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하는 에너지...태극

윤성필 조각展   2006_0623 ▶︎ 2006_0711

윤성필_에너지Ⅰ_스테인리스 스틸_55×40×4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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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23_금요일_06:00pm

갤러리 위드 화이트 서울 강남구 역삼동 618-4번지 문집 Tel. 02_508_8828 www.withwhite.net

태극은 순환과 반복을 통하여 항상 운동변화하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맹목적으로 어지럽게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된 질서와 법칙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윤성필) ● 윤성필은 조각 안에 하나의 우주를 담으려 한다. 그의 작품은 특히 형태를 통해 우주의 생성과 변화, 순환에 관한 거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가 담으려는 우주는 '힘', '에너지', '기(氣)'로 불리는 것이다. 태초의 힘은 한 덩어리의 태극(太極)의 상태에서, 음(陰)과 양(陽)으로 나뉘고, 음과 양은 상호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현상들을 만들어낸다. 윤성필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윤성필_에너지Ⅳ_스테인리스 스틸_45×30×30cm_2006
윤성필_태극Ⅰ_아크릴_100×20×40cm_2005
윤성필_태극Ⅱ_스테인리스 스틸_50×30×50cm_2005

조각은 미술사에서 지극히 물질적인(physical) 매체였다. 고단한 육체노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재료의 물성과 그 물질적인 표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관람자를 신체적으로 개입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윤성필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근원인 태극이,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을 현실화시키는 양극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조각은 다분히 관념적이다. ● 조각을 통해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다루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무모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대담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그가 몰두해 있는 동양의 우주관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의 만물은 같은 근원에서 비롯되었고 인간도 세상 만물의 일부라는 우주관은 물질과 관념의 구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그가 조각을 통해 끈질기게 탐구하고 있는 것은 그 근원을 눈앞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 거대한 하나로서의 태극은 그 내부에 순환하는 힘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힘 자체일 수도 있고, 힘들의 운행을 관장하는 원리일 수 있다. 이것은 윤성필의 조각에서 원형(圓形)으로 나타난다. 원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이며 안으로 당기고 밖으로 미는 힘을 동시에 가졌기에, 태극의 형태적인 기표라 할 만하다. 작가는 마치 드로잉 하듯이 금속 띠를 완벽한 원형으로 반복하여 증식시켜 간다. 작품을 형성하는 원들은 하나의 오차도 없이 하나 다음에 그 다음의 것이 덧붙여진다. 결국 그의 조각은 순환하는 내부의 에너지를 상상하기에는 너무 정적이고 견고한 구조물이 된다. ● 누가 여기에서 만물의 생성 에너지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팽팽한 긴장감은 원형을 가로지르는 축에 의해 유지되고 파괴된다. 이 축은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가상의 회전축이거나, 둥근 형태를 관통하는 직선으로 가시화되어 있다. 직선은 에너지가 개별적이고 특수한 현상으로 현실화되는 계기를 암시한다. 태극을 이루는 음과 양처럼, 이렇듯 곡선과 직선은 작품의 형태적인 핵이다.

윤성필_순환_스테인리스 스틸_400×150×60cm_2006
윤성필_생성_철_400×150×150cm_2004
윤성필_삼태극Ⅱ_철_40×40×40cm_2006

윤성필의 작품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작가의 노동이다. 어느 작품인들 작가의 노동이 투여되지 않을까마는, 그의 노동은 작품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공장에서 조립되어 나온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은 작가의 손에 의해 조립되고 연마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 과정은 관람자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육체노동과 정신적인 집중을 요한다. 그러나 용접하고 볼트와 너트를 죄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의 노동은 견고한 형태 안에 에너지로 축적되었다. 그의 작품은 더욱 팽팽한 긴장감으로 빅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 미니멀리즘 조각가들이 입방체의 단순한 형태를 통해 재료의 물성을 극대화했을 때,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신성의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많은 비평가들이 단순하고 물질적인 그들의 작품에서 영적인 의미를 읽어내었던 것이다. 윤성필은 그와는 반대의 방향에서 접근한다. 태극이라는 개념적인 원리를 물질적인 매체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물질을 본다. 재료와 형태 속에 갇힌 힘을 본다. 태극이라는 원리에 대한 논문쓰기가 끝나는 순간, 그는 음양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현실의 구체적인 현상들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갈 것이다. 그는 견고한 형태의 논리를 가진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그것이 자못 기대된다. ■ 이임수

Vol.20060623a | 윤성필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