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있는 풍경

김혜연 회화展   2006_0811 ▶︎ 2006_0819

김혜연_전철풍경Ⅲ_요철지에 채색_102×72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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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전력홍보관 1층 Tel. 02_2055_1192 www.kepco.co.kr/plaza

김혜연-얼굴이 있는 풍경 ●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에 한 인간의 모든 것이 스며들어있다. 외형적 생김새를 통해 한 사람의 성격, 체질, 나아가 운명을 추론한 것은 단지 관상학만이 아니라 미술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사항이다. 그리고 외모가 심성의 표지라는 가정은 여전히 우리들의 삶에서 유효하다. ● 생각해보면 관상은 결국 보이는 육체를 인식하는 문화적 코드이자 규율이다. 리트머스지와 같은 얼굴을 살피고 그 얼굴을 읽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눈이다. 그리고 그 눈의 배후에는 문화적, 역사적 편견과 인습 등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 눈은 그렇게 애초부터 얼굴을 향해 열려있다. 미술사는 그 눈을 따라 누군가의 얼굴을 끊임없이 재현해왔던 역사를 보여준다. 모든 인간의 형상들 중 가장 인간적인 형상이 바로 얼굴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얼굴이란 자신이 인간임을 알고 있는 어느 주체의 외양이다. 그래서 얼굴은 개인의 '깊은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서 탐구되었다. 미술은 얼굴과의 관계를 통제하면서 비로소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화가들은 기본적으로 유사성의 원칙을 따르지만 항상 독자적인 표현성을 지니는 얼굴의 재현을 통제하면서부터, 얼굴을 의미작용과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매개물로 사용하면서부터, 그리고 얼굴이 미와 명상의 추상적인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스스로를 위해 존재할 수 있게 만들면서부터 하나의 예술이 되었던 것이다. 화면이란 여전히 얼굴을 비쳐주는, 반영하는 거울이나 수면 같은 것이다. 나르시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도취해 그 수면의 이미지를 끌어안으려고 한 행위는, 돌이켜보면 미술의 기원에 해당하리라. 누군가의 얼굴이 눈앞이나 기억 속에 항상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굴그림을 가능하게 한 동인이었을 것이다.

김혜연_그리나다힐스의 오후Ⅰ_요철지에 채색_103×73cm_2006
김혜연_아이가 있는 풍경_한지에 채색_105×74cm_2006
김혜연_파란집_한지에 채색_106×73cm_2005

김혜연은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하고 관찰한 사람들의 얼굴을 재구성했다. 그러니까 이 작업은 일단 누군가의 얼굴과 몸을 바라보는데서 출발한다. 본다는 행위는 인식하는 일이자 해석하는 것이다. 타인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만나고 그/그녀의 삶에서 자기 자신의 일상을 반추해본다. 아마도 가장 흥미롭고 질리지 않는 일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 일 것이다. 사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얼굴과 몸을 지켜보고 반응하고 함께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 오랫동안 남을 파악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서 살아왔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러니까 타인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 역시 남의 얼굴을 읽는 것으로, 이는 나와 남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 사회적인 성격이 강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타자에 대한 시각적 표상화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이 점이 인물을 그리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일 것이다. 일상 속에서 관찰한 삶을 영위하는 여러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이 이 작가에게 작업의 모티브를 제공해주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의 장소, 그러니까 집안과 찻집, 전철 안과 미용실 등에서 만난 누군가의 얼굴과 몸짓을 기억하고 그 형상/이미지를 그렸다. 그림 속 인물들은 특정한 공간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행위를 하고 있다.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성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고 담배를 권하는가 하면 애완견과 함께 하거나 편히 쉬고 있는 포즈로 구현된다. 이들의 몸놀림은 우아하고 적조하며 권태롭거나 공허하기도 하다. 길게 늘어난 얼굴과 손, 발 그리고 요철지에 드리운 부드러운 질감과 그 아래에 잠긴 색채의 톤, 짙고 어둡게 처리된 단순한 배경, 여러 시점의 공존, 평면성의 강조와 재미난 도상연출 그리고 극적이지 않고 정적이며 정면보다는 측면성이 강조되어 일종의 기념비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그림이다. 비근하고 소박한 일상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와 내면의식을 마치 이집트 벽화에 등장하는 부동으로 직립한 인물상들처럼 정지시켜 놓았다. 그리고 인물들은 왜곡된 형상으로 희화화되어 있다. 그 희화성은 단단한 구성과 장식성에 의해 '그림'으로 조율되어 있다. ● "내가 처할 수 있는 일상을 좀 더 과정하고 때로는 단순하게 왜곡하여 엮어가는 풍속화가 내 작품의 주류이다...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이들의 인간적인 표정을 담으려고 애쓰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휴식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 내 그림의 주제이다"(김혜연) ● 공간을 굴절시키고 접어둔 것처럼 원근이 지워진 자리에 사람과 풍경, 사물들은 미로처럼 엮어져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불안정한 사선구도와 안정감을 주는 수평구도가 동시에 놓여져 있고 아울러 역원근법 등 여러 요소들을 중첩시켜 평면 안에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구도 또한 함축적인 내용을 암시한다. 구성의 복잡함과 여백의 효과 등 대비적인 것들의 공존을 통해 다채로운 볼거리와 시원한 구성의 묘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가늘고 예민한 선들이 중첩되면서 마치 바느질 선 같은 흐름이 윤곽을 잡고 중간 톤의 색상이 침잠된 화면은 인물의 면모를 우화로 가득한 이야기 구조로 만들었다.

김혜연_그리나다힐스의 오후Ⅱ_요철지에 채색_103×73cm_2006
김혜연_머리하는 여자_한지에 채색_108×84cm_2006
김혜연_쇼파에 여자_한지에 먹_149×106cm_2006

또한 인물이 지닌 마음/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인물 주변에 여러 소품과 동물 그리고 무늬, 장식성을 피하고 내용과 인물의 깊이를 위해 간단한 무늬를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질감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기 위해 요철 한지를 썼고 그 위에 수간채색 및 튜브물감을 사용해 투명함과 부드러움을 동반한 따뜻한 계열의 색상을 구사했다. 여러 번 아교 반수를 통해 질감을 살려 평면에서 오는 지루함을 피하고 있음도 눈에 띈다. 이는 일반적인 인물상의 재현이 아닌 독특한 인물화의 방법론에 대한 모색에서 연출되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가면이나 입체파 화가들의 그림 혹은 모딜리아니나 뒤뷔페 혹은 천경자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마냥 길쭉하니 늘여져있는 형상과 강조된 안면의 굴곡 등은 다소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일러스트와 만화적 이미지를 닮은 친근하고 재미있는 형태감이다. 그리고 이 과장과 해학성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나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매순간 다른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여자들이 주로 그려졌다. 아마도 같은 여자로서 여자를 관찰하기가 용이했던 것 같고 그 여자의 얼굴과 몸을 빌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 자화상을 겹쳐 쓰고자 하는 것 같다. 이 그림은 결국 자신의 일상과 그 안에서 겪는 인간과의 관계 및 거기서 파생되는 조그마한 행복과 휴식, 관능과 권태 등에 관한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이 그림들은 차분하고 기념비적인 구성으로 마감되어 장식성과 해학성을 동시에 안겨준다. 다소 익숙한 유형을 연상시키거나 구성적인 효과로 조율되고 다듬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일상을 사는 현대인의 내면의식과 동시대의 풍속이란 측면이 약화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인간의 육체/얼굴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물질문화의 변화, 기술의 발전, 통제수단의 변천과 맞물려 독특한 육체만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술 역시 얼굴, 몸의 재현을 둘러싼 의미 있는 작업들을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새삼 몸에 대한 생리학적 인식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산물임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몸/얼굴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선이 아닌 몸에 드러난 사회적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신체이미지는 몸에 대한 표상을 둘러싼 자신과 타인 사이의 역학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바로 그런 지점에서 의미 있는 얼굴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 박영택

Vol.20060810a | 김혜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