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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연_김진아_박재영_손원영_장희진展   2006_0630 ▶ 2006_0714

경지연_moire - relief 2006 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아크릴에 아크릴채색_32×74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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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30_금요일_06:00pm

경지연_김진아_박재영_손원영_장희진

스페이스 아침 서울 종로구 화동 138-7번지 Tel. 02_723_1002

경지연 ● 환영이란 감각의 착오를 통하여 실재하지 않는 형상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지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영을 통하여 실재처럼 묘사된 회화의 세계는 착시(optical illusion)를 통해서 우리에게 깊이감이 느껴지거나, 공간감이 느껴지는 실재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밀집된 선의 시각적인 혼합에 의한 일루젼이다. 모래사장 위에 가볍게 밀려들어 왔다가 나가는 물결무늬 같은 이미지나 그 어떠한 힘이 작용하지 않음에도 알 수 없는 전자기적인 힘이 느껴지는 것 같은 공간은 선들과 빛이 만나서 형성된 환영의 공간이다. 모아레(moire) 란 사전적인 의미로 '물결무늬가 든' '어른거리는' '물결무늬(천)'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옵티컬 아트에서는 두 개의 선이 서로 겹쳐지면서 나타내는 효과를 말한다. 이러한 선의 간섭효과를 통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는 감상자의 위치변화에 따라서 끊임없이 바뀌게 되고, 이 때 감상자는 마치 빛에 의해서 용해되고 부서지는 시각적인 흐름을 감지할 수 있으며, 어떠한 물리적인 힘이 작용하지 않음에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작동하는 악기처럼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모아레 효과는 기하학적인 특수성을 통해서 나타나지만 조금만 주의를 둘러보면 우리의 일상 생활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여름철 푸른 논 위로 바람이 스쳐갈 때 어떠한 무늬를 만들면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고, 겹쳐있는 창살이나, 문에 드리워 놓은 발, 여성들의 망사 스타킹처럼 얇은 천이 서로 겹쳐진 부분에서도 볼 수 있다. 본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각적인 드로잉은 관람자의 적극적인 감상과정에서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렇게 해서 얻어진 조형요소의 자율적인 힘, 즉 사물에 속박되지 않는 순수기호의 전개가 만들어낸 또 다른 환영은 관객의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moire - relief 2006: 空·間

경지연_moire - relief 2006 Ⅳ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아크릴에 아크릴채색_32×74cm_2006
김진아_옷핀_캔버스틀, 광목천, 옷핀_16×22.5cm_2003
박재영_올 그려가기_캔버스에 유채_91×65cm×2_2006

손원영 ● 그림의 조형성은 어떻든 일종의 '조각 맞추기'일 수 밖에 없다, 무한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따 옮기는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길조차도 현실의 단편들을 나름으로 조합(組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만큼 그림의 수공적인 조형성이야 말로 그 방향과 방법론이 어떻게 달라도 결과적으로 현실의 조합일 따름이다. -중 략- 규격적이면서 서로 다른 개체가 전체의 일정한 형식 속에 서로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조각그림 맞추기의 독특한 프로세스와 함께 오버랩(overlap)되는 꽃과 식물, 그리고 자연의 이미지가 결코 단순한 관찰물로서 존재할 수 없는 수수께끼같은 존재로서 거기에 실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결합과 해체의 앞뒤에서, 때로는 평면과 릴리프(relief)의 사이에서, 때로는 네가티브(negative)와 포지티브(positive)의 대비에서, 때로는 그림과 프린트의 기술적 전환 속에서 뚜렷이 각인되는「회화」라는 관념의 수수께끼가 말 그대로 「관계의 구성도」로서 거기에 조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 윤우학

손원영_empty-Drawing Puzz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호_2006
장희진_a space_캔버스에 젤, 과슈_50×150cm_2006

장희진 ● 저 멀리. 풍경너머풍경.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 공간. 비워진 것과 채워진 것 사이의 경계. 그 울림.

Vol.20060710a | a.new展

@ 우민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