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게 보다 what I see

장유경 회화展   2006_0614 ▶︎ 2006_0620

장유경_in the ParkⅠ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06

초대일시_2006_0614_수요일_05:30pm

갤러리 31 서울 종로구 관훈동 31번지 Tel. 02_732_1290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다. 그 안에는 천진한 얼굴로 놀이를 하는 아이도 있고 화목한 모습으로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도 있다. 나는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보기 좋은 그 장면들을 감히 어지럽히는 상상을 한다. 아이는 아이답지 않은, 때로는 끔찍한 얼굴을 하고 등장하며 가정이라는 무대의 한 구석을 잘라낸 시선 속에는 이미 있었던 일, 혹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듯 긴장이 감돈다. 잔잔한 수면을 보며 그 아래에 숨은 검은 물의 거친 흐름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는 일상을 본다.

장유경_미친년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06
장유경_in the ParkⅡ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6

지난 겨울, 외할머니가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오랜 병환 후의 호상이었지만 거의 평생이란 시간을 곁에서 함께 해온 나와 가족들에게 할머니의 빈자리는 슬픔,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 일상을 뭉텅 잘라낸 느낌이랄까. 비유가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딱히 쓸모를 몰랐던 살덩이를 저며 낸 자리에 스미는 허전함, 그리고 나를 온전하게 해주는 살덩이의 필요를 뒤늦게 깨달았을 때의 당혹스러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장유경_in the ParkⅢ_캔버스에 유채_140.6×120cm_2006
장유경_노인과 개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06

나의 외할머니는 유독 목소리가 크셨다. 엄마가 세상에 날 적에, 산통을 호소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재 너머 동네 사람들까지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호흡을 돕는 의료기기가 그어준 몇 미터 안되는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할머니의 큰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리고 그저 일상을 꾸려나가기 위해 나와 엄마의 이름을 불러대는 그 목소리에 나는 종종 화를 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외할머니'라고 장난스럽게 말할 정도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내가, 그렇게 했다. 어쩌면 단지 얼굴 한번 보기 위해서였는지 모를 할머니의 부름에 관대함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일관하지 못한 것에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장유경_산책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06
장유경_말뚝박기_종이에 유채_105.5×75cm_2005
장유경_꼬마야꼬마야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05

가사일에 손을 놓고는 적적해 하시던 외할머니를 나는 그림의 모델로 삼곤 했다. 소일거리를 핑계로 지루하고 힘든 시간 속에 묶어둔 손녀딸의 뻔뻔스런 요구에도,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관대했다. 지금은 할머니를 앞에 두고 그릴 수 없지만, 무엇을 그리건 할머니와의 관계 속에 쌓였던 오만가지 감정들이 배어나는 것 같다. 병석에 계셨던 겨우 몇 년을 잘 해 드리지만은 못했다는 죄스러움, 그리고 한 사람의 자리가 비워졌을 뿐인 삶을 이어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 곱지 않은 마음이 아직은 크다. ■ 장유경

Vol.20060615d | 장유경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