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짧다 "Hard-boiled Romance"

Vacance at gallery 175_003展   2006_0802 ▶︎ 2006_08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175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802_수요일_06:00pm

구명선_권경환_남화연_박미례_옥정호_이호인_한석현

전시기획_현시원

관람시간 / 12:00pm~07:00pm / 휴관 없음

갤러리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참여연대 옆) Tel. 02_720_9282

낭만이 우리를 데려다 놓는 곳 ●『낭만은 짧다』는 비현실적인 상상과 의지가 현실을 탐험하고 제시하는 "지형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의 「제3 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1919)의 모형에서 현실화되지 않은 또 다른 현실을 발견할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우리가 의심 없이 믿고 있었던 "보이는 것의 형태"를 뛰어넘는다. 그러면서 현실이 비현실을 대하는 전형적인 태도, 즉 현실의 낭만을 의심한다. 있음직한 환상을 답습하기보다 그것이 일견 헛되고 무용해 보일지라도, 정당한 자기 상상력ㆍ저항ㆍ각자의 시스템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는 보편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해 환상을 하나의 지탱물로서 이용"(슬라보예 지젝)하는 데까지만 비현실을 보기 때문이다. 현실의 질서에 기여하는 배열·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현실의 지형도와 달리, 『낭만은 짧다』는 각자 다르게 포착한 현실과 비현실의 괴리감을 오히려 드러낸다.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각 작품들은 실재하는 현실의 인식과 재료들을 변용한다. 그러면서 2006년 한국 사회의 환상을 점검하거나, 가상의 감성을 필터링 해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낭만처럼 제각각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과 사고의 형태를 구속하는 지배층-우리가 뚫고 나갈 수 없다고 믿었던 현실의 틀을 드러낸다. Hard-boiled Romance ● 『낭만은 짧다』는 현실에 부합될 수 없는 환상·낭만을 "비현실"이라는 단어로 묶는 대신, 각각 다른 축에 위치한 이 비현실의 움직임-도표를 그리고자 했다. 결국 이 도표(이번 전시) 위의 동선은 2006년 한국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에 자리한 "제3의" 가능성을 찾고 싶다는 데에 이른다.

옥정호_글로벌 코리안_폴라로이드 사진, 비디오_설치_2006
남화연_An ad-balloon CCTV, 애드벌룬 감시카메라_종이에 드로잉_54×39cm_2006
이호인_두렵다 말을 할까 하니 두려워_캔버스에 유채_60.5×72.5cm_2006
박미례_Daydream_싱글채널비디오_가변설치_2006

옥정호는 2006년 한국사회의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경기 영어마을」을 현실의 단편들에 오버랩 시킨다. "드디어!" "꿈" "슈퍼" "글로벌" 등 온갖 미래지향적 어구들로 치장된 어느 정치인의 연설은 욕망-영어-글로벌 코리안(global korean)으로 재현되는 사회적 환상에 주목하게 한다. 작가의 작업 속에서, '영어'와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벗어나거나 지속시키고자 했던 국가 정체성은 현재진행형의 일상이라 할 슈퍼마켓, 투게더(아이스크림)에까지 침투한다. 그런가하면 Bob씨, Jane씨, Tom씨라는 이름이 붙은 영어학원의 잠재적(!) '글로벌 코리안'들은 경기영어마을의 비디오로 들어가는 서막을 구성한다. 이렇듯 현실적 요구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풍경과 시스템은 환상을 쫓고자 하는 현실의 태도, 집단 환상과 개인의 요구를 환기하게끔 한다. ● 남화연은 "좋은 공기"(good air)라는 뜻을 가진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시각적으로 점유하며 지구 반대편에 있을 가상의 도시를 설계한다. 그가 만드는 개인의 비전(vision)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드로잉에서 시작해, "수만 개의 통로와 아홉 개의 경치"로 이어진다. 이 통로를 점거한 아파트 벙커, 애드벌룬 감시 카메라, 왈츠풍 지구 등은 철저한 작가의 법칙 즉 현실의 레이어(layer)들을 한 겹 한 겹 덧씌우거나 발설하는 역할로 이어진다. 실재하는 단서와 우연, 구축하고자 하는 질서들 사이에서 작가는 현실 시스템을 은유한다. 작가의 비전은 결국 견고한 현실에 구멍을 뚫고 저 멀리 끝까지 우리의 시선을 데려다 줄 수 있는 미로와 같다. ● 이호인은 단편적인 이야기를 짓듯 비현실적인 직관을 시각화한다. 노란 안전모를 쓰고 아스팔트를 깔고 있는 사람이나 우주/옥상, 무덤의 도상 등은 마치 인간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세계, 혹은 그 세계를 구성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섞임'을 보여준다. 이런 공간 속에서, 지금 이대로 충분한 과잉의 상태는 묘하게도 현실의 인간들이 감내하는 결핍·거리감과 통한다.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그의 화면 안에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인간과 풍경ㆍ공간 구조가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묘한 풍경과 감정의 부피는 언뜻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한편으론 현실을 형성하고 있는 요소들이기에, 언젠가 보았던 화면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 박미례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공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스키장과 대형쇼핑몰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인간들의 행위를 형태와 소리로서 변형, 반복해 제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대중사회에서, 허락된 낭만은 오히려 잠입할 틈 없이 꽉 짜여진 시스템에 의해 유지된다. 작가는 하얀 스키장에서 daydream, 오색찬란한 백일몽을 읽어낸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스키장에서의 유희와 쇼핑몰에서의 소비는 "낯설게 보기"를 통해 평범한 관습의 노출을 넘어 비범한 초현실로 각색된다.

권경환_슈퍼 울트라 그레이트_스티로폼, 라카페인트_가변설치_2006
한석현_MUST BE FRESH!!_비닐, 폴리프로필렌,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06
구명선_누군가 나를 보고 있어_종이에 연필_43×31cm_2006

권경환의 「슈퍼 울트라 그레이트」는 수공예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바이커(biker)다. 장난감에서 모티브를 취한 작가는 부족한 것들에 대한 시선을 유머러스하게 제시하되, 작품 제작의 노고를 스스로 배반한다. 여기서 "슈퍼 울트라 그레이트" 라는 외침은 그 어디로도 질주할 수 없는 바이커가 멈춰있는 순간을 맞받아친다. 현실을 전복하는 "전략적인 농담"은 실재하는 정상적인 상품과 사물들 너머의 의미로 달려간다. 그러니까 엉거주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이 3명의 바이커는 도로 위를 달리는 낭만의 주인공도 현실의 보조자(이동수단)도 될 수 없는 것이다. ● 한석현은"신선함"없이는 무용지물인 상추를 매끈하게 재현함으로써, 실제론 신선할 수 없는 가짜-상추를 만들어낸다. 그에게 상추는 일종의 "오마주"로 신선해야만 한다는 자신의 강박과 구원을 드러내는 상징인 셈이다. 전시장에 세워진 상추는 백과사전에 나열된 기존 속성을 모두 잃어버린 채 어디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상태가 된다. 라는 선언 같은 작품 은 신선함의 "의미와 무의미", "신선함-상추-생존"이라는 일련의 현실적 조건들을 의심하게 한다. ● 구명선_가상의 인물들이 "실존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을까. 구명선은 만화 형식의 탐미적 기법을 통해 캐릭터의 존재감을 표현한다. 환상의 세계이자 대리만족으로 치부되던 만화 속 인물들은, 작가에 의해 강한 존재감을 지닌 "단독자"로 드러나게 된다. 깊이 있는 감정상태가 부여된 인물은 만화 속 대사, 즉 가상에서 타이틀을 부여받았지만 "복수할거야" "누군가 나를 보고 있어" 라는 말은 사실적인 인물의 육성으로 들린다. 보기보다 쎈, 이 인물들은 비현실과 허구 속에 살고 있는 인물과 감상을 쉽게 판단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내보내는 셈이다. ■ 현시원

Vacance at gallery175 (2006.07.05~08.12)는 삼각형처럼 꼭지각을 이루는 세 번의 시리즈-전시를 통해 한여름의 바캉스를 상상한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태양 아래 파라솔, 허락된 자유와 낭만을 찾아 떠나는 바캉스는 이번 전시의 구축점인 동시에 대항이다. 한 여름에 떠나는 바캉스를 구성하되, 현실을 구성하는 다양한 조건들에 대해 자유로워지기를 실험하는 것이다. 「수평선을 세우다-Tuning」(7월5일~7월15일)은 유행처럼 번지는 튜닝 현상을 통해 사회의 강박과 개성의 양가적인 측면을 포착, 그 현상 이면과 바깥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태도에 주목한다. 「파라솔」(7월19일~7월29일)은 기존 전시공간이 답습해온 전시 공간 구성에서 탈피, '빛(sole)'을 통해 변신한 3차원의 공간을 제시한다. 「낭만은 짧다」(8월2일~8월12일)는 현실에서 비현실을 대하는 개인의 시각을 통해, 비현실적인 상상과 의지가 현실에서 하나의 거점이자 좌표인 낭만의 지형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의미와 형태, 조건들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이 세 번의 시도들은 '~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vacatio)' '비어있다(vacant)'는 바캉스의 어원을 따르거나 충돌하면서 의미를 증폭시킨다. 그러면서 교통체증도 갈증도 없는 전시장에서의 유영(遊泳), 우리가 직접 만든 바캉스를 꿈꾸는 것이다. ■ 현시원

Vol.20060803c | 낭만은 짧다 "Hard-boiled Romanc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