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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대학원展   2006_0613 ▶︎ 2006_0617

김묘빈_위스키~!_합편에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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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13_화요일_06:00pm

김묘빈_김소연_김연신_김진경_김태은_김현정_김혜진_백혜진_서호성_신정아_심혜진 오보라_윤영혜_윤정숙_이경진_이수현_이윤아_이정민_이진영_이해은_조수현_최유희

성신여자대학교 조형1관 708호 서울 성북구 동선동 3가 249-1번지 Tel. 02_920_7248 www.sungshin.ac.kr/gspa

김묘빈_위스키 ● 고대부터 현대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램브란트 등 많은 화가들은 얼굴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려왔다. 그만큼 어느 시대고 얼굴을 그리지 않은 적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그만큼 인간의 얼굴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며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연구하는 작가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고대시대에는 의뢰로 주문자의 신격화나 권력, 위엄을 상징하기 위한 수단이였다면 현대에서는 인간의 심리적 표현이나 현실 비판적 사고를 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본인의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본연의 모습이 아닌 내면의 다중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한가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사회적 역할에 따라 그 모습은 변화한다. 상사와 부하직원 일 때의 모습, 부모와 자식 간의 모습 일 때의 역할이 달라지듯 내면에서는 그 보다 많은 표정이 만들어 진다. 그때마다의 감정들을 표출하기도 하고 포장하여 상대에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포착하여 작업을 진행한다. 이때의 표정들은 불쾌한 표정, 무표정, 경악하는 표정, 무엇인가 전달하려는 표정, 눈웃음을 짖는 표정 등 여러 과장된 표정이 뒤섞여 있다. ● 표현 방법론은 얼굴의 과장과 왜곡, 분장 기법을 이용한다. 예로부터 분장은 본능적인 생존수단으로 자신을 외부의 어떤 존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며 자신의 신체를 아름답고 매력 있게 보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또한 염원 등을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도 쓰였다. 핑크색의 얼굴을 흰색으로 분칠을 한 가부키와 비슷한 화장법은 자신의 아름답지 못한 것을 감추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비감을 자아낸다 .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치아를 검게 칠을 하는 것이다. 흰색 분칠을 한 얼굴에 비해 치아는 노란색을 띄기 때문에 검게 칠을 하여 황니를 감추는 것이다. 본인의 작품에서는 가부키의 흰 분칠만을 가지고 온다. 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준다.

김소연_aaa_종이에 아크릴채색_23×20cm_2006
김연신_Self-Portrait_130.3×89.4cm_2006
김진경_UFO-paradise_89.4×130.3cm_2004
김태은_Still life_혼합재료_33.3×21.2cm_2006
김현정_Daily_광목천, 염료, 바느질_100×100cm_2005

김연신 ● 피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 속에 혼재되어있는 나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 김진경 ● 현대사회에서는 대중매체와 과학의 발달이 꾸준히 있어왔으나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그것에 비례하지 못하고 점점 더 저속화되고 단순해져 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했던 광고물, 간판, 건물양식, 공산품들은 각기 고유한 문화의 영역을 침범하여 정체불명의 외계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생겨난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나타난 사회문제에 대해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오브제(건물이미지)를 통하여 이러한 소비사회의 문제로 부각되는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서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생겨난 사회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U.F.O-paradise! 작품에서는 외계문화의 단편을 보여주었던 우리나라 모텔 건물이미지를 각색하여 만들었던 오브제의 자리를 찾는 작업을 보여준다. 여기서의 오브제는 텍스츄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모습은 소비사회의 병폐를 떠안고 사는 우리라는 개념의 사실로서 보여 지며 한마디로 어떤 기계에 의해 사실적으로 기록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단지 인간과 현대사회 속에서 생기는 갈등을 더욱 호소력 있게 대비시키는 화면 안에서의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한다. ● 김현정_일상적 소재와 일상적 재료의 만남 ●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작업의 토대로 삼았으며 화면에서 재구성 되는 것에 대해 중점을 둔다. 일관된 소재인 정물은 일정한 줄거리가 있는 긴말이나 사상을 전하는 화두가 있는 것이 아니다. 느낌이며 감정이며 수다이다.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효과와 더불어 완벽한 형태가 아닌 이 기우뚱한 현상은 불확정, 낙서와도 같은 느낌을 주며 또한, 바느질의 성글고 유연한 움직임은 불규칙함의 표현이다. 작업에 사용된 재료의 구성요소로는 대게는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대상인 천과 실이다.실선과 점선 같은 바느질의 느낌은 규칙적일 수는 있으나 미세한 굴곡과 율동이 있어 완결되어 보이지 않아 마치 올이 풀린 듯 한 느낌으로 표현된다. 멈추어 움직이지 않는 물건 ,즉 생명이 없는 물건들은 일차원의 캔버스를 대신해서 3차원의 공간이 화면이 되고, 공간으로 들어와 본래의 부동의 모습으로 또 다른 얘기를 담고 있다. 사물의 고정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상들로 사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혜진_익숙함 속의 변화들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06
백혜진_The leaf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6
서호성_Nature_혼합재료_130×162.2cm_2005
신정아_오후의 몽타쥬_캔버스에 유채_80×130cm_2006
심혜진_byebye_판넬에 구아슈_30×70cm_2006

김혜진 ● 사람들 하나하나의 개체들이 모여 서로에게 존재감을 형성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지루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변함이 없는 풍경, 같은 풍경 또한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활기가 있어 보이고, 다른 풍경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느끼게 해준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건물이나 길, 항상 보는 장소가 사람으로 지루해지지 않는 그런 느낌 받아 사람을 그 풍경 속에서 한 단면으로 빼내어 같은 풍경이지만 다른 모습처럼 보이도록 했다. ● 백혜진 ● 자연을 보는 관점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나, 나에게 있어 자연은 신에 섭리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현상을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것이 아닌 신의 정한 이치에 의한 것으로 본다. 시간에 따라 후패하는 생명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일으키며 소멸되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늙어지는 외양으로 인해 삶의 마지막이 슬프거나 우울한 어떤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있고 육체의 후패 이면에 날로 새로워지는 영혼의 세계가 있음을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은 이 약속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약속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유한한 생명을 지닌 자연물이 신의 피조물이며 그것이 신이 정한 이치를 따르는 것이기에 화면에 담았다. 이와 함께 약속이 담긴 성구를 더함으로 내 그림을 한 장의 그림엽서, 신과 나의 약속이 담긴 약속의 증서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로써 내 그림은 약속장이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다. ● 서호성 ● 빛바랜 고궁 안에서 보여 지는 단청의 색감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고궁의 자태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조용한 절간의 단청은 그곳의 엄숙함을 더욱 빛내주듯 화려하면서도 처마 밑 풍경소리같이 은은하게 다가온다. 옛날 밥상에서 보았던 조각보가 촌스럽지만 그 조각보 속에서 여유로움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시각적으로 강하면서도 친근한 색감의 조화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색을 통해 새로운 조형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기존의 어떠한 방법을 배제한 채, 순전히 주관적인, 스스로 창조적인 법칙에 따라 선과색 그리고 형태의 배치를 화면에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 눈에 보이는 것과 우리의 정형화된 관념 속에 존재하는 자연에 대해 해방하는 것이 나의 그림의 출발이다. 나는 관념속의 자연으로부터 해방을 꾀한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 , 우리의 삶 속에 배어 잇는 우리의 사상을 색과 형을 통해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자연 속에 그 형을 단순화 하고 단청에서 느껴지는 원색적인 강한 색을 통해 추상적인 화면을 구성해 나간다. 인상파에서 시작되는 자연을 주제로 하는 작품에서는 모든 부분들이 실재의 세계를 표현하여 그들의 사상을 말하였다. 이에 반해 입체주의에서 시작되는 추상 예술에서는 실재하는 세계를 나타내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표현양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양식들은 실재하는 자연의 이미지 보다는 훨씬 더 표현적이고 분명한 내적인 울림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칸딘스키에 의하면 "색채는 인간의 육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초인간적인 힘이다." 라고 하였듯이 색을 통해 살아 숨 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의 마음에 감흥을 주고자 한다. 나에게 있어 색은 마음 속 울림의 표현이며 나의 작업의 연장이고 표현 수단이다. 또한 칸딘스키가 "형태와 색채는 추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내는 두 가지 요소이다. 이들은 상호 조건부 적이다. 형태는 색채의 효과에 영향을 미치고 색채는 형태는 색채의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형태와 색채의 밀접한 관계 속에 조화로운 화면구성으로 형과 색을 통한 추상적인 표현과 자연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단순화된 실체와 강한 색으로 자연의 미를 표현하고 그 속에서 조화로운 색의 미를 표현한다. ● 결론적으로 나의 작품은 자율적이고 나의 시각과 관념이 투영된 색과 형태를 표현하며 아울러 이러한 자율적이고 주관적인 요소에 대응되는 인위적인 선과 면 또는 구조의 다양한 공간의 만남, 이러한 여러 요소의 상반된 규율로서 새로운 조형 공간을 설정한 것이다. 이미지 간의 병치, 곧 유기적 연결성을 지닌 화면 구성은 독립적이면서 상호 보완적인 요소들의 의도 내지는 우연의 만남을 통해 그것들이 갈등하는 존재의 상황이 아닌 자연스런 조화가 되어가는 공존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는데 의도가 있다. 즉, 화면 전체에 배치된 각각의 독립된 요소들이 그 독자적 힘을 지니면서 그 속에 서로 조화 되도록 하는 접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 신정아_오후의 몽타쥬 ● 아마도 시간은 오후 3시에서 5시 반경.. 아마도 그 사이, 이곳의 낮은 지붕 들은 모두, 등으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잠들어 있다. 한 없이 정적인 이 느긋한 풍경속에서 나는 달콤한 낮잠과도 같은 풍만함을 느낀다. ● '오후의 몽타쥬' 시리즈 작업은 내 자신의 - 지내온 풍경과의 교류이며 동경이기도 하다.학창시절 내내 조용하고 조금은 적막하게도 보이며 소소한 일상의 반복이였던 시골 생활에 나만의 어떤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었고 너무나도 다채로운 색을 가지고 있고, 그것 모두를 속속들이 발하고 있는 도시 와는 다르게, 그 공기들은 실로 나에게 어떤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다. ● 그것은 자연과의 교우가 수월했으며 진실성에 더 가까웠다. ● 자기를 아는 일. 논의나 분석이나 요설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뇌를 통해 고뇌 속에서 자기를 아는 일, 생활을 통해 자기를 아는 일, 점잔을 빼는 태도나 작위와는 인연을 끊고 진실 속에서, 우리의 전 존재를 건 노력 속에서 자기를 아는 일, 그것이 바로 생의 수업인 것이다. ● 절도를 지키는 일, 긴장했다가 다시 푸는 방법을 터득 하는 일, 자기의 상상력이나 솟구치는 혈류, 어리석은 분노나 또는 세상에 도사린 부정에 대한 신성한 분노를 억제하는 일, 그러나 때가 오면 그 분노를 격발 시키는 일, 필요할 때에는 지체 없이 억제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불안이나 걱정 없이 그런 것 들을 격발 시키는 일, ● 이것이 인생의 수업이며,거기서 탄생하는 예술은 거세당하지 않는 법이다.- 1913년 3월, 루오 -심혜진 ● 나의 그림세계는 내면세계의 정글로부터 저절로,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쏟아져 나온다. 때로는 갈망이 번득이고, 때로는 감정이 격동하고, 때로는 고통과 절망이 지배하고, 때로는 시간이 나를 잠재워준다. ● 나는 끝없는 침몰 속에서 화려한 부상을 꿈꾼다.

윤영혜_Intend_캔버스에 유채_50×227cm_2006
윤정숙_Red bag_혼합재료_60×60cm_2006
이경진_고양이가 사는 집_판넬(종이박스, 나무조각)에 아크릴채색_30×50cm_2006
이수현_Mom! Thanks so much_인조가죽에 유채_70×30cm_2006

오보라 ● 변화는 있느나 변함은 없는 자연, 그 안에서 오는 것들에 대한 믿음, 그것을 닮고싶은 소망.반복적인 행위와 과정이 보여짐 (붓 자국)을 통해 유동적이면서도 절대적인 내안의 자연을 만나고 찾아가고자 하는 과정. 그것은 나를 길들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 윤영혜 ● 긴장감정이란 사실은 긴장감각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물을 주의깊게 관찰한다든지 어떤 일을 기대하고 있을 때와 같은, 적극적 태도를 취할 때 수반되는 심적 긴장상태는 단순한 긴장감각 이상의 감정적 성질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 윤정숙 ● 사소한 조각들의 존재 ● 오려내고 잘려낸 이미지에 작은 조각들을 모아 존재의 변형된 다른 모습을 이루게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빛나 보이는 이질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껴본다. ● 이경진 ● 「프로이드 적 이미지와 연속성의 발견」 ● 이중, 삼중으로 중첩의 강조됨이 있는 한 나의 화면은 심심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인물이나 어떤 사물을 (같은 모양을) 여러 겹 쌓아 올리다가 어느 정도 두께가 생기면 중단한다. ● 그 여러 겹의 두께에서 공간성을 강조하고 싶다. 그 연속성은 흔들림이나 소리의 중첩 같은 시간성에서 오는 이미지 일 것이다. 비록 영상처럼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영상에서 오는 슬로우 모션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맨 밑에 깔려있는 형상에서 차츰차츰 올라오면서 그 일차적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가장 높은 위치의 확실한 형상이 나타나면서, 사라진 밑에 깔려있는 이미지들을 반증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운동(움직임)은 실재 영상은 아니지만 회화로써의 연속성을 불러일으키리라 믿는다. 무거운 흙더미를 밀고 올라오는 식물의 싹처럼 점점 차오르는 높이(키)를 느끼게 하는 지속적 태도가 된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의식과 무의식의 논리처럼 이면과 표면의 이중성을 말하기도 할 것이다. 의식 밑에는 더욱 거대한 크기의 무의식이 있다는 프로이드의 논리가 해당되지 않을까한다. 가위로 오려낸 같은 크기의 모양이 중첩되어 있을 때, 맨 위의 표면은 의식이라면 밑 부분에 여러 개의 것은 무의식에 해당될 것이다. 마치 무의식에서 의식이 나타나듯 나의 작업은 시간성과 연속성을 갖게 하는 것이 주된 것이다. 그래서 흔들림이나 욕구, 욕망, 생식기능처럼 가벼움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욕구 적, 본능적 요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의 단편이라고도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흔히 다루고 있는 타자, 또는 다양성, 이 타성으로 나타나는 그러한 양상들은 항상 변화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작업, 무의식에서 의식에로의 변화성 역시 그러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가위로 잘라 쌓아올린 모양들은 그러한 타자 또는 이 타성을 불러들이는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연속성(지속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 나의 작업이다. 회화가 자체지칭(모더니즘)에서 벗어나려면 그러한 가변적 요소가 일차적으로 들어가야 하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사용하는 가위, 접착제, 얇은 철판이나 잡지 등은 대화나 친화적 표현에 쓰이는 친근한 물질이며 칼라들은 그것들의 바탕으로 스며들어간다. 가끔 드로잉이나 거친 붓 터치 같은 것들은 현실 또는 실재를 의미하게 된다. ● 인물이나 짐승의 등장, 식물, 이러한 소재들은 내 어릴 때의 느낌들이다. 나는 바닷가에서 유년기를 지냈고 자연과 인간의 뜨거운 만남을 많이도 보아왔다. 그러한 기억에서 오는 이미지들을 화면에 쏟아 넣는데, 억지로 걸림 장치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그러한 모양들을 활용해서 그 이미지들의 반증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겹 쌓아올린 이미지에서 그 이미지의 흔들림이나 울림 같은, 지속적 발상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내 작업의 요소이며 그것은 곧 프로이드의 무의식 세계 론과 연관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연속성은 반복되는 말(言語)처럼 일상의 흐름이기도 할 것이다. ● 이수현_MOM! THANKS SO MUCH ● 'MOM THANKS SO MUCH.'는 아기 모습의 일부분 혹은 전체적인 형태를 화면에 확대하여 그린 작업이다. 드로잉이 가지는 기초적인 특성을 이용해 동적인 느낌과 직접적인 표현방식의 문지르고 닦이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1차적인 감정을 유도하게 한다. 신체의 굴곡에 따라 변화되는 음영과 반복되는 터치들은 대상의 자세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각각의 차이와 반복의 리듬 같은 것이 표현의 과정에 흥미를 더해주며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이 점이 감정을 유도하는 가장 큰 방법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 어떠한 사물에 대한 느낌은 그 자체에 대한 인식과 습득 혹은 주입된 학습에 의해 또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정의가 내려진다. 인간이 느끼는 최초의 감정은 진실이 되며 순수라 칭하고 절대적이며 의미가 붙여진다. 이는 생명의 시초이자 이전의 죽음의 결과이고 어둠의 끝이며 빛의 시작이다. 그 반복되는 의미의 룰은 제시되는 상황과 현상에 의해 변화되며 이러한 형식들은 기억이나 경험과 같은 과거를 개선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기는 기존에 정의된 순수를 역으로 이행하고 있다. 탄생에서 부터의 시작이 아니라 죽음에서부터의 시작이 된다. 아기의 미래에 대한 축복이 아닌 과거의 어떠한 상황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게 하는 것이다. 그 느낌은 아기라 칭하는 희망적이고 시작의 의미가 아닌 결과에 대한 통증을 유도하며 위로, 포옹, 혹은 치유와 같은 인도주의적 행동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보여 지는 이미지의 현상에 의해 정의되고 유추되며 또 다른 기억과 경험에 의해 의미지어진다. 이것이 이 작업의 가장 큰 의도이며 작가와 관람객 각자에게 다르지만 결국엔 같은 느낌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윤아_Seodaemun Prison_캔버스에 유채_56×324cm_2006
이정민_Silence was only broken by the ticking of the clock_ 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06
이진영_Only you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6
이해은_가족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06
조수현_쉴만한 물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06
최유희_우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62×130cm_2006

이윤아 ● 서대문 형무소. ● 근대적 시설을 갖춘 한국 최초의 감옥. 서대문형무소에는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지하 여자감옥, 윤봉길 의사가 복역 중 만들었다는 붉은 벽돌, 여러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었던 1평정도의 좁은 감옥들이 남아 있다. 암울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증언해주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는 입장료 1500원만 내면 아무렇지 않게 구경을 하러 들어 갈 수가 있다. 고문과 탄압으로 가득했던 이곳에는 지금 평온과 고요함만이 남아있다. 이 곳에서 나는 공허함을 느낀다. ● 이정민 ● 나에게 그림은 텅 비어있는 의미공간이다. 더 이상의 확실한 의미의 진술이 아닌 불확실한 감성을 재현하는 것으로 화면상의 그려진 대상의 모습은 단지 그려진 그대로의 대상 그뿐이며, 본질을 암시하는 상황적인 단편적 이미지는 의미의 증거가 아닌 존재의 증거로써 남는다. 이러한 존재들의 주가 되는 공통점들은 인간의 근본적 감정 중 하나인 고독이다. 이러한 감정을 우리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사는데, 내가 받아들이는 고독은 격한 감정이 아닌, 담담하게 조용히 다가오는 모호하고도 아이러니한 슬픔이다. '살아남되 죽은 것처럼...' ● 이진영_「사람&사람」-아날로그적 관계(소통) ● 우리는 소통에 있어서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나 역시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작업으로 이야기 한다. 특별히 난 아날로그적이라 생각되는 소통 방식에 관심을 가지며 또한 그러한 관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것의 실패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특별히 남자&여자를 그려본다. 그것이 지금 나의 현재이고 미래까지 그려보는 상상의 근원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통엔 서로 인정하든 못하든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결혼해서 지겹도록 살고 있는 사람들. 이제 결혼해서 서로에게 맞춰가는 사람들.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들을 사회적 관계(형식적관계)로서가 아닌 아날로그적 소통 속에 배치된 인물들로 바라보고 관계적 경험의 감성을 작업으로 나타낸다. ● image_남녀의 바뀐 이미지들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기도 하며, '걸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상이 아닌 현실 속 인간의 모습으로서 과연 그들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보여준다. 결혼식의 모습은 남녀의 상징적 요소로서 나타낸 것이며 아름다움이 아닌 그 너머의 현실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우스꽝스런 얼굴 표현은 소통에 실패한(소통을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 형식_생각 속에서 바로 나오는, 걸러지지 않은 원시적 방법으로 표현한다. 주변이야기(경험)를 통한 핵심 이미지를 떠올린 뒤 나머지는 그리는 과정에서 해결한다. 화면과 물질의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만남을 즐기며 이런 것이 나와화면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붓질과 순간의 생각을 나타내며 조형성은 의식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무의식적으로는 조형성이 작용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다 보면 주관적 실패(?)의 과정들이 생기곤 하는데 다시 지우고 또 그리고 하는 과정이 화면 위에 반복 된다. 이것은 작업 행위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조형성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며 감성자체를 드러낼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괴로부터 오는 희열감은 작업의 감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리고 원시적 순수성을 다시 발견하게끔 한다. 이런 것들이 또한 아날로그적 소통의 연속성이라 생각한다. 스케치는 중요하지 않으며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색으로 칠하는 것이 아닌 색을 지닌 물질 자체로서 그려나가며 익숙한(정교한) 붓놀림이 아닌 이미지 또는 색과 선의 부딪힘, 그 생경함 속에서의 자연스러움을 발견해 나간다. 계획적이지 않는 이러한 것들을 순수함으로 여긴다. ● 이해은 ● 삶은 나에게 무척 힘들고 슬픈 사건의 만남 또 만남 이다. 균형, 안정 이라는 단어보다는 불안하고 이상함이 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삶 말이다. 그러나 내가 더욱더 힘이 솟고 열정이 살아 숨쉬는 쾌감을 느끼는 곳은 그러한 완전하지 않은 존재와의 만남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하고 슬픈 곳에서 나는 아예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비굴한 혹은 즐거운 최선의 방식 이었다. 그림과 나 사이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나와 자연의 사이에도 나에게는 다르지 않다. ● 조수현 ● 내 작업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자아 탐구 과정이다. 또한 내 작업은 비현실적인 공간안에 나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숨겨진 감정이나 욕구 등을 표출시키는 도구라 할 수 있다. 일상 생활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여 일탈을 꿈꾸는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작품 속의 공간을 통해, 그 설정된 상황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하고자 표현한 것이다.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나와 동일한 감정의 치유를 경험했으면 하는 바램의 마음도 담겨있다. ● 그러나 이러한 자아 탐구의 과정이 결코 내면의 완전한 자유함을 줄 수 없음에 대한 한계를 깨닫게 되면서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우선 실내와 실외의 복합적인 구성 방식은 변함이 없으나 화면을 가득 메우려는 습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여백을 많이 주고 내용물은 최소화시켜 나의 자유함에 대한 표현을 극대화 시켰다. 색상은 예전처럼 밝은 색을 주로 사용하였지만 너무 많은 색보다는 비슷한 계열을 색으로 평안한 영혼의 심리를 반영하고자 하였다. 주로 등장하는 삐에로는 웃고 있는 그 자체의 모습을 통해 자유함을 나타낸 것이다. 전체적으로 화면을 비우는데 초점을 맞춘 이유는 예전에는 불안한 마음을 무언가로 가득 채워 억지로 스스로를 달래려 했으나, 이제는 그 무엇도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욕심으로 가득차 스스로에 대한 기준치를 너무 높게 잡아 괴로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 작품의 내용은 주로 성경 말씀을 묵상한 후에 얻어진 결과물들인데, 각각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자유함의 실체 즉, 영혼의 잠잠하고 고요한 그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더 이상 욕심도, 불만도 없으며 불안함과 답답함이 사라진 자아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내가 자유함에 100% 도달했다고는 할 수 없다. 작품을 거듭해 나갈 수록 점점 더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의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자유함을 경험하였으면 하는 바램은 아직도 있다. 내가 그것을 억지로 강요하여 얻어질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지만 그림을 보면서 내 영혼의 평안을 함께 느끼고 그 자유함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는 방법을 깨닫기를 바란다. ● 최유희 ● 물질성과 빗물질성, 평면과 입체, 논리와 비논리의 경계에 대해 말하려한다. 이 작품은 완전 평면적인 요소와 추상적 요소의 결합이여 색채의 감수정이 담겨있다. 옵틱컬적인 방법과 우유박스의 친근한 생명적 공간의 이미지를 평면에 일체화 시키면서 우유박스 하나하나의 이미지 보다 더 많은 이미지를 보다 보여주고 집단적인 반복과 구성을 통해 팬턴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빽빽한 이미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와 결부 될수 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미지를 만듬에 있어서 추상적인 미술사조와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수 있다. 박스라는 공간과 색채는 그림 전반적인 이미지를 좌우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공간 감성 일뿐이다.

Vol.20060617c | Open Studio-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대학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