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day for everyday

황연주 드로잉展   2006_0619 ▶︎ 2006_0627

황연주_everyday for everyday展_갤러리 눈_2006

초대일시_2006_06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10:00pm

갤러리 눈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미림미술재료백화점 2층 Tel. 02_747_7277

이 프로젝트는 매주 월요일마다 7장의 everyday 에디션(드라이포인트 판화)을 준비한 후, 하루에 한 장씩 다른 이미지들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3개월간(2005.3월-5월) 진행되었다. (총 약 80여장)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이 작업은 "시각적인 일기쓰기"로도 볼 수 있다. 작품에 주요한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마른 식물, 특히 꽃의 이미지는 아름답지만 곧 사라져버리는 하루의 덧없음(fragility)에 대한 상징이며, 얇은 종이나 잉크, 심지어 매니큐어와 같은 일상적이고도 여성적 재료들을 통해 강조되고 있다.

황연주_판화에 혼합매체 드로잉_50×70cm_2005
황연주_판화에 혼합매체 드로잉_50×70cm_2005

우리의 현재가 비록 손에 잡힐 듯 분명해 보이더라도 우리가 그 점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과거의 기억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개인이 생각하는 정체성과 그것을 담보하는 기억간의 괴리는 끊임없이 자아의 현재를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의 삶을 이어주는 시간들은 찰나와 같은 무수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시간의 유한성은 매순간 과거속으로 시들어버리는 일상에 대한 아쉬움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각각의 드로잉들은 지나간 일상에 대한 기념과 축복의 의미를 지닌다.

황연주_판화에 혼합매체 드로잉_50×70cm_2005
황연주_판화에 혼합매체 드로잉_50×70cm_2005

기억, 그리고 과거 ● 우리는 스스로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억이란 현재에 의해 걸러지고 선택된 단편적 인상들에 불과하다. 즉, 절대적으로 사실적인 기억이란 것은 일종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과거(혹은 그 속에 내재된 기억)란, 현재의 자아를 형성하는 근간이다. 기억이 사라지면 그 사람도 사라진다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SF영화나 TV의 신파적 스토리에 자주 등장하는 기억 상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존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대변되는 존재의 사라짐 뒤에도 계속 그를 현실 속에 남아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불확실하건 간에, 과거에 매달림으로써 내가 인식하고 있는 나 자신으로서 살고 있다는, 현재의 생존에 대한 증거를 붙잡고 싶어하는 것이다.

황연주_판화에 혼합매체 드로잉_50×70cm_2005
황연주_판화에 혼합매체 드로잉_70×50cm_2005

사라져버리는 현재와 다가오는 죽음 ● 한편 나의 현재가 비록 손에 잡힐 듯 분명해 보이더라도 인식하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피할 수 없이 자명한 사실이다. 이처럼 개인이 인식하고 싶어하는 기억에 기반한 정체적 자아와 그 기억의 미끄러짐은 끊임없이 자아의 현재를 위협하는 칼날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기억들에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읽어냄과 동시에 그 속에 드리워진 미래의 그림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삶에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으로 대표되는 사라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에 대한 불확실성은 필연적으로 눈앞에 와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수반한다. 그러나 비단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기억의 죽음, 즉 사라짐도 있다. (물론 죽음은 두 경우 모두를 포함한다.)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함께 했던 기억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을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과 동일한 사람으로 인식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길,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상실은 죽음 그 자체보다 슬프다. 결국 나의 작업은 이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기억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모습 사이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과거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사라짐이며, 이는 때로는 죽음에 의한 존재의 상실로, 때로는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시들어버리는 일상에 대한 아쉬움으로 작업에 반영되고 있다. 작업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들은 단지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사라지는 기억에 대한 슬픔이다. ■ 황연주

Vol.20060624c | 황연주 드로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