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umentality of epistemology

엄기홍 개인展   2006_0715 ▶ 2006_0731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Vol.20040218b | 엄기홍展으로 갑니다.

전시오픈_2006_0715_토요일_05:00pm

목암 미술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30-3번지 Tel. 031_969_7686

탈존의 미학 : im/pulse의 구멍 뚫기 ● 7,80년대 혹은 90년대를 진지하게 살아온 이 땅의 미술인이라면 최소한 현대성과 탈현대성 사이를 변별하거나 수식하고자 했던 온갖 현란한 언어에 당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거대양식이 사멸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환기의 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고 본다. 졸작「인식론적 기념비」는 그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필자 나름대로의 인식론적 진술이자 글자 그대로 그 기념비이다. ● 작업은 먼저 글쓰기로 이뤄진다. 전형적인 논문 어투의 글이다. 자칭 논문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기실은 십여 년 전부터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주로 근대 혹은 탈 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2차 저술을 주로 참조하면서 쓴 글들일 터이다. 하지만 그 의미마저 폄하할 생각은 없다. 또 다른 어떤 세상에 대한 깨우침(mindfulness)을 염원하면서 내 나름의 지적 성장과 예술행위에 대한 반성을 담아낸 글이기 때문이다. 이때 화두는 늘 벼림(construction)과 버림(de-construction) 사이를 반복하는 도상(途上)에 나타나고는 했다. ● 필자는 생각의 벼림으로서의 논문 즉 글과 그 것의 버림으로서의 작품제작을 통하여 예술행위를 재구축re-construction한다. 간단히 말하면 논문을 형성한 글 혹은 까만 글자들을 구경 0.7mm 규모의 핸드 드릴링의 수 없는 반복을 통하여 없애버림으로써 논문은 작품으로서 재구축 된다. 이 벼림으로부터 버림으로 이어지는 쌍으로 된 일련의 행위는 곧 의미를 무의미로 바꾸는 역설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 행위와 작업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예술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메타-미술언어들에 대한 내 나름의 방편(方便)의 시각일 뿐이다. ● 일반적으로 우리의 오감 중 시각(vision)은 가장 합리적인 인식도구로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재현미술이 가능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시각은 회화에서 원근법을 추방하였고 칸트의 시각은 그 장식성을 비판하면서 점차 근대적 회화행위는 텍스트 내부에만 집중하게 된다. 비대상적 미술이나 미니멀리즘 미술은 매체자체를 대상화하게 되었고 마침내 캔버스와 물감은 회화에서 더 이상 삶의 진실을 벗겨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것은 곧 재현미술의 종언을 뜻한다. 말하자면 모더니스트들의 합리적 시각 또한 그들이 추방하고자 했던 신화 즉, 또 다른 하나의 신화체계였을 뿐이다. 방편의 시각이란 이와 같은 근대적 시각 혹은 어떤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부터 비롯되었다.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포멕스에 드릴링_각 115×97cm_2006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포멕스에 드릴링_각 115×97cm_2006

재현미술이후의 작업은 적어도 기술복제적이거나 비재현적이라고 할 경우가 많다. 나의 작품 또한 그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 앞서 말했듯, 드릴링은 10여 매의 포맥스를 관통하면서 마치 책과 같은 복제의 효과를 생산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정교하다 할지라도 손의 떨림이 있기 마련인 만큼 그 행위는 예기치 못한 우발적 사건을 야기 시킨다. 그 떨림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말하듯 일종의 맥박(im/pulse)의 시각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 작업에서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은 일차로 단일한 기계 복제적 드릴링임에도 불구하고 첫 피스부터 마지막 피스까지 그 새긴 글의 형태가 조금씩 차이가 짐으로서 나타난다. 결국 맥박의 시각으로 인하여 표지의 글씨는 마지막에 이르러 내파되고 산종된다. 의미는 정확하게 무의미로 되돌아간다. ● 또한 포맥스 작업에서 드릴의 빠른 회전속도 때문에 드릴은 순간적으로 포맥스를 녹여 서로 결합시켜버린다. 이들을 다시 낱개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표면효과라고 할 수 있는 부산물들이 나타나는데 이때 시각적이었던 글자는 촉각적 이미지로 변모하게 된다. ● 드릴링을 통한 맥박의 시각은 동일한 행위임(one and the same)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상이(one and the other)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데 묘미가 있다. 맥박은 탈육신화된 시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드릴링 작업은 쉼 없는 맥박의 켜짐/꺼짐(on/off)의 반복을 통하여 차이들을 생성시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맥박으로서의 작품인 「인식론적 기념비」는 그 결과물이 외관상 기계 복제적, 정태적으로 보일지라도 작품에 어쩔 수 없이 맥박 즉, 일정부분 살아있는 몸이 이입된 만큼, 그것은 논문의 잉여물이기 보다는 차라리 몸짓의 잉여물이다. 몸과 관련지어진 인식론 기념비는 근대적 시각이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의 이름으로 단죄했던 관능성도 일정부분 지닌다는 점을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 「인식론적 기념비」는 그런 점에서 연구자의 머리의 기념비이기 보다는 맥박의 아날로그적 기록이자 공간뿐 아니라 시간성에 속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나의 몸의 기념비이다. 무기물의 포맥스와 유기체인 몸은 맥박을 매개(mediate)로 하여 한 치도 빈틈없이 신체성을 나누어 갖기 때문에 드릴링은 시각적인 것을 신체화하는 작업(corporealization)이다. 그런 까닭에 시각이란 독립적이기 보다는 시간성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는 일종의 얽힘의 교차점이자 어떤 위반(transgression)인 것이다.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포멕스에 드릴링_각 115×97cm_2006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포멕스에 드릴링_각 115×97cm_2006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포멕스에 드릴링_2006

한편 방편의 시각과 관련하여「인식론적 기념비」가 지닐 수밖에 없는 놀이(play)에 주목한다. 종이처럼 얇은 박막의 글이 복제된 포맥스들을 책 모양이나 때론 펼쳐진 책처럼 연출하는 묘미는 확실히 놀이 개념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후기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개념차원으로 고정된 시각(visibility)으로부터 지각수준의 다양한 시각성(visuality)에로의 퇴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행위를 놀이라고 부르고 싶다. ● 문화사학자 호이징가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의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하여 유희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였다. 그는 문화란 원초부터 유희하는 것이며, 유희 속에서 문화가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유희를 다른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립적 범주로서 인간의 근원적 활동형식을 보았다. 왜냐하면 놀이란 인간의 생존과 관련 있는 활동이나 일에 해당하는 활동을 제외한 신체적 정신적인 활동인 만큼, 생활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무목적성의 활동이며 동시에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 활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놀이는 질서에 의해 유지된 세계에서 생길 수 없는 새로운 창조력을 낳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 「인식론적 기념비」를 제작한 이후 거의 노동에 가까운 드릴링을 통해서 작업이 이뤄진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놀이적 요소들을 노동과 결합시키고 있다. 놀이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놀이의 해방감과 노동의 속박함 사이에서(in-between)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작업에서는 노동을 각별히 중히 여기는 편인데 그 까닭은 이러하다. 인간의 문명은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노동을 극복의 대상으로 하면서 발전 해왔다. 시각예술에서도 작업과정에 곁들여 있는 신체에 가해진 노동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개념미술, 언어가 토대를 이루는 기호학적 미술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신체 역시 자신의 몸에 가해지던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면서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됨은 물론 후기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오면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는데 있다. 따라서 예술가의 몸도 이제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이제 정체성(identity)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항상 자본의 기획에 따라 사회적으로 몸 위에 기술될 뿐이다. 이와 같은 자본과 현대문명의 고도의 기술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우리는 단순성을 추구하는 원초적 삶이나 노동의 가치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치 미개사회에서 노동과 놀이의 한계가 종종 애매하듯이 그렇게 작업을 한다.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포멕스에 드릴링_2006
엄기홍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_포멕스에 드릴링_2006

또한 방편의 시각과 관련하여「인식론적 기념비」는 일종의 비정형(formless)과 관계한다. 흔히 앙포르멜 회화를 연상시키는 이 용어의 새로운 용법과 개념은 초현실주의 작가인 바타이유(Georges Bataille)로부터 비롯된다. 바타이유 자신은 비정형이란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거부하지만 그 단어의 임무는job는 있다고 말한다. 즉 그에 의하면 주어진 의미를 갖고 있는 형용사는 아니지만 사물들에 부여된 의미를 전락시키는 기능을 제공하는 용어가 비정형이다. 즉 이 용어에는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물들을 탈-분류화(de-classify)시키는 조작적(operational)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마치 비속어처럼 수행성(performativity)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는데 비속한 말들은 의미론적 가치는 지니지 못하더라도 해방 작용을 불러들이는 난폭함이 지니는 모종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방편의 시각과 관련하여「인식론적 기념비」에서의 문자사용의 의미를 짚어본다. 이러한 문자의 사용에 대하여 개념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문자와 비교해보자. 개념주의자들의 문자사용과는 아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념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오브제가 없는 즉 비물질적인 회화와 모더니즘미술이 추구하던 명료성을 언어나 개념을 창출하려 했지만, 나는 오히려 앞의 예처럼 수 가지의 조작개념을 포함시켜 놓고 그에 더하여 문자 혹은 문장을 단순한 기표 즉 이미지들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문자를 통해서 명백하기는커녕 오히려 작품의 의미나 개념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복선을 깔아 놓는다, 결국 인식론적 기념비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나의 방편의 시각이란 회화에 대한 하나의 개념적 방언(conceptual vernacular)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 엄기홍

Vol.20060715b | 엄기홍 개인展

@ 우민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