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

신치현 조각展   2006_0818 ▶︎ 2006_0829

신치현_Form展_갤러리 우덕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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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818_금요일_05:00pm

갤러리 우덕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번지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02_3449_6072

그녀들의 폼을 성찰하는 폼 ● 애초에 신치현이 모니터 속의 픽셀로 이루어진 디지털 이미지들을 입체조형물인 픽셀 조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두상과 사과, 화분, 물결 등을 다뤘을 때, 그것은 토루소나 배, 꽃다발, 구름 등으로 전치되어도 무방한 것이었다. 그 대상물들은 누구의 얼굴인지도 몰라도 상관없었고, 맛있는 사과인지 아닌지도 알 바 아니었으며, 시들어가는 화분인지 아닌지 따질 필요도 없을 뿐더러, 찬물인지 더운물인지도 알 수 없는 무색무취의 물질덩어리였을 뿐이다. 비너스 또한 마찬가지다. 미의 전형으로 작용하는 비너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워낙 세기 때문에 그 비너스를 가지고 픽셀 조각을 만듦으로써 확연하게 번역본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 이외의 특별한 의미를 읽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의 지시기능이나 의미기능 보다는 자신의 픽셀 조각을 담아내기 위해 차용할만한 상징적인 형상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신치현이 대상물에게서 얻어내고자 했던 것은 픽셀 조각을 얻어내기 위한 모델 역할 뿐이었다.

신치현_천국의 미소-1_아크릴_1100×60×1200cm_2006

이렇듯 신치현의 픽셀 조각은 실재와 이미지, 대상물과 작품 사이의 느슨한 관계설정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작업으로 소나무와 팔, 발, 얼굴, 귀 등의 모델뿐만 아니라 북한산을 떡하니 전시장 바닥에 깔아 놓음으로써, 픽셀 조각을 통해서 거리(distance)의 문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자신이 자주 오르내리는 실재 북한산에 대한 체험을 담아냄으로써 자신의 작품과 실재의 관계를 보다 실질적인 상관관계 속에서 파악하기 시작했다. 신치현의 픽셀 조각은 해를 거듭하면서 예술가의 체험을 작품에 담아내는 내러티브 구조를 첨가해 왔다. 이후 그는 식탁 위에 만찬을 차리면서 한 발 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성찰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데로 나아간다. 중국산 조기, 독극물이 든 콜라, 불량식품 만두 등의 음식물 파동 등을 겪으며 픽셀 조각 밥상을 차렸다. 부드러운 곡면 판재를 겹쳐 만든 매끈한 픽셀 조각 만찬은 얼핏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얼기설기 골이 패인, 말 그대로 픽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동시대의 정신적 파산을 담아내고 있다. ●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신치현의 작업들을 조형방법론이나 시지각적인 인식의 문제만으로 환원하여 해석의 가능성을 협량하게 좁혀 왔던 것은 아닌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겠다. 신치현은 10년 전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비닐 옷이나 누드핸드백 등을 만들었다. 20대 신예작가의 실험정신으로 당시의 조류였던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성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태 후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정반대로 딱딱한 시멘트 옷을 만들었다. 소통과 소통 불능의 상황에 관한 갈등을 풀어내려는 실험은 동해안의 공기를 채집해서 서울의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비물질적인 형태의 퍼포먼스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말랑말랑한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볼륨있는 오브제 조각으로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던 그는 딱딱한 물질 작업을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가서 종이를 두껍게 쌓아놓고 같은 형상을 오려서 축적된 형상의 종이 조각 같은 걸 만들기 시작했다. 매시브한 조각과 발랄한 실험 사이를 오가던 신예 신치현에게서 개체와 군집의 미학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신치현_천국의 미소-2_아크릴_1100×60×1200cm_2006

그는 낱장 이미지의 결합이 또 다른 낱개의 입체 이미지를 구성하는 종이 조각의 원리를 디지털 버전으로 확장하여 픽셀 조각을 시작했다.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옮긴 것이다. 픽셀 조각은 전자적으로 부호화한 시각이미지의 세계를 그리드의 입체 버전인 육면체의 연쇄체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만들고 평면을 입체로 만듦으로써, 불투명한 것을 투명하게 만들고 애매한 것을 확연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그의 픽셀 조각은 부분의 원소들 자체로는 형상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의 결합체가 가지는 형상화 능력은 훨씬 더 강렬하게 본질을 드러낸다. 픽셀 조각은 선적인 요소로만 보자면 이등변사각형과 수직선의 연쇄로 이루어져있으며, 입방체로 읽어내자면 길다란 사각기둥의 연쇄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픽셀 조각으로 만들어진 대상은 본래의 지시기능을 상실하면서 동시에 대상의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하게 한다.

신치현_천국의 미소-4_아크릴_1100×60×1200cm_2006

신치현의 신작들은 우리를 둘러싼 대중매체가 발산해 내는 저 꽉 찬듯하면서도 공허한 '천국의 미소'들과 저 현란한 듯하면서도 앙상한 '폼'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동시대 문화현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한다. 「천국의 미소」 연작은 대중매체에 노출된 그녀들이 특정한 형태로 안면근육을 고착화 하고 있는 현상을 포착한 픽셀부조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웃고 있는 그녀들은 카메라 렌즈 앞에서 가식적인 표정으로 미소를 물신화하는 대중문화의 메신저들이다. 미소 물신을 포착한 그의 픽셀 조각은 메타이미지이면서 실재에 대한 이미지이다. 신치현의 픽셀 조각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실재의 그녀들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그녀들이 모델로 등장하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를 재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메타이미지인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더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가 만든 이미지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라는 실재를 끌어들여 자신의 어법으로 형상화 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인 비평의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신치현_Form-1_우드락_1000×1000×2200cm_2006

「폼」 연작은 세 가지 포즈로 물신화한 그녀들을 제시한다. '개폼잡는다'는 시쳇말이 있다. '똥폼잡는다'고도 한다. 특정한 의도를 가진 인간이 카메라 앞에서 연출하는 특별한 포즈를 우리는 '폼잡는다'고 말하곤 한다. '포즈를 취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그는 이 '폼잡는다'는 말로부터 세 명의 여성 전신상인 「폼」 연작의 개념을 끌어내고 있다. 그는 대중매체가 생산해내는 광고사진과 CF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폼을 잡는지에 관해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 가운데 전형적인 폼을 골라 픽셀조각을 만들었다. 그는 포즈(pose)보다는 폼(form)이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포즈의 생동감이 사라진 앙상한 폼'만을 제시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짝다리를 짚고 서서 한 손은 허리에 얹고 한 손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 그녀는 식상하다 못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각진 덩어리로 관객 앞에 서있다. 섹시한 그녀의 맨들거리는 피부를 재현했더라면 우리는 그녀의 폼 그 자체를 구조적으로 읽어내기 보다는 광고모델 역할의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눈으로 훓어내리기에 바빴을 것이다.

신치현_Form-2_아크릴_1000×1000×2200cm_2006
신치현_Form-3_아크릴_1000×1000×2200cm_2006

레이싱걸들이 주로 사용하는 한쪽 다리를 올린 채 상체를 뒤로 재끼고 구조물 위에 올라탄 그녀도 건조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매끈한 자동차와 밀착한 그녀들의 육체는 운송수단인 자동차라는 상품과 자동차를 성적 매력과 동일시하도록 유도하는 여성의 신체라는 상품의 연계 고리 속에서 물신의 현현을 가속화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그러나 신치현의 픽셀 조각은 '상품 그녀'의 마력을 제거한 채 포즈 그 자체만을 남김으로써 폼잡는 그녀의 구조만을 우리 앞에 드러내놓는다. 다리를 벌리고 무릎 꿇어 앉은 채 두 손을 허벅지에 대고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 또한 만만찮다. 45도 각도의 허벅지는 마치 레고블럭으로 쌓아올린 듯 계단모양의 반복구조를 보인다. 얼굴과 가슴 또한 특유의 섹시함을 상실한 평면과 직각 블록의 연쇄체로 보일 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 신선한 자극으로 작동하기 보다는 진부한 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는 폼에 대해 보다 엄밀하게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신치현의 근작들은 픽셀 조각이라는 폼으로 읽어낸 그녀들의 폼에 대한 비판적 성찰 그것이다. 그녀들의 폼은 픽셀 조각 특유의 직각형태들로 인해 앙상한 폼만을 남긴다. '실재의 그녀 혹은 그녀 이미지'의 향기는 오간 데 없다. 따라서 「폼」 연작들은 즉물적으로 그녀들의 섹시함을 재현함으로써 그 반대로 가증스러움을 비판하기 보다는 표피를 완전히 걷어냄으로써 그 속의 본질적인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픽셀 조각은 스킨을 제거해버린 채 뼈대만을 남긴 앙상한 구조체 그 자체이다. 한 작가가 조형작업의 방법과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상호 규정성을 가진다. 신치현에게 있어서 픽셀 조각이라는 조형방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좌표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 동시대의 사회와 자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동반하면서 그 의미의 파장이 훨씬 더 증가하고 있다. 신치현의 신작 픽셀 조각들이 더욱 각별하게 의미작용을 강화하는 것은 본질적인 구조를 드러내는 조형방법의 특성 그 자체와 더불어 동시대의 문화지표를 끌어들이려는 예술가 주체의 성찰적 자세 때문일 것이다. ■ 김준기

Vol.20060818d | 신치현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