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랑 콜 리

이유정 회화展   2006_0628 ▶︎ 2006_0704

이유정_멜랑콜리 - 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94cm_2006

초대일시_2006_0628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6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이유정의 세 번째 개인전인 이 전시회의 전시장에서는 주로 낙원과 악몽의 경계 지점인 듯한 가상의 공간과 이를 가득 채운 동식물들과 인물들이 위계질서 없이 펼쳐지는 만화경 같은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이유정은 환영의 허상을 드러내는 오브제인 포장지, 신문 기사 쪼가리, 우표, 사진 등의 콜라주와 사실적인 이미지를 편집하여 서술적인 회화 작업을 해 왔다. ●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은 이전 작업들에 비해 시간성에 관한 집착이 두드러진 멜랑콜리 연작 - 「봄」, 「소녀는 우울하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금이다」, 「나의 달콤한 정원」 등을 포함한 근작들이 주를 이룬다.

이유정_멜랑콜리-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94cm_2006_부분
이유정_멜랑콜리 소녀는 우울하다_캔버스에 콜라쥬, 아크릴채색_112×194cm_2006_부분

「반짝이는 모든 것은 금이다」는 자본과 물질 만능 시대를 바라보는 우울한 상념을 밀도 있는 이미지들의 병렬적인 편집으로 보여준다. 「봄」은 유학 생활 중 자신의 뿌리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부재로부터 비롯되는 향수와 이상화의 관계를 다루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이른 봄부터 시작되어 봄이 끝날 때까지, 각기 다른 개화 시기의 꽃들과 풀들이 피고 지는 빠른 추이와 그 찬란함을 그때마다 느꼈던 대로 전부 기록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개입되는 추억들, 즉 계절의 순환에 자극받아 마구잡이로 환기되는 지나간 봄의 기억들까지도 모두 삽입하였다. 그 무모한 행위의 흔적은 화면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넣은 세부와 무진장한 붓질의 양이 만들어낸 높은 밀도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풍경은 한눈에 감지될 수 없다는, 작가의 고정되지 않고 산만한 여러 개의 시점은,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할 수 없을 만큼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화려한 봄을 흉내낸 것이다.

이유정_나의 달콤한 정원-식물적인 자화상_캔버스에 콜라쥬, 아크릴채색_116×91cm_2006_부분
이유정_나의 달콤한 정원-식물적인 자화상_캔버스에 콜라쥬, 아크릴채색_116×91cm_2004~5_부분

소녀에게 금지되거나 강요된 것들을 다룬 「소녀는 우울하다」는 작가가 어린 시절 혼자 놀던 마당의 풀밭에서 발견한 생명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아버린 소녀가 자연에 대한 경탄 대신 마주하게 되는 것은 냉엄한 자연의 질서에서 느끼는 우울함이다. 소녀만큼 치열하게 자연의 위계질서와 싸워야 할 존재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 문화에서 남성의 멜랑콜리는 흔히 천재적 영감이나 철학적 소양으로 여겨졌으나 여성의 경우에는 병증으로 취급되어 왔다. 작가는 이제껏 자신조차 남성의 눈으로 자신의 감정을 규정해왔다면 이제는 그림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시각으로 그것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을 사로잡고 억압하는 '이미지'에 대한 반발과 동경의 모순적 공존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모순과 마찰이 화면 전체에 씨줄과 날줄처럼 짜여 있어 착잡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유정_멋진 신세계_캔버스에 콜라쥬, 아크릴채색_112×194cm_2001
이유정_모라토리엄_캔버스에 콜라쥬, 아크릴채색_91×116cm_2000

유년기와 사춘기를 군사 독재 정권 아래의 분단 냉전 체제 속에서 보낸 작가의 세대는 생각과 정서가 늘 양 끝으로 갈라져 있음을 느껴 왔다. 다양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회에서 어느 한쪽에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늘 소외된 중간 지점에서 버티어 왔던 소심한 자의 생존을 위한 최대한의 제스처가 멜랑콜리한 태도이다. 불안과 분노를 자신을 향해 터트리는 방식으로 씁쓸한 평화를 구한다. 이 불온한 그림들은 위협적이랄 것은 없지만 어느 쪽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전통과 현대, 동과 서, 남과 북, 남과 여, 기성세대와 신세대, 개인과 사회, 악몽과 이상향, 현실과 이상, 자연과 인공, 욕망과 규범, 감시와 도피 등의 극단적인 것들은 행복하게 공존하기 힘들다. 어느 하나는 다른 것을 억압하거나 구속하고 또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전복시키는 과정에서 힘이 센 것은 다른 하나를 배제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나의 낙원을 꿈꾸는 것'에 대한 불안은 어느 한쪽을 바라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작가는 여기서 자신의 의식을 감시하는 또 다른 나와 화면 속에서 만난다. 일상에서 쌓이는 착잡하게 얽힌 상념을 비우기 위한 방법으로서, 혹은 공허한 삶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도피로서, 화면을 이미지로 채우려는 집착은 오히려 범람하는 이미지와 상념으로 뒤덮인 풍요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의 정서를 보여준다. 혼돈과 미로가 될 때까지 채워나간 화면 속에서 작가는 감상자가 주어진 여러 갈래의 실마리를 통해 각각 자신의 시각 경험에서 비롯되는 접근 방식으로 그림 속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이유정

Vol.20060629c | 이유정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