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alog

서울판화 2006展   2006_0705 ▶︎ 2006_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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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705_수요일_05:00pm

강정헌_고자영_구세주_김미로_김보경_김상경_김제민_김종현_김창수_박영근 박지나_배지은_신수진_신승균_심효선_오영재_오창규_이미숙_이윤경_이정은 장양희_정상곤_조명식_조혜정_최경주_최성원_하원_홍보람_황연주_황인선_한기훈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Dualog (혹은 Dual-Log) ● 호접몽(胡蝶夢). 꿈을 매개로 나누어진 한 주체의 두 정체성, 즉 나비와 장자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듀얼로그(dualog)이다. 다이얼로그(dialog)를 잘못 표기하거나 발음한 것과 같은 이 단어는 두 개 이상의 상이한 사고, 견해, 방식 그리고 현상이 이항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지시하는 신조어이다. 다이얼로그가 두 개 이상의 사고주체가 만나 대화를 통해 합의된 결론에 이르기 위한 행위를 의미한다면, 듀얼로그는 하나라고 믿었던 그리고 전제했던 한 개체 혹은 구조 내에서 사고와 의식들이 양립하며, 더 나아가 긴장된 대립상태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긴장된 관계는 미술의 내?외부에서 쉽게 관찰된다. 미술이 여전히 물리적 실재와 형상이라는 허구의 대립적인 구도를 갖고있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예를 들면, 한 작가의 머리 속에 있던 관념적인 형상이 물질과 만나면서 갈등을 겪게되는 것도 듀얼로그의 한 경우이다. 탈 물질의 상태에서 자유롭던 상상은 구체적인 물질들을 만나면서 의도하지 않은 변형과 왜곡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작업과정에서 벌어지는 작가의 주관과 물질 혹은 물리적 환경과의 듀얼로그 상황이다. 비록 작가가 오랜 숙련을 통해 물리적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표현할지라도 여전히 물리적 환경은 작가의 작업에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대립적인 이항작용 속에서 원 형태의 순수성과 물질의 속성이 공존하는 작품이 된다. 그러니까 한 작품이란 언급한 두 대립항의 듀얼로그의 결과물이다.

김미로_천적공존 coexistenceof natural enemy_에칭_20×35cm_2005 김미로_overlapping drawing_에칭, 꼴라쥬_40×60cm
김제민_Police Line Do Not Cross_디지털 프린트_25×35cm_2006

외적으로 작가와 관객사이의 듀얼로그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유사한 형상 앞에서도 수없이 다양한 견해들이 파생하고, 작가와 관객은 한 작품을 매개로 동상이몽이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는 말이나 텍스트라는 합의된 의미체계가 아니라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매우 주관적인 형상을 통해서 매개된다. 전자가 다이얼로그 식의 의미이행이라면, 후자는 두 개체의 다른 주관이 형상을 매개로 양립되는 상황이다. 이것을 창작과 감상사이의 듀얼로그라고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가 작가의 고유한 의도와는 다른 사유의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식 모더니즘 비평에서 우리는 미술의 현상과 존재에 대한 이중적인 사고가 보편화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반면에 모순되게도 이 이중적인 것들의 이상적인 결합을 추구하였던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회화이론은 형식이 지닌 평면성을 내용과 일치시키면서 듀얼로그의 상태에 있는 두 개체를 일치시키려고 하였다. 그린버그의 논리는 플라톤까지 소급되는 본질과 현상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한다. 그러한 이분법적 논리 속에서 현상은 부차적인 것이고 본질이 우선한다. 그래서 결국 이중성이란 결과될 하나를 위한 전제조건처럼 보인다. 삼단논법의 논리는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변증법적인 세계관에서도 이질적인 두 개의 개체를 상정하고, 이것의 갈등과 충돌 혹은 합의가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반대편에 놓인 것이 듀얼로그이다. 듀얼로그는 두 개체의 독립성을 인정하며, 두 개체가 하나로 통일 혹은 융합되더라도 그 속에서 자율적인 존재로서 남아있다는 점을 의식한다.

김창수_이원군중간[二元群衆 間]_명멸[明滅]_31-18, amid the dual crowd_FL_31-10
박영근_토끼/速/토끼는 상대를 보고 거북이는 목표를 본다_드라이포인트_78×52cm_2006

서울판화는 2006년에 "스며듦"이라는 주제로 판화 개념 속에서 다양한 주제와 형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 다양한 개체들이 장르개념의 자율성과 해석의 지평에 기초하여 서로 조율되는 것을 실험해 보았다. 그러나 이 조율은 궁극적으로 일치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미명 하에 개체와 개체들은 일관되고 통일된 질서나 체계 속에서 논의될 수 없다고 판단되어졌다. 대신 다원주의와 혼성성이 현상을 설명해 줄 개념으로 부각되었다. 다원주의는 모더니즘이 추구하던 중심적 사고의 해체하고 주변들간의 위계 없는 공존을 설명하고, 타자성의 인식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간의 생물학적 차이(sex)를 인정하지만 사회적으로 동등하다는 개념(gender)이 중요시되고, 제3 혹은 제4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도 듀얼로그 식의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가속화되는 기술발전에 감탄하면서도 아날로그의 미감을 여전히 선호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듀얼로그는 다원주의 현상적인 모습이 아닌 다원주의 속에서 각 개체가 다른 개체에 대한 태도와 사유이다. 혼성주의에서는 성격이 서로 다른 장르가 결합하고, 다른 스타일의 작가들이 공동작업에 임하고, 관습적인 것과 아방가르드적인 요소들이 교류한다. 그러나 질량불변의 법칙처럼, 개체의 성격은 다른 개체에 함몰되거나 특성을 변화하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개체와 접하면서 그 특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흔히 볼 수 있다. 개체의 성격은 형식적인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각종 이슈와 사고에서도 이러한 분리된 사유체계를 볼 수 있다.

박지나_긴목오리_120×140cm_2006
배지은_20 years_한지캐스팅, 손거울, 오브제_10×23cm, 33×34cm_2006

이제 우리는 다른 식의 사고를 예술과 작업이라는 내적인 측면과 예술과 사회라는 외적인 측면에서 이중적인 상황을 설정해보고 그 차원들이 어떻게 병립?공존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매체가 메시지이다"라는 맥루한의 명제는 형식과 내용이 사회적 혹은 역사적 맥락에서 동일한 운명체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현재의 미술현상에서, 주로 비평에서 언급되듯이, 내용을 실어 나르는 담지체(site)로서 형식과 내용은 일치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판화의 경우, 형식이나 기술에만 치중한 나머지 내용 없는 그래서 장식적인 형상성으로 퇴화되었다는 비난도 면할 수 없었다. 또한 모더니즘의 중요한 미술원리인 원작성이나 유일성에 고려한다면, 판화는 복제예술의 한 방편일 뿐이며, 더욱이 회화에 종속된 하위장르일 뿐이었다. 그리고 "원본 없는 이미지"라는 의미를 지닌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e) 개념에서도 원본에 의해 파생된 개체들을 저급화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반 플라톤주의를 연상시키는 보드리야르의 개념은 현대의 시각관계를 유연하게 설명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지만 그 태도는 여전히 차별적이며, 이중적이다. 이러한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 듀얼로그의 사유이다. 듀얼로그는 이중적인 사고가 아니라 이중성을 이해하고 개체들간의 긴장된 관계 속에서 존재를 실천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심효선_이곳에서 나는_석판화_100×70cm_2006 심효선_저곳에서 나는_디지털 프린트, 실크스크린_100×70cm_2006
조혜정_몸연구[BODY STUDY]_디지털 프린트

작은 예로서 우리는 원본 이미지를 복제된 이미지와 차별하고 그 관계를 일종의 계급적인 면으로 해석하려고 하였다. 사실 원본이나 원작에 대한 집착은 판화장르의 본래적인 속성, 즉 두 개 이상의 동일한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에 모순적으로 대립한다. 판화의 복수성과 예술작품의 단일성 그리고 일회성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팝 아트에서 복제된 동일한 이미지들이 미술 속에서 단일성을 획득하고 '예술작품'으로 그 가치를 획득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창조와 복제는 순환적 논리 속에서 상호교류하며, 도그마가 되어버린 제도적 미술관념을 바꿀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듀얼로그 개념의 이해 속에서는 이 원본과 복제는 각자 자신의 독립된 가치를 갖고 있으며, 서로 다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는 더 이상 위계적인 질서 속에서 논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같은 판에서 나온 에디션들도 각자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개체로 인정한다는 것이 듀얼로그 식의 사고이다. 같은 공정에서 찍혀져 나 온 수없이 많은 로봇 중에 하나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여주는 SF영화가 있다. 이 로봇은 그것을 만들어낸 제도의 합리주의에서 볼 때 실패작이지만, '남다름'을 추구하는 인격체로서 그리고 유일한 개성으로서의 자신을 찾아나간다. 예술이란 바로 원본의 가치에 종속하기를 거부한 실패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작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려는 의지는 듀얼로그 식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성원_안감[lining]_패브릭에 디지털 프린트_190×145cm_2006
하원_A DROP OF SKY_비디오 영상설치_80×120×18cm

이번 서울판화2007년 주제전의 키워드로 이 단어는 현대미술 특히 판화장르를 둘러싼 현실을 반추 혹은 반성하고자 함이 첫 번째 목표이고, 두 번째는 작가들에게 이 개념으로 설정될 가능하고 다양한 표출을 기대해 본다는 것이다. ■ 김정락

Vol.20060705f | Dualo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