶을 움직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먼 곳의 자력이 자신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무한神의 구조'일 수 있다. 보이지 않지만 늘 인간과 더불어 존재하며, 인간-주체의 결정과 그것을 벗어난 듯 보이는 '우연'마저 포괄하는 힘, 모른체할 수도, 완전히 무시할 수 도 없이 그 힘들은 순간순간 작가 자신의 삶과 그림 속으로 끝없이 간섭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 힘에 의해 밀려나온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그림들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밤하늘과 총총히 떠있는 별들, 그리고 엄격하고 단호한 기하, 형태의 자취들....... ■ 박영택

Vol.20060602b | 박미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