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에게 말을 걸다

오연경 회화展   2006_0621 ▶︎ 2006_0627

오연경_가시나무_한지에 천연염색, 혼합기법_114×268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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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21_수요일_05:00pm

오프라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6번지 오원빌딩 3층 Tel. 02_720_1117

선인장에게 말을 걸다 Addressing Cactus ● 선인장을 주제로 한 『선인장에게 말을 걸다』전에서 우리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선인장은 수분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 잎을 가시로 변형시켜 가능한 한 수분 증발을 막는 적응을 꾀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에 얼마만한 시간이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고난과 역경을 거치면서도 굴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열대 사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로 인식되고 있다. 사막이라는 자연에 대항하지 않고 최대한도로 이용하면서 적응하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소극적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보인다. 자연은 우리가 그것에 의지하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또 그것으로 돌아갈 원천이다. 노자가 말하는 "사람은 대지를 본받고 대지는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명제는 과학문명으로 많은 이익과 편의를 추구하는 현대화의 거대한 노도 앞에서 많은 것을 상실한 자아가 동경하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이기도 하다. ● 이렇게 본다면 「선인장에게 말을 걸다」라는 주제로 전시된 일련의 작품들에서 진술되는 자연은 "우리 여성들은 남성들로 상징되는 문화에 대하여,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들러리 서지 않겠다. We won't play nature to your culture."에서 바바라 크루거가 말하는 자연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 된다. 바바라 크루거는 남성, 이성, 교양, 권력, 세련미, 적극성, 능동성으로 대변되는 문화에 대하여, 자연은 여성, 감성, 욕망, 종속, 본능, 소극성, 수동성을 의미하며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선인장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강렬한 태양빛을 받으며 우기에 한 때만 내리는 비를 최대한 머금었다가 그 증발을 최대한도로 억제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여야 한다. 동시에 선인장을 먹고 살아가는 동물은 물론 다른 선인장 속에서 개체보존과 아울러 종족을 보존하여야 하는 생존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덕목은 조화(和)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주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존재는 단기적인 생존과 번영을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 배척당하고 멸망하게 된다. 그러기에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존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늘로 대변되는 자연과의 조화, 나 이외의 다른 존재 내지 사람과의 조화, 우리 인간의 경우 자신의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개체는 존재하고 번영할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추구한 예술의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아름다움보다는 조화를 으뜸으로 여기고 음악, 문예, 그림 등 모든 예술 장르에서 이를 최고 가치로 삼았기에, 악종화(樂從和)라는 명제가 아름다움에 앞선 명제로 수용되었다. 조화의 추구는 인위적인 억제나 강요보다는 오히려 설득과 자연스러운 감동에 의해 완성된다.

오연경_바람을 느끼다_한지에 천연염색, 혼합기법_93×63.5cm_2006
오연경_발산하다_한지에 천연염색, 혼합기법_64×93.5cm_2006

오연경은 자연을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아련한 향수와 그리움을 지닌 회귀의 대상이자 생을 지속하기 위한 다양한 음식과 약초를 제공해주는 생명의 공간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적절하고 강력하게 나타내 주는 주제로 선인장을 택하였다. 자연을 추구하는 오연경의 정신은 자연과 문화를 구별하고 이를 여성과 남성으로 유비하는 서구적 사고가 인위적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유비를 타파하기 위해 양자 간의 차이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도 인위에 의한 또 다른 고정관념의 성립을 도모하려는 의도로 간주하고, 자신의 자연관을 이번 전시회를 빌어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자연과 문화, 여성과 남성, 이성과 감성은 확연하게 구별되며 서로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 하나의 유기체로 전환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 현대 미술에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한 이래 공예와 장식이 미술에서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페미니즘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전 분야에 걸쳐 소외되어온 여성들에게, 올바른 인식과 부당한 차별의 폐지를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소외된 타자에 대한 배려는 예술의 본류에서 제외된 수공예나 장식에 대한 재인식의 계기가 되는데, 그것이 일상적으로 여성들의 주된 임무로 여겨져 오던 활동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바바라 크루거나 쥬디 시카고처럼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을 통해 페미니즘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본래적인 평등관계의 회복은 상대방의 굴복과 무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화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오연경_불을 삼키다_한지에 천연염색, 혼합기법_72×57cm_2006
오연경_살아있는 돌_한지에 천연염색, 혼합기법_57.5×66cm_2006

오연경은 衣를 담당해온 여인들이 희로애락을 곁들여 옷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하여 만들고 인두로 다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주던 여인네들의 마음을 한지 위에 구현함으로써 자신의 자연관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견뎌내다」 「발산하다」 「불을 삼키다」 등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옷을 만든다는 수동적이고 희생적이고 인내하기만 하던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일에서 조화를 발견하며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느질과 인두질의 흔적이, 화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주된 매체로 승격됨으로써, 단순한 생활수단으로부터 예술의 경지로 전환된 것이다. 밥을 먹는 것처럼 의례 있는 일이기에 우리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생활의 한 편린이 화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주목을 이끌고, 다시금 새로운 의미 부여의 길로 인도해 주고 있다. 자신을 강요하지 않고 은근하면서도 마치 선인장이 유구한 세월 환경에 적응해 온 것처럼, 굴하지 않는 기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눈에 확 뜨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우리의 심금을 강하게 울리는 흡입력은 색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흑백이나 원색을 구가하기 보다는 중간색을 채용함으로써 극단의 대립을 지양하고 상호간의 조절을 추구하고 있다. 한지에 입혀진 색채는 어두운 갈색, 녹색, 자주색, 황색 등 모두 침착하고 무게감을 주는 색채이며, 여기서도 조화를 중시하며 거기에서 배어나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시종일관 추구하고 있는 화가의 성실성을 볼 수 있다. ■ 백윤수

오연경_잘라버리다_한지에 천연염색, 혼합기법_36×42cm_2006
오연경_타오르다_한지에 천연염색, 혼합기법_93×63.5cm_2006

한참 동안 자연 속에서 그가 가진 생명력에 취해 한껏 노닐다 무심코 바라본 선인장. 자연이라는 거대한 부모가 만들어 낸 또 다른 형제는 나와 꼭 닮은 모습으로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메마르고 척박한 외부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강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선인장. 원형의 형태와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하고 이를 반복하며 크게 무리를 이루며 성장해나가는 선인장의 생태는 우리 인간 삶의 생리적 혹은 사회적 성장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겉으로는 날카로운 바늘로 온몸을 무장하고 공격적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그 속은 수분을 듬뿍 담아 부드러운 선인장처럼 인간 역시 타인에게 무조건적 자기 방어기제를 보이는 듯하나, 결국 자신과 닮은꼴을 한 가정 안에서는 한없이 유(柔)하며 이를 지속시켜 나간다. 스스로의 보호 수단이자 공격의 수단이기도 한 선인장의 다양한 형태의 가시는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 거리를 두는 다양한 원인과 형식 혹은 그 개성과도 다를 바 없었다. ● 이 우연적이고도 필연적인 선인장과의 만남은 그 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계기였다. 우리가 잠시 느끼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바람은 항상 불고 있는 것처럼 종이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도 실이 끊임없이 이어져있는 바느질 흐름이 일상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물음과 재인식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이러한 만남이 인위적 물감으로 거리감을 두기 보다는 자연 스스로가 만들어낸 천연염료를 통해 보다 친근감 있는 만남이 되길 바란다. ■ 오연경

Vol.20060622a | 오연경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