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美人圖)

김화현 동양화展   2006_0614 ▶︎ 2006_0625

김화현_샘 (The Fountain)_장지에 채색_145×8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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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14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_2006_0618_일요일_03:00pm

갤러리 진선 서울 종로구 팔판동 161번지 Tel. 02_723_3340 www.galleryjinsun.com

쇼윈도에서 당신의 눈길을 애원하는 미소년 ● 2005년 12월의 어느 날, 쌀쌀한 날씨 속에 사간동 갤러리 라인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던 여자 두 명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갤러리의 쇼윈도 안을 들여다본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키득거리며 볼을 붉히며 좋아라한다. 왜 그랬을까? 쇼윈도 안에 이상야릇한 분홍빛 무드의 그림이 한 점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동양화는 동양화인데 때깔이나 내용이나 연출구도나 영 범상치 않다. 그림 속 주인공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순정만화풍의 '꽃미남'으로, 백호피를 깔고 엎드린 채 오달리스크의 전통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며, 아름다운 파란 눈동자로 구경하는 이를 바라보고 있다. 이 야릇한 작품의 제목은 「와호(臥虎, Crouching Tiger)」(2005)고, 그린 이는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의 신예화가 김화현. 우선, 이게 뭐하는 그림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 일단 미장센을 분석해보자. 방에는 동양풍의 침상이 있는데, 그 위에 백호피(白虎皮)를 깔았고, 그 위로 산호 빛 벨벳 보료를 놨으며, 머리맡엔 당풍 고침(高枕)을, 발아래론 심홍색 쿠션을 뒀다. 침상 너머엔 꽤 커다란 산수화가 걸려있고,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흑장미색의 장막이 보인다. 거둬진 모습의 장막 사이론 잘 자란 파초가 보인다. 엑스트라바간자(extravaganza)풍의 백호피는 강한 남성성을 표출하는듯하지만, 여성적인 요소들과 어우러져 묘한 양가성(ambiguity)을 획득한다. 두터운 장막은 흔히 매춘부들을 그릴 때 동원되던 바로 그것이고, 장막 뒤의 파초는 동양화의 전통에서 한량들의 흥취를 상징해온 대표적 소품이다. 이런 연출상의 특징들을 조합해보면, 동서양이 묘하게 혼합된 소위 '여성향'의 공간이 봉사하는 주인공은 남성 매춘부일 테다. ● 살짝 상기된 뺨으로 고개를 틀어 화면 너머의 관람자를 응시하는 주인공의 육체는 혈통이 불명이다. 눈은 파랗지만 현실속의 백인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순정만화 속의 캐릭터를 보다 구체적인 인물로 그려낸 것처럼 보인다. 이 비현실적 청년의 재현된 몸은 세필로 정성껏 쓰다듬어져있다. 풍성하고 부드러운 검은 머리, 살짝 긴장된 요추부의 건강한 근육, 젊은이들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견갑골의 디테일 그리고 군살 없이 흐르는 복숭아뼈와 아킬레스건에 집중된 세필 특유의 섬세한 스트로크는 남성 누드에 탐닉하는 자의 페티시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한 점은 옛 춘화들에 등장하던 여성기의 은유 방식을 뒤틀어 놓은 데서도 확인된다. 그림 속의 산수화에 등장하는 바위들과 보료의 주름 장식은 노골적으로 남성기를 은유하는데, 이것이 예의 '남성 위주의 시선'에 대한 비판으로 독해되지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장막 너머의 파초가 이 매춘남의 클라이언트가 남성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 작품을 그린 김화현은 이렇게 말한다: "이 소년은 자신이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을 의도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습이에요. 난 이 아름다운 소년을 '욕망의 과녁'으로 삼았고, 동양의 전통적인 남자들의 덕목에 대한 약간의 농담을 '장식'으로 곁들였어요. 하지만 이 아이는 여러 다른 맥락에서 관람될 팔자고, 그 관점은 길거리의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하고 불분명할 겁니다. 모든 '분명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죽은 것'이죠." 이 사랑스런 '문화/역사적 칵테일'이 전통과 키치에 발목 잡히지 않은 채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로 달아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불분명함'의 미덕 덕분일 테다.

김화현_와호 (臥虎, Crouching Tiger)_장지에 채색_130.3×162.2cm_2005
김화현_도원결의 (桃園結義, Oath of Brotherhood in the Peach Garden)_ 장지에 채색_162.2×130.3cm_2006
김화현_장룡 (藏龍, Hidden Dragon)_장지에 채색_130.3×162.2cm_2006_부분
김화현_죽림칠현 (竹林七賢, Seven Sages of the Bamboo Grove) 4폭 중 하나_ 장지에 채색_30×40cm_2006

불분명함'의 미덕을 갖춘 '빗금치기'의 그림 ●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뵈는 「도원결의(桃園結義, Oath of Brotherhood in the Peach Garden)」(2006)의 경우도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분명함의 바탕은 꽤 분명하다. 서사의 기본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 두고 있지만, 인물들의 기본자세는 서양화의 도상인 미의 삼 여신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특정 서양화가의 도상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삼 여신의 도상을 종합해 일반화시킨 자세와 구도를 따랐다. 반면에 면류관, 늘어진 귓볼 등의 요소 등은 정확히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 묘사를 따른 것이다. 흐드러지는 복숭아꽃 잎의 춘흥(春興)에 정신이 팔리면, 이 그림은 단순히 고대 중국의 인물들을 '꽃미남'의 형태로 뒤틀어 그럴듯하게 재현해놓은 것으로만 보일 테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묘한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삼각관계 속에서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 것은 역시 유비지만, 도원결의의 핵심인 상징 권력을 유비에게 부여하는 것은 관우와 장비인 것 같아 뵌다. 유비를 중앙에 위시해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은 관우와 장비가, 면류관으로 상징되는 권력을 유비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제는 김화현의 변형된 '여성향'에서 역사와 신화의 알레고리를 통해 드러나는 권력의 비의(秘意)적 관계인 것일까? ● 다른 그림들도 불분명함을 만들기 위해 균열의 조합과 균형에 발 딛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범관(范寬)의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북송, 10세기 무렵)를 배경으로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샘(La Source)」(1856)의 도상을 따르고 있는 미소년은 철화포도문백자를 기울여 물을 쏟아내고 있고, 「와호」와 한 짝을 이루는 그림 「장룡(藏龍, Hidden Dragon)」(2006)은, 왕권을 상징하는 「오봉산일월도(五峰山日月圖)」(조선, 19세기 중엽)를 배경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청년을 보여주는데, 가슴과 복부엔 양다리 사이의 쌍여의주를 향해 날아가는 용의 문신이 그려져 있다. 한편,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의 도상을 차용한 그림에선 소녀 레다가 미소년으로, 백조는 학으로 교체됐다... 이 모든 믹스&매치는 동서양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명확하게 만든다. 따라서 김화현의 '빗금치는' 회화는 역사적 오리엔탈리즘을 판타지의 시공간으로 긍정해버림으로써 흥미로운 탈출구를 찾은 것처럼 뵈기도 한다. 쉽게 말해, 이 작가에겐,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폭로의 차원에서 벗어나, '오리엔탈리즘을 오리엔탈리즘으로서 덤덤히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그 판타스틱한 즐거움을 죄책감 없이 누리겠다'고 말하는 새로운 세대의 뻔뻔함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뻔뻔한 욕망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모호한 '판단 유예'의 질서가 아니다. 이 화가의 세계가 따르는 질서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그림에 차용된 역사적 스타일 사이에서, 전유된 서사들 사이에서 분명한 인터페이스를 그려 보임으로써 모호함의 균형을 생산하는 '빗금치기' 즉 '슬래시'의 질서다. ● 잠정적으로 나는, 김화현의 미인도 연작이 '여성향'의 차원에서 섹슈얼리티/동·서양의 서사/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거리감과 균형감을 환유하는 묘한 메타-회화라고 평가를 내리는 바다. 허나, 보다 자세하고 확정적인 분석과 결론은 앞날을 위해 아껴둘 일이겠다. 우선은, 미인도의 역사적 형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해 당대회화의 지형에 예상치 못한 활력을 부여한 신예 김화현에게 우아한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최상의 장식적 표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모든 가능성이 무효가 될 것이라는 기우와 함께. ■ 임근준

Vol.20060613e | 김화현 동양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