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_그 너머의 이야기

2006_0622 ▶︎ 2006_0730

김미형_breathing space(1999-2000)_버즘나무잎_가변설치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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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22_목요일_06:00pm

김미형_김민정_김시연_김현지_박성연 심소라_유진영_전가영_최원정

갤러리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12번지 Tel. 02_323_4155

벽 _ 그 너머의 이야기어떤 길을 막아 흐름을 흩뜨릴 수 있다면, 무관심한 흐름이 그 길을 뚫고 지나게 된다. (루이스 칸) 이런 일이 갤러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전시장의 공간을 막아, 통로를 막아, 입구를 막아 동선의 흐름을 흩뜨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미난 놀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전시장에 벽이 서고, 기둥이 생기고 문이 나면, 지나기가 어렵게 되고 이로 인해 새로운 길이 생기고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 질 것이다. 벽은 흐름을 막고 바꾸고, 길을 방해하고 만들고, 기존의 공간을 허물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며, 불편하지만 흥미를 유발할 것이다. 본 전시는 '텅 빈 흰 벽과 공간', '갑작스레 나타나는 문과 벽', '좁은 골목길'과 같이 본래의 흐름을 흩는 벽들과 이를 뚫고 지나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작품들 그리고 이들로부터 고무되는 유희의 장이다.

김민정_숨쉬는 벽_사진, 영상 육성, DVD영상 설치_00:03:30_2006
김시연_barricade_소금_가변설치_2006
김현지_樂樂파라다이스_홀로그램 스티커_가변크기_2006

이야기는 벽에서 시작된다 ● 누구에게나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 앞에 우뚝 선 벽을 맞닥뜨렸을 때, 굳게 닫힌 문을 열고자 손잡이를 잡는 순간, 밀폐된 방에 혼자 있을 때, 원하는 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 직전,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오고 일순간 온몸의 근육이 긴장으로 약간 경직되는 찰나의 경험. 또 벽 너머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들려 올 때, 벽에 뚫린 구멍과 벽 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빛을 발견했을 때, 우리의 호기심은 벽을 통해 들어오는 정체 불명의 그것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발동한다. 그 소리와 빛이 던지는 유혹의 덫에 걸려든 우리는 그 실마리를 쫓아 추적에 들어가고 때로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벽 너머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고 선 벽은 마치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장애물과 같이 여겨지지만 여기서부터 우리의 상상력은 피어 오르고 보이지 않는 세상, 저편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벽에서 시작된다.

박성연_숨쉬는 사과_에어벌룬_지름 200cm_2005
심소라_투명벽화 그리기_투명 PVC, 반사필름, 반사 아크릴, 나무_475×355×10cm_2006
유진영_abundant emptiness_비닐, 혼합재료_높이 65cm_2006

벽으로의 모험 _ 그 너머, 그로부터, 그 사이에 ● 모험은 유리문을 통해 희미하게 보이는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규칙적인 숨소리로 가득 메워진 전시장에는 벽과 벽 사이에 꽉 끼여있는 키를 훌쩍 넘긴 숨쉬는 사과(박성연)가 자리잡고 있다. 비좁은 자리에 놓여있는 듯한 사과는 사실 벽을 밀어내기 위해 점점 자신을 키워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험의 시작은 점점 조여올 것만 같은, 벗어나지 못하면 치일 듯한 벽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한 쪽에 스르르 열리는 벽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굳게 닫힌 문(김민정)이 있다. 어느 쪽이든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벽이 열린 순간 그 안으로 들어가면 벽은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하강을 멈추면 벽은 열리겠지만 밖으로 발을 내디딜 수는 없다. 유리로 된 잔디(심소라)가 벽으로부터의 하차를 가로막는다. 그저 벽 안에 꼼짝 못하고 서서 저 너머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공간(김현지)만 바라 볼 수 있을 뿐이고, 호기심 많은 모험가는 아득히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벽은 닫히고 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다시 또 이 답답한 벽에서 빠져 나오고자 발을 디딘다면, 관객은 또 한번 움찔하며 벽 안으로 물러서야만 한다. 그의 발자국이 찍힌 하얀 무늬의 바닥(김시연)은 그냥 바닥이 아닌 것이다. 황급히 내디딘 발을 거두고 선 곳은 또 다시 벽 속이고, 이제 선택의 여지 없이, 공포의 밀어닥치는 벽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열리는 벽을 선택한 모험은 이렇게 순탄치 않다. 그 어떤 것에도 쉽게 다가갈 수 없다. 공간은, 길은, 흐름은 이렇게 잘리고 끊기고 중단된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조심스레 열기 위해 작품(김민정)에 손을 댄다면? 문 안쪽에는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는 통로(전가영)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이 바로 문과 문,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관객을 벽 너머의 공간으로 안내해 주는 길이다. 마치 미로 찾기에서 선택한 길이 막다른 길임을 확인한 뒤에야 다른 길을 찾아 나서듯 전시장 이곳 저곳에서 막다른 공간을 만나고 또 다른 길을 찾아 헤매고 다닌다. 그리고 끊임없이 선택한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선 방안에는 오직 벽으로 난 구멍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벽 너머 저쪽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김미형). 하지만 단 한 발자국도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그저 벽으로 난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다. 계속 이어지고 반복되는 벽들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깨고 어리둥절하게 한다. 벽을 따라 걸으며 만나게 되는 벽장에 갇힌 이들(유진영)은 어쩌면 호기심에 시작한 모험 중에 공포라는 마법에 걸려 벽에 잠겨버린 앞서간 관객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빛이 소리 없이 부른다. 눈 앞에 어른거리는 녹색의 문(최원정)이 현기증 나는 이 공간에서 탈출시켜줄 것만 같다. 그러나 벽에도 바닥에도 잡힐 듯 잡힐 듯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녹색의 문은 손을 대면 그림자만이 드리워지는 환영이다.

전가영_variation on K 266_백열등_스테인드 글라스_가변설치_2006
최원정_푸른 달의 약속_거울 설치, 컴퓨터 애니메이션_가변설치_2006

상상! 끝이 없는 이야기 ● 전시장의 흰 벽에는 늘 작품이 걸리고 놓인다. 벽은 늘 엑스트라다. 벽을 앞에 두고 선 우리의 기준으로 인해 공간은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고 위치 지어 진다. 시선을 맞대고 있는 작품이 걸린 벽면이 말을 건넨다. 네가 볼 수 없는 내 뒤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걸 아느냐고. 마르셀 에메의 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주인공처럼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전시장 벽의 이쪽 저쪽을 넘나들며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이러한 상상이 전시장이 갖고 있던 기존의 질서를 흔든다. 갤러리 건물은 벽 그 자체로, 전시장의 벽과 공간들은 이쪽과 저쪽이 전치된다. 갤러리 입구로 들어서는 것은 벽으로 들어오는 것이 되고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벽을 드나드는 사람'이 된다. 종국에 벽에 갇혀 벽과 한 몸이 되어버린 주인공처럼 전시장에서 길을 잃는다면 당신도 벽 속에 갇히게 될지 모른다. 전시장과 계단, 통로, 엘리베이터에 이르는 모든 공간을 벽으로, 벽 안으로, 벽 너머로 구성해낸 9명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안과 밖, 이쪽과 저쪽이 넘나들고 전치되고 교차하는 본 전시가 모험에 참여한 관객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길 바란다. 눈앞에 가로막힌 전시장의 공간과 벽을 드나들고 넘어가며 실마리를 추적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동화 속 상상과 환타지의 세계로 가는 유희의 통로가 될 수 있다면. 벽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질 것이다. ● 두 친구가 이야기를 나눈다. "내게서 영감이 떠나버린 것 같네. 벽 앞에 있는 것 같다니까..." "그렇다면 자넨 멋진 주제를 찾아낸 것 같은데..." 그렇다. 벽은. ■ 송희정

Vol.20060627c | 벽_그 너머의 이야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