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미학

손동준 전각展   2006_0607 ▶︎ 2006_0616

손동준_그리움_먹, 판화지, 전각_28×34cm_2006

초대일시_2006_0607_수요일_06:00pm

한국화 대안 공간 갤러리 꽃 지원 청년작가 기획초대전(NO. 2006-04)

갤러리 꽃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7-36번지 B1 Tel. 02_6414_8840

전각이란 인장을 새기는 작업이나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이다. 전각은 중국의 상주(商周)시대에는 새(璽)라고 불리고, 한(漢)나라 때는 인장(印章)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그 뒤에 인장의 역사는 계속되며, 명나라에 이르러 문팽(文彭:1498-1537)이라는 전각 전문 작가가 등장하여 전각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수많은 전각가와 전각 이론가들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인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거의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대부분, 주로 도장이 사용되기 시작한 고려시대에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고, 조선으로 전승되어 동인(銅印)과 철인(鐵印) 등이 만들어지는 등 폭넓게 애용됐으며, 이름난 이로 숙종 때의 허목(許穆)이 유명했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금석학을 연구하여 많은 전각 작품을 남긴 바 있다. ● 전각은 다양한 서법과 서체에 대한 숙련된 예기(藝妓)는 기본이요, 반서(反書)의 특별한 조형미를 간파할 수 있는 직관력, 서예의 기본기, 돌을 다루는 세밀한 조각기술 등을 모두 섭렵해야 바른 전각 한 작품을 얻어낼 수 있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의 결정체이다. 전각이 서예 분야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유는 모든 예술분야를 통틀어 서예가만이 전각을 올바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손동준은 준비가 되어 있는 작가로 평가된다. 이미 서예가로 이름을 굳히고 그 역량을 인정받은 이력을, 칼로써 붓을 대신해 억세고 기운찬 필력의 담대함을 그대로 인면(印面)에 옮겨 놓고 있는 것이다. 그 웅장한 기세는 다름 아닌 예술 전통의 오랜 흐름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온 맥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손동준_봄소식_먹, 판화지, 전각_34×25cm_2006
손동준_禪_먹, 판화지, 전각_37×29cm_2006
손동준_전각작품사진_2006

실제 이번 전시 출품작 중에 매우 흥미로운 서체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젠 잊혀진 훈민정음과 궁체 등 우리의 옛 서체들을 응용하여 작품화하는가 하면, 새로운 서체들의 조형적 실험을 선보이고 있다. 인상적인 글씨체를 하나 들자면 필획보다는 써진 모양을 보는 재미가 으뜸인 조충전, 마치 새를 피해 벌레가 꿈틀대는 형국이 무척 시각적인 재미를 더한다. 나아가 글자가 아닌데 사물이나 상징적인 대상을 글자처럼 조합한 예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전각에 초서(草書)를 쓴다는 점이다. 바람결에 풀잎이 흩날리듯 유려한 리듬감이 생명인 초서는 웬만한 서예가도 자신감 있는 필력이 아니고선 일반 종이에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서체이다. 그럼에도 초서를 완성될 글체의 조형성을 미리 감안한 반서(反書)로 쓴다는 점, 붓이 아닌 예민한 칼끝으로 돌에 새겨 넣는다는 것은 보통 공력과 테크닉이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고도의 집약된 예기(藝妓)는 그의 남다른 서예가로서의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일 것이다. ● 아무리 좋은 작품도 마침표는 낙관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좋은 작품의 성패도 낙관에 달렸음은 자명하고, 그 낙관의 요체는 전각이 좌우한다. 그러나 글(主文)에 대한 애착이 낙관에까지 이르지 못해서일까, 대부분의 작가들은 일작일각(一作一刻)은 고사하고 단체 기획전에 출품한 모든 작가들이 한 전각(체)으로 통일해 찍는 안타까운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손동준 작가의 전각전이 빛을 발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의 덕도 있겠다. 낙관문화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전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김윤섭

Vol.20060612e | 손동준 전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