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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21_수요일_05: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www.artside.net
"세계를 비추는 거울에서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쩌춘야, 리우웨이의 예술세계" ● 전대미문의 중국 사회분위기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용광로와 같이 중국인을 혼란스럽게 하며, 예술가들은 이러한 격정의 일상을 표현하며 정의할 의무를 갖게 되었다. 또한 서구 예술사조의 유입은 중국의 지대한 예술적 핏줄의 뜨거운 혈류가 통과할 새로운 길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 애당초 중국의 일상은 극도로 단순한 삶의 양상이었다. 마오리즘을 그 기저로 한 이른바 집단적 정신(collectivism)의 강조는 국가와 당을 삶의 지상적 과제로 부각시키는 과정의 역사였으며 예술 또한 인민에 봉사하는(serving the people) 매체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러나 차츰 한 개인의 존엄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촉구되면서 중국 예술의 위대한 전통적 혈류들은 세상으로 뛰쳐나와 세상과 뒤섞이며 세상에 반성의 일침을 가하는가 하면 세상 사람들의 바램을 대신 비추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미술의 현상을 가리켜 우리는 저명한 비평가 리시안팅(Li Xianting)이 1979년에 개최되었던 "별들의 전시(Stars Exhibition)에서 명명된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나 "정치적 팝(Political Pop)"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의 예술운동은 중국현대미술의 요람이었고 이제는 모든 권좌를 차지한 왕가의 엠블렘과도 같다.
쩌춘야와 리우웨이 역시 위에서 살펴본 취지와 자신들의 예술의 격정을 함께 펼쳐냈다. 쩌춘야는 독일의 카셀에서 체류하며 회화를 전공할 때 북유럽의 표현주의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더군다나 독일의 시골지역을 자주 여행했던 쩌춘야는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직한 삶의 깊이'나 '조화로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절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팔대산인(Bada shanren)이나 후앙빈홍(Huang Binhong)과 같은 중국의 전통 산수작가들의 예술세계에 이미 표현주의적 성향이 기존했음을 깨닫는다. 더군다나 이들 작가들의 표현은 단순한 내면의 표출이 아닌 낭만적이면서도 풍요로운 삶의 깊이에서 어우러진 표현이었다. 쩌춘야는 삶의 깊은 이해로부터 우러나오는 회화의 필치로 초록 개를 그려왔다. 그리고 이 초록 개는 작가의 애완견 '헤이젠'이었다. 쩌춘야는 헤이젠으로부터 한없는 정직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초록의 신체 안으로 붉게 달아오르는 신체부위를 강조함으로써 욕망의 분위기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한다. 이는 개개인의 욕망을 상정하는 것인 동시에 욕망에 의해 진행되는 사회에 대한 풍자였다. 반면 쩌춘야의 근작들은 '복숭아밭의 연인들'과 '복숭화꽃'과 같은 타이틀처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극의 관능을 담고 있다.
리우웨이는 애초에 마오쩌뚱이라는 거대한 주춧돌 위에 세워진 집단주의의 가공할만한 지배력을 꼬집어 왔다. 마오쩌뚱의 초상화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도 나이를 먹은 듯했다. 그리고 그는 집단주의 아래 형성된 관료주의의 무거운 사회분위기를 냉소적으로 풍자했다. 우리에게 '비즈니스 맨'이나 '신세대'시리즈로 잘 알려진 리우웨이의 후속작 역시 강렬한 필치와 빠른 속도감으로 중국의 다이나미즘의 빛과 그림자를 지적했다. 그런데 이번 리우웨이의 작품세계는 작가의 외부세계, 즉 사회에 대한 풍자나 냉소가 아니라, 작가자신의 내부세계, 즉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진 자연의 불가사의한 매력에 대해 거칠고 투박한 필치로 표현한다. 리우웨이는 우리의 지각(perception)이 좋다고 느끼며 판단하는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과 온갖 나쁜 것들이 사실은 허위라고 생각한다. 가령 우리가 깨끗하며 쾌적하고 풍요롭다 못해 달콤하다고 느끼는 것들이나, 아니면 지저분하고 거칠며 빈핍해서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가치 판단의 분별심을, 리우웨이는 못마땅하게 여긴다. 리우웨이는 하늘이건 꽃이건 숲이건 이 땅 위의 모든 삼라만상은 우리 마음의 여하에 따라 하나의 일관된 본질로 관통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센티멘탈한 그의 붓끝으로 온 세상의 모든 것은 일관된 화풍으로 녹아 든다. ● 이번 전시회의 두 사람은 그간 우리의 외부세계를 그려내며 그들의 명성을 쌓아왔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외부세계, 즉 사회에 대한 가치판단을 따져 묻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불가사의한 매력을 화폭에 남길 뿐이다. ■ 이진명
Vol.20060702f | The Limelight of Chinese Contemporary Ar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