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migration, de Centre

갤러리 우덕초대 남궁환 개인展   2006_0623 ▶︎ 2006_0704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76×56cm×2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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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23_금요일_05:30pm

갤러리 우덕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번지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02_3449_6072

점화(點畵)로부터 점화(點火)된 우주의 생성원리 ● 남궁환은 종이의 일정부분에 물을 칠한 다음, 그 위에다가 붓으로 점을 찍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화면에는 점 주변으로 먹물이 번져나가면서 얼룩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생겨난 점들이 모여 여러 비정형의 형태와 정형의 원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형태들이 마치 연쇄 고리처럼 서로 연이어지면서 확장된다. 이로써 그의 화면은 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와 여백으로 나눠진다. 이미지는 최종적인 이미지이기보다는 임의적인 이미지처럼 보이고, 그 자체 고정되고 완결된 형태로서보다는 현재진행형의 비결정적인 형태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화면 자체가 열려진 무한공간으로서, 그 속에 담겨진 형태는 무한증식 중인 가변적이고 임의적인 입자가 된다. 이때의 화면과 형태와의 유기적인 관계로부터 비가시적인 운동성이 느껴진다.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76×56cm×7_2006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76×56cm×4_2006

작가의 그림은 외관상 이처럼 여백과 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형태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는데, 이는 하나의 점으로부터 생겨난 우주의 생성원리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즉, 작가의 그림은 우주가 생겨난 최초의 순간과 과정과 원리에 대한 비유처럼 읽힌다. 하얀 종이는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의 무(無), 절대적인 무 그 자체에 해당하며, 이로부터 하나의 점이 생겨나고, 이 점은 다른 점을 부른다. 마치 세포 분열하는 것처럼 자기와 같으면서도 다른 점들을 반복 재생산하고, 이 점들이 모여 우주를 생성시킨다. 이는 마치 비정형의 꽈리 형태를 연상시키고,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속돼 있으면서 그 속에 동일자와 비동일자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프랙탈 구조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하나의 점은 하나의 존재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점으로부터 생겨난 얼룩은 존재가 발하는 기(氣), 에너지에 해당한다. 생명을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핵인 것이다. 이는 점이 물을 칠한 바탕으로부터 생겨났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이때의 물은 말하자면 최초의 물질인 것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점, 하나의 획, 하나의 필은 작가의 호흡과 연속되고, 점을 찍어나가는 작가의 행위를 매개로 하여 작가(소우주)는 우주와 연속된다. 그 구조가 같으면서도 다른 반복패턴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호흡의 생리와도 같다. 그 행위와 구조, 그리고 생리는 우주의 생성원리에 일치하며, 세계의 그것과 통한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 플로티누스의 일자(一者), 칸트의 물(物) 자체, 그리고 라이프니츠의 단자(모나드)로 나타난 세계의 근원적인 존재와도 통한다. 세계는 말하자면 이러한 근원적인 존재로부터 유래한 같으면서도 다른 반복구조와 차이가 만들어낸 무한연쇄의 소산인 것이며, 근원적 존재의 우연하면서도 무분별한 집합과 해체의 소산인 것이며, 그 망 속에서의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무한순환의 소산인 것이다. 이로써 남궁환의 점화(點畵)는 우주와 세계와 존재가 생겨난 최초의 순간과 과정과 생리에 대한 명상에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이는 같으면서도 다른 차이를 반복 재생산하는 무한연쇄구조와, 차이를 매개로 하여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속돼 있는 프랙탈 구조, 그리고 우연과 필연이 맞닿아 있는 순환구조로서 나타난다. 하나의 점으로 화(化)한 존재와 다른 존재가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연속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존재의 실체를 반성케 한다. 즉 물리적으로 점은 실체가 없다. 존재란 이처럼 실체가 없는 점으로부터 생겨나 재차 그 점 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우연하면서도 필연적인 계기에 의해 작용되는 운동성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의 그림은 이처럼 존재와 부재, 유(有)와 무(無)가 서로를 넘나드는 경계에로 우리를 이끈다. 질 들뢰즈는 주체(존재)란 우리가 막연하게 일컫는 언어적 습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존재(존재의 이름)는 아마도 부재를 인정하기 싫은 의도적인 착각과 의지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76×56cm×3_2006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56×76cm×9_2006

남궁환의 그림에서의 점은 이처럼 존재에 비유되고, 점들의 집합은 우주에 비유된다. 말하자면 일종의 우주를 도해한 그림, 즉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캔버스에다가 먹물과 아크릴, 그리고 스스로 빛을 내는 자기 발광성 안료인 축광(蓄光)안료로 그린 다른 일련의 그림들에서 보다 본격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그림에서 이는 겹겹이 중첩된 원형이 정방형의 사각형에 담겨진 형태로서 나타나고, 이 형태가 반복적으로 열거되는 구조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과는 달리, 한 겹으로만 그린 것이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중첩된다. 즉 그림의 이면에서 가려지거나 암시되는 무수한 그림들의 레이어로 중첩돼 있는 다층구조를 함축한 것이다. 한편, 이때의 반복 열거되는 형태는 사실상 무한을 향해 열려져 있다. 즉 형태를 한정하는 캔버스의 가장자리는 임의적인 것일 뿐, 사실상 무한의 메타포로 느껴진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독자적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다른 그림들과 연이어져 제시된다. 그리고 밝은 대기 속에 노출된 형태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암실과도 같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제시된다. 그러니까 일종의 설치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 속에 빛을 암시하는 어둠, 어둠 속에 빛이 거하는 집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 자체는 일종의 신전과 성소의 메타포로서 나타난다. 즉 캄캄한 어둠 속에 설치된 캔버스에서는 축광안료로 그려진 중첩된 원형이 드러나 보이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신성한 장소에 들어와 있는 듯한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존재가 어둠 속에 지워지고, 빛이 그려 보이는 형상과의 일체감을 느낀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사물에 대한 보편 인식이 전이된다는 점이다. 즉 축광안료로 그려진 부분이 대기 속에서는 다른 불투명한 안료로 그려진 그림들에 묻혀 드러나 보이지 않는데, 이때의 가시적인 그림을 감각적 실재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은 그림이 어둠 속에 설치될 때 축광안료로 그린 부분이 비로소 빛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는데, 이때의 가시적인 그림을 감각적 실재를 넘어서 있는 진정한 실재, 참 실재에 비유할 수 있다. 이로써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관념적인 것에 실체를 부여한다는 예술과 관련한 오랜 기획을 실현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존재는 이처럼 빛보다는 어둠 속에서 드러나 보이며, 지식보다는 무지와 침묵 속에서 더 잘 드러나 보인다. 이는 감각적 세계를 의심하게 만들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식과 논리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빛과 어둠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서, 빛과 어둠이 상호 내포되는 양가성의 경계를 주지시킨다.

남궁환_transmigration_혼합재료_33×33cm×81_2005~6
남궁환_transmigration_캔버스에 혼합재료_33×33cm×9_2005
남궁환_transmigration_캔버스에 혼합재료_33×33cm×49_2005

또한 이 일련의 그림들에는 원형과 사각형이 서로 포개진, 반복 패턴의 구조적 특징이 드러나 보인다. 이는 만다라와 함께 중세 연금술의 근원 구조로서, 그 이면에는 우주와 세계의 기본형에 대한 비전이 놓여 있다. 여기서 원형과 사각형은 그 자체 완전한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즉 원형은 닫혀져 있으면서 열려 있는, 무한과 유한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양가적 존재원리를 말해준다. 그리고 사각형은 일체의 외부로부터의 작용으로부터 닫혀져 있는, 그 자체 자족적이고 안정적인 체계를 말해준다. 이처럼 원형과 사각형이 중첩된 형상과 더불어 만다라는 안정적인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불안정한 양가성의 운동(빛과 어둠, 음과 양이 상호 내포되는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남궁환의 그림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사유와 명상에로 우리를 이끈다. 그림에 드러나 보이는 형상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점이란 사실상 그 실체를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관념적 존재에다가 형상을 부여함으로써 감각적 실체로서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처럼 실체를 결여한 존재는 존재와 부재, 무와 유, 있음과 없음의 구분을 의심하게 하고, 진정한 존재는 그 구분과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에 있음을 주지시킨다. 점들은 순환운동을 무한 반복하고, 존재는 그 운동과 구조 속에서 생성하고 소멸된다. 존재도 없고 부재도 없다. 무도 없고, 유도 없다. 이는 다만 관념의 소산일 뿐. 어둠 속에서 내(존재)가 지워지고, 낯설면서도 친숙한 빛과 일체화되는 느낌은 내 속의 타자를 불러일으키고, 절대적이고 무한한 우주 공간을 떠도는 미아로서의 존재감을 불러일으킨다. ■ 고충환

Vol.20060625e | 남궁환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