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sh Hour Ⅱ

공동기획_이음갤러리_갤러리 스케이프_갤러리 선컨템포러리   2006_0719 ▶︎ 2006_0730 / 월요일 휴관

천성명_달빛아래서성이다_혼합매체_가변설치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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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719_수요일_06:00pm

김명숙_유정현_이우림_천성명_한수정 루샤오판_샤샤오완_양미엔_왕지유엔_우지안준

주최_이음갤러리_갤러리 스케이프_갤러리 선컨템포러리 후원_문예 진흥원_한국 방송광고 공사_독립영화협회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20_5789 www.suncontemporary.com

Brush Hour II-회화의 진화 ● 19세기 중엽 사진의 등장에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 (Paul Delaroche)는 "회화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 뒤로 160 여 년이 흐르는 동안 회화에 대한 반성과 재해석은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되었다. 1918년 말레비치 (Kasimir Malevich)는 흰 벽면 위에 흰 사각 캔버스를 걸며 과연 회화가 더 이상 진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을 던졌고, 1921년 로드첸코 (Alexander Rodchenko)는 전시 5x5=25를 통해 "회화의 종언"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회화는 이러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붓과 물감만으로 실험을 거듭하였다. 1940년대, 평론가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는 환영과 서사 (narrative)가 사라진 완전한 평면성을 회화의 대안으로 삼았고, 1960년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Andy Warhol)은 대중문화로서의 회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아직도 회화는 회화자체의 순수성이냐? 아니면 타 장르로의 영역확장이냐?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회피하고 있다. ●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전시 "Brush Hour II"의 목적은 분명하다. 오랜 전통을 지닌 회화의 방어적이고 수동적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나무의 뿌리가 깊으면 쓰러지지 않지만 옮겨 심기는 어렵다고 했다. 회화 역시 하나의 방법론만 고집한다면 한 가지 토양 밖에 맛볼 수 없다. 그림의 구조는 나무의 생태와 비슷하다. 나무의 뿌리는 그림의 밑바탕이 되는 지지대 캔버스, 잎은 회화의 표피 즉 그림을 화려하게 색칠하는 안료라 할 수 있으며, 열매는 선과 색의 조합이 만들어낸 작가의 정신을 말한다. 이처럼 3가지 층위를 바탕으로 상호 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 내는 것이 회화가 생존해온 방식이다. ● "Brush Hour II"는 회화의 토양이라 할 수 있는 사각의 캔버스를 넘어 조각과 설치 작업까지 뿌리를 확장한다. 왕지유엔은 여성의 핑크 빛 란제리 위에 새로운 풍경을 새겨 넣고 색깔을 입힌다. 회화를 구성하는 2가지 요소인 색과 선 중 선을 과감히 가지치고 색만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각으로 새겨진 견고한 바탕으로 인해 그림의 서사구조는 탄탄한 설득력을 얻는다. 회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물질성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안료를 지탱하는 캔버스를 바꾸면 물감의 마티에르 이상을 보여줄 수 있다.

김명숙_Light draws_캔버스에 유채_96×162.2cm_2005
유정현_Gard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30cm_2006
이우림_흰꽃_캔버스에 유채_112×162.2cm_2006
한수정_Iris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6

조각회화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천성명의 작품 역시 회화가 타 장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겹겹이 쌓인 캔버스 더미 위에 눈동자까지 생생하게 묘사된 소년이 앉아 있다. 캔버스 위에는 물 위에 비쳐진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3차원 입체 소년 조각과 캔버스 위에 그려진 소년의 투영된 이미지 사이의 경계는 소년이 앉아 있는 접점을 기준으로 서로 소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이 마치 그림 속에서 뛰쳐나온 것 같다. 회화의 영역확장으로 이어진 회화의 탈주다. ● 순수하게 붓과 안료만을 가지고 매체의 물질성을 극복할 수는 없을까? 물리적 대상이 아닌 빛을 그리는 김명숙의 그림은 가볍고 얇은 유리처럼 깨어질 것 같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안료의 레이어는 투명함을 더해줄 뿐 결코 둔탁하지 않다. 마치 바닥에서부터 빛이 스며 나오는 발광체처럼 안료는 빛을 발한다. 사각의 캔버스를 고집하지만 김명숙의 붓질은 이미 재료의 물질성을 넘어서고 있다. 이우림의 몽환적 인물이 빛과 그림자, 실제와 상상의 경계에 서있다. 70, 80 년 대 월남 치마를 연상시키는 천 조각을 뒤집어 쓴 채 백일몽에 취한 소년과 소녀의 표정, 어두운 숲의 그림자 속에서 포옹하고 있는 인물의 뒷모습,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배경과 대비되는 화려한 문양의 의상이 생경함을 더하며, 인물과 배경, 현실과 판타지 사이,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벌린다. 그리고 그 간극은 몽환적 공간의 기초가 된다. ● 양미엔(Yang Mian)은 광고 속 인물을 그린다. 그러나 한때 가지고 있었던 광고 이미지의 화려함은 양미엔의 붓질을 통해 퇴색된다. 더 이상 존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까지 엷어진다. 겹겹이 쌓인 안개 속 인물은 실제가 아닌 환영에 가깝다. 웃고 있지만 더 이상 소비자본주의 유혹을 말하지 않는 인물의 미소는 실제와 판타지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낸다. 모노크롬에 가까운 색의 활용이 화면에 하나의 톤을 만들며 대상과 배경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지만, 모호해 질수록 화면 속 인물은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언제라도 증발할 것 같은 이미지의 잔상이 된다.

루 샤오판_no40. Safe Contact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06
샤 샤오완_The Old Man_혼합재료_100×80cm_2005
양 미엔_standard of beauty no.39_캔버스에 유채_180×120cm_2005
왕 지유엔_Underpants_혼합재료_76×70×10cm_2003~5
우 지안준_No.20_200×135cm_2005

회화는 이야기를 담아 내는 그릇이다.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사회비판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다양한 정신세계가 한 화면에 함축된다. 중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루시아오판 (Ru Xiaofan)은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풍선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위트 있게 묘사한다. 또한 그의 풍선은 소비대중문화의 경박함과 허영심을 담아낸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정현은 한국적 이야기와 동양화적 구도에 표현주의적 색채를 입힌다. 붓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물감 스스로 화폭에 스며들도록 하였다. 동양화의 농묵과 담묵의 유려한 자유로움을 화면 속 인물들의 표정에 대입하여 일그러진 현대인의 초상을 만들어 낸다. ● 회화는 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경계를 넘어 치유의 힘을 갖는다. 대상과 그림자, 실재와 환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던 한수정이 식물성과 동물성 모두를 가진 꽃을 창조하였다. 언뜻 보면 꽃을 클로즈업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꽃잎 대신 코끼리 등 동물의 피부가 입혀져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의 딜레마는 이질적인 두 개의 자아가 충돌하면서 생겨났다. 한수정의 꽃 그림은 껍질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속에 대립이 아닌 공생의 모습을 그려낸다. 우지안준(Wu JianJun)은 중력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치켜든 커다란 얼굴과 꼬리처럼 작아진 다리의 퇴화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화면 속 인물은 중력을 극복한 자유로운 유영을 즐기고 있다. 실제로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 우지안준. 그러나 그의 붓질은 미술사적 스타일의 완성을 넘어 치유의 모습을 그린다. ● 지금까지 회화를 3 가지 층위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세가지 방법을 모두 좇으라는 말은 더욱 아니다. 어쩌면 또 다른 층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뿌리와 잎과 열매를 머릿속에 그려라. 회화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진화의 주인공이 되라. ■ 이대형

Vol.20060718b | Brush Hour Ⅱ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