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ing Over the World

책임기획_신하정   2006_0809 ▶︎ 2006_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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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809_수요일_06:00pm

강지호_김소연_노장근_신하정_이윤진

갤러리 환 서울 종로구 인사동 170번지 동일빌딩 304호 Tel. 02_735_7047 www.ghwan.com

Crossing Over the World ● "crossing over the world" 展은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경험을 통한 시공을 뛰어넘는 또 다른 세계를 상정하여 가시화하는 전시이다. 공간과 시간에서 우리는 자기 동일성의 궤도 속에서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세계를 확장시켜 나간다. 우리가 살고 있고 살았던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익숙하지만 낯설고, 즐겁지만 즐겁지도 않은 그럴 듯한 모호한 현실 속을 부유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번 전시는 인식이 광범위 해지고 있는 현실 가운데 관람자들로 하여금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보게 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제안은 대안을 확신하지 않는다. 대안을 내놓는 것 자체는 상상을 억제 시키며, 전시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유희적 부유의 존재를 획일화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 생각이 진정한 이 세상의 본질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잠깐이나마 사고의 전환에 계기를 마련해 주고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할 뿐이다.

강지호_바람개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2×111.5cm_2006
강지호_이륜거(異輪車)_설치, 디지털프린트_2005
강지호_무제_디지털 프린트_2005

강지호 ● 지금까지 내가 작업에 담아오고 있는 것은 삶의 요소들 간의 마찰로 인해 생기는 부조리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하나, 하나의 결과물들은 살면서 접하게 되는 '모순의 기록'들이다. 이러한 기록의 근본적인 이유는 모순의 극복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자전거, 바람개비, 손, 얼굴, 깃발, 덧셈 곱셈 등의 기호... 등의 소재들을 통하여 모순의 여러 국면들을 드러내 왔다. 예를 들어 '바람개비' 연작은 날개끼리 서로 맞붙어서 바람이 불면 돌아가는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바람개비들이 겹겹이 화면을 메운다. 이것은 이상과 현실의 공존, 상극 혹은 동류들의 무수한 군집에 대한 은유이다. 그리고 어떤 현상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아니라, 모순적 삶의 속성에 대한 동어반복적인 질문일 뿐이다. 이런 나의 태도가 바라보기에 따라서는 무기력하고 공허해보일지는 모른다. 단지 삶 속에 풀리지 않는 많은 모순들과 대면하고 그러한 모순들을 회피하기 위해 억지스런 답을 내리지 않고 있다.

김소연_아틀란티스_시멘트_25×32cm_2006
김소연_캔디 캔디_시멘트_10×8cm_2006

김소연 ● 국민들의 사회적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아틀란티스는 엄청난 지진과 홍수, 해일이 일어났고, 몹시 무서운 날이 닥쳤다. 단 하루 밤낮 사이 대륙은 바다 밑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작가에 의해 문명은 수면으로 떠오른다. 손을 씻는 행위, 몸을 물에 담갔다가 나오는 것은 부정하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실존하는 것 위에 쌓여진 허구의 치장들을 걷어내고 태초의 유토피아로 상상한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행복을 꿈꾸려는 것이다

노장근_Sin off_캔버스에 유채, 천_160×130cm_2004
노장근_Sin off_캔버스에 유채, 천_133×97cm_2006

노장근 ● 나는 물질 즉, 세상적인 것을 육체로 본다. 육체의 나약함을 벗겨내려는 의식은 작업으로 행해진다. 화면위에 껍데기와 같은 물질과 흐트러진 잔상의 충돌, 이것은 멍에와 같은 육체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나의 행위의식이다.

신하정_꽃밭에서_장지에 채색, 콩땜_45×150cm_2006
신하정_프리다의 집 앞에서_장지에 채색, 콩땜_45×150cm_2006

신하정 ● 경계면에서 잘려진 일상의 풍경 속에서 낯섦과 평행선상에서 흐르고 있는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그러한 경험은 춤추는 내가 옛 전통 그림 속과 시각으로 경험한 프리다 칼로의 집, 예쁜 꽃밭을 부유한다.

이윤진_정 중 동-고요함 속에 움직임_순지에 수묵_100×140cm_2006
이윤진_정 중 동-고요함 속에 움직임_순지에 수묵_200×140cm_2006

이윤진 ● 짧고 얇은 선으로 면을 만든다. 멀리서 보았을 때 여백과 그려진 부분과의 구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면을 보게 되고 가까워질수록 세부를 보게 된다. 작고 얇은 선들이 짜여 져서 면을 이룬다. 그 선들도, 그 선들이 모인 면도, 그 덩어리들이 모인 전체 화면도 다 '나'를 표현한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Crossing Over the World ● 만약 무인도에 갇히기 전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세 가지라면 무엇을 준비하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라는 대답이 꽤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이라는 두 개의 세계를 만들어놓았다. 이는 현실과 가상, 혹은 현실과 또 하나의 현실이라는 세계로 상정될 수도 있다. 현실은 4차원적 시공간의 연결선상에서 다시 현실로 퍼져나간다. 마치 세포가 또 다른 세포를 증식시키듯 하나의 '매체'는 또 다른 '매체'와 또 다른 상상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에 내가 서 있는 '현실'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이유가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시점에서 다시 우문을 던져본다. "그럼, 현실은 무엇일까?"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나비가 현실인지 我가 현실인지' 혼돈했던 장자 할아버지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가 인식한다고 자부하던 것이 사실 본질이 아니었다는 반전드라마가 현실이라고 가정해보자. 이제껏 각자의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껴 맞춰져왔던 스케마들이 우르르 부서지는 순간이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혹은 현실 외의 세계를 찾고자 노력하고 일상이라는 시공간을 전복해서 그 너머의 곳을 탐색하고 이를 가시화한다면 어떨까? 여기 다섯 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현실이라는 시계바늘을 부러뜨리거나 거꾸로 돌리거나 아예 없애버리면서 각자가 의식하는 또 다른 세상을 표현해낸다. 각자의 경험 속에서 일상의 일탈을 만들어내고, 고정관념을 흔들어보고, 도식화된 사고체계를 비틀어 보기도 한다. 마치 초현실주의가 갖는 모순성을 끌어냄과 동시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중재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위에서 던진 우문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려는 게 아니다. 난무하는 매체들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world)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면 이 전시를 통해 그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 말이 너무 많으면 당신이 상상하는 세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므로 이쯤에서 접겠다. '현실'이라는 가시성 속에서 작가들이 경험한 비가시성이 어떻게 다시 가시성으로 전환되는지 공유할 시간이다. ■ 이현지

Vol.20060810b | Crossing Over the World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