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의 발견

近園 김양동 개인展   2006_0524 ▶︎ 2006_0605 / 화요일 휴관

김양동_과일을 머리에 얹은 부인_58×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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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524_수요일_06:00pm

통인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5층 Tel. 02_733_4867 tonginstore.com

빛의 언어 : 김양동론 ● 생명력은 아름다움 이전의 원초적인 미의식이다. 선사시대 암각화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붓으로 쓴 조형이 아니라 쪼고 갈고 새긴 조형이다. 모필의 필획 이전에는 돌과 칼의 새김(刻)이 표현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김양동은 이러한 새김의 원초성과 그것이 내뿜는 생명력을 화폭에 거침없이 풀어 놓았다. 그는 원래 모필로 글씨를 쓰는 서예가이자 돌에 칼로 문자를 새기는 전각가 이다. 그가 젊어서부터 익히고 섭렵한 것은 부드러움에서 강함까지 무궁한 모필의 변주를 향유하는 세계이다. 모필이 부드럽기는 봄누에가 비단실을 토하는 것과 같고 강하기로는 도끼와 같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는 모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변화가 적고 단순하지만 보다 원형적이고 본질적인 조형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바로 이른 시기 미술에 보이는 '새김의 선'이다. 그 선은 모필이 표현해내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 깊이 감추어진 본성에서 이끌어낸 질박한 이미지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모필의 세계에서 새김의 세계로 이끌고 나온 것인가? 그는 선의 원형, 더 나아가 생명력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인문학적인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는 선의 비밀을 엉킨 실타래를 풀듯 하나둘씩 풀어나갔다. 1996년 그의 첫 번째 전시회 도록에서 그가 찾은 해답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김양동_독서_44×60cm
김양동_시집 가는 날_46×57cm

"원시인들은 모든 생명에의 원초적인 에너지원(源)으로서 태양을 숭배하며 신으로 받들고, 신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의 표현으로써 빛살을 새긴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 그 선의 비밀은 바로 빛살인 것이다. 작가는 빛살을 신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표현하였다. 빛살만큼 생명력이 충만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 없다. 그것은 태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결국 '태양'까지 거슬러 올라간 그의 탐색은 그의 작품세계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빛살의 이미지가 화폭의 중심으로 등장하고 그 이미지에는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빛살을 나타낸 방식이다. 얄팍한 종이 위에 어떻게 그처럼 강렬한 빛살의 이미지를 담을 수 있을까 의아해 할 수 있지만, 그는 철저하게 전통에 의거하여 그것을 성공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전통 한지, 전각의 새김, 탁본에 의한 간접적인 표출방식은 우리의 염려를 단번에 씻어주었다. 전각가이기도 한 그는 흙판에 칼의 맛을 살려 이미지를 새겼다. 이를 도판으로 구우면 새김의 칼맛에 불의 우연성까지 곁들여진다. 이것을 세계에 가장 질기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한지, 그것도 오래된 조선시대 한지를 대고 탁출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이미지에는 작가의 에너지, 자연의 우연성, 그리고 역사적 깊이까지 갖추게 된다. 인위적이면서 자연적인 표현방법을 통해서 작가는 그 커다란 빛을 담을 수 있었다. 이 작업을 마친 뒤 비로소 작가는 그 여백에 관련된 시나 산문을 모필로 적어 마무리한다.

김양동_작은 집에서 마음 닦는 일_42×63cm
김양동_전원생활의 흥취_45×57cm

전통은 원형을 향한 그의 또 다른 여정이다. 작가가 창출해낸 이미지에서는 전통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질박한 형상과 나이브한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다. 세련된 감각이나 기교의 유희 따위는 전혀 작가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물을 뚫고 나온 물고기처럼 그 어느 것에도 속박 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이미지 속에 펼쳐져있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은 딱딱하거나 건조하지 않다. 그가 누정(樓亭), 특히 달팽이처럼 말려 올라간 누정의 지붕 끝선과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는 흥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춤을 추고 있다. 가무(歌舞)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의 흥겨움이 이미지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그는 누정, 재실(齋室)과 일주문(一柱門)이 한국적인 미학과 정신이 함축된 공간으로 작고 소박하지만 간결하고 단아한 품위가 뛰어난 조형어법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최근 평범한 땅으로 통해 신비로운 전통을 투시하게 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갑골문과 같은 이른 시기의 고문자나 소전시대 분청사기에 보이는 인화문을 바탕에 깔고 그것들을 토채(土彩)로 엷게 지워나가는 작업을 하고있다. 지운다기 보다는 역사의 신비 속에 가둔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 위에 옥수수 지푸라기를 이리저리 뿌려 놓듯 붙여놓는다. 마치 겨울철 논바닥의 살얼음처럼 편안하고 푸근하고 토속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의 원형 속에 발견되는 조형세계가 빛난다. 역사적 소재를 지워가는 작업은 낡은 것의 향수를 넘어서 신비로움을 더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오래된 시간의 기억을 유추하는 작가의 시도는 역사의 심연(深淵)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김양동_태고암_59×93cm
김양동_한국미의 원형_115×152cm

태양을 향해 시위를 겨누고 있는 작가는 빛살을 통해 무한한 생명력을 쏟아내었다. 원형을 향한 그의 탐색은 이제 전통으로 옮겨가 보통의 땅 속에서 보배로운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와 같이 예지와 신비로움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과 농경문화의 근본인 흙의 생명력을 조화시킨 것이다. 원형과 전통을 모색하는 그의 작업은 각기 달라보여도 빛의 언어라는 점에서 상통한다. 과도한 기교와 감각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그의 탐색이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원초적인 조형에 대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기에 충분하다. 빛의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예술 세계가 현대 예술의 새로운 지표가 되기를 바란다. ■ 정병모

Vol.20060605b | 近園 김양동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