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의 뒤편

The back side of Merrymaking展   2006_0601 ▶︎ 2006_06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아트앤드림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601_목요일_06:00pm

김미숙_이봉규_한문순

기획_안수영

갤러리 아트앤드림 서울 강남구 산사동 542-3번지 Tel. 02_543_3162 www.artndream.co.kr

×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시한부 선고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거나, 독실한 신자로 사후 세계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살아있음은 곧 기쁨이다.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듯. 그 기적에 기뻐하며 열심히'노는 것'이 기적을 누리는 자들의 책무이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구조는 놀이의 방편으로 진화한다. 더 많은 이들이, 더 다양하고, 더 흥미롭게 놀아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현대인의 공통된 화두이다. 극한의 공포 이전 단계. 즉, 죽음 이전의 생은 다소 극단적 서술형'삶은 유희다'라는 가정을 만들어낸다. ● 유희하는 인간! 본 전시는 3인의 작가가 삶은 유희라는 공통의 전제하에 유희를 각기 다르게 바라본 작업들이다. 주목할 것은 유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유희의 진행과정, 또는 유희가 종료된 지점의 시공간에 초점을 맞춘다. 유희의 뒤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도처에 존재하지만 두려움에 선뜻 꺼내어 살펴보지 못한 미증유의 공포? 아니면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관찰된 우울한 삶의 편린들? 뒤편을 살피고 감지해 내는 몫은 당연히 관객의 몫이지만...

이봉규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06
이봉규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06

동네 어귀에 버려진 놀이터를 채집한 이봉규는 놀이터의 기능에 주목한다. 사회적 당위성이나 문화적 배려에서 건설된 동네 놀이터에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고, 이미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전통적인 프레이밍 기법과 다큐먼트 형식을 따른 그의 작업은 목적과 기능을 상실한 공간으로서의 놀이터를 우리네 유희물의 잉여치surplus value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잉여치로서의 놀이터가 아니라 기능을 상실한 그것들에게 인위적인 세례를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에서 매우 낯선 이미지로 환생시킨다. 인위적 세례란 장노출을 준 뒤, 인공 조명을 여기저기 터뜨림으로써 빛의 축복을 가하는 행위이다. 이는'잔치가 끝난 서른'을 읊조리거나,'막이 내린 무대'를 흥얼거리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작가만의 독특한 접근법이다.

김미숙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6
김미숙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6

김미숙은 유년기 놀이의 기억으로부터 작업을 풀어 나간다. 그네타기와 철길 건너기 놀이에서 공포를 느끼고 머뭇거렸던 기억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듯, 혼자 놀기를 실행한다. 비교적 다루기 용이한 대상들을 선택하여 망설이거나 머뭇거림 없이 놀이를 즐긴다. 예컨대 식물이나 꽃잎을 놀이의 대상으로 선택함으로써, 그네나 철길이 가져다준 알 수 없는 놀이의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나뭇잎과 꽃잎을 자유롭게 수집하고 나열하며, 흥겨운 촬영과 분방한 디지털 기법으로 놀이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이는 유년기 놀이에서조차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규칙들과 동료의 따가운 시선이 존재했던 까닭에서 자유로워지고픈 자기 치유의 방편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완벽한 놀이로서의 혼자 놀기가 과연 관객의 시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문순_무제_디지털 프린트_70×100cm_2006
한문순_무제_디지털 프린트_70×100cm_2006

인간과 친근한 동물과의 관계를 유희의 또 다른 전형으로 주목한 한문순은 인간과 개, 소, 닭 등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는 영화『남극일기』를 리메이크한「Eight Below」의 훈훈한 서사구조. 즉, 인간과 개의 상투적인 감동을 단호하게 거부한 추적 방법이다. 이를 테면, 포크레인으로 상처 난 산을 배경으로 관객을 뒤돌아보는 소의 눈, 창백한 쇼윈도에서 가격과 나란히 병치된 강아지의 눈동자는 우울함을 넘어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동물 애호가적인 시각과 일정한 거리를 둔 그녀의 작업은, 유희의 방편으로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가학적 행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인간에게 고하는 일종의 경고로 들린다. 다시 말해 가학적 유희가 부메랑 되어 자학의 흉기로 돌변하고야 말 것이라는 경종. 이는 성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확장만을 거듭하는 유희에 대한 따끔한 꼬집기이기도 하다. ■ 안수영

Vol.20060604d | 유희의 뒤편 The back side of Merrymak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