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도

송지혜 회화展   2006_0824 ▶︎ 2006_0831

송지혜_다도해_천에 아크릴채색_140×64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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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824_목요일_06:00pm

진흥아트홀 지원전시

진흥아트홀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04-8번지 진흥빌딩 1층 Tel. 02_2230_5170 www.jharthall.org

도시공간의 구조화 기능 읽기, 유인도 리포트 ● 낱개의 삶이 밀집한 도시공간은 어떻게 인간 개체의 삶을 구조화 하고 있는가? 송지혜는 유인도라는 낭만적인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현대도시의 건축이 인간의 삶을 배치하고 지배하면서 광범위한 시각적인 환경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대한 체험적인 성찰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말하는 유인도의 모습은 불꺼진 여러 개의 방들과 드문드문 불켜진 방들의 조합에 의해 하나의 시각적 구조체로 다가오는 아파트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격자무늬의 아파트의 개별 공간들은 불꺼짐과 불켜짐에 의해 있음과 없음으로 구분된다. 송지혜는 그것을 단순한 시각적 구조체로 파악하기보다는 도시의 삶의 공간이 도시인들의 삶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있는가에 관한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한국적 압축성장의 절정기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낸 그는 십대 중후반에 서울 창동의 아파트단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 11층에서 건너편 아파트들의 모습을 지켜보곤 했는데, 이러한 체험은 오늘날 그가 거대도시 속에 박혀있는 개별적인 삶의 정황들을 포착해내는 데 있어서 매우 구체적인 매개 체험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늦은 밤까지 혼자 깨어있어야 하는 날이면 건너편에 드문드문 불켜진 방들에 박힌 낱개의 삶들을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바라보면서 저렇게 많은 삶들 중에 그 자신의 삶의 그림자가 묻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송지혜 자신이 체험했던 아파트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구조화한 도시공간과 개체의 그림자들을 담고 있다.

송지혜_구정날 회기역방향_천에 아크릴채색_130×50cm_2006
송지혜_구정날 나들목 / 구정날 묘지_천에 아크릴채색_130×50cm_2006

조밀한 그리기 작업을 비롯해서 평면설치와 입체설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바라보기'로 명명해온 주제의식을 풀어온 송지혜는 인물의 뒷모습을 담은 「뒤」 연작에서 사각의 평면 위에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세필로 묘사하는가 하면, 때로는 사각틀의 캔버스로부터 벗어나 인물의 윤곽선을 따서 만든 커다란 구조물 위에 사람들의 뒷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이 연작들은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주체의 관찰자 시점을 통해서 익명성 속에 담긴 개별적이고 특수한 삶의 정황들을 포착한 것이었다. 이때 그의 섬세한 머리카락 묘사는 그 자체로서 강렬하게 시각적인 자극의 요소로 작용했다. 그는 이러한 머리카락 그림이 익숙한 캐릭터로 안착할 즈음에 또 다른 풍경과 장면을 서술해내기 시작했다. 아파트 모형을 만들어서 그 속에 일러스트 같은 작은 인물상들을 배치한 「이 편한 세상 119」는 동일한 구조 속에 각각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 인간의 삶을 담아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기만 하던 이전의 작업에 비해 훨씬 더 구조적인 시각을 가진 것이었다. 도시화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환경으로서의 아파트 공간이 어떻게 인간을 구조 속의 개체로 구조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하나의 그림에 여러 개의 장면과 상황을 겹쳐서 넣는 중층적인 레이어 구성방법은 내러티브 구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설연휴를 맞아 모두들 떠나고 없는 회기동 일대의 상가건물들과 그 뒤편 주택가의 노후한 건물들과 그 뒤편의 저토록 세상 편해 보이는 고층 아파트 '이편한세상'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도록 구성한 작품 「구정날 회기역 방향」은 송지혜식 그림그리기의 특징인 부분적인 섬세함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한 화면에서 집중묘사의 밀도를 조절하는 일종의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삼중구도의 건물들 가운데서 그가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려낸 상가 간판과 더불어 상가 건물들이 죄다 셔터를 내려놓고 있는 상황이다. 귀향길에 오른 차량 행렬을 그린 다른 작품 「구정날 나들목」에서도 제각각인 차량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텅 빈 도시와 기나긴 차량 행렬은 속이 드러나 보이는 「구정날 묘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송지혜가 가지고 있는 전체와 부분, 구조와 개별에 대한 생각이 집약되는 대목이면서 동시에 이 전시 전체의 문맥을 인도하는 프롤로그 같은 작업이다.

송지혜_빨간이불의 보이는 다모아수퍼 윗집_천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06
송지혜_곤색점퍼가 보이는 고시텔_천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06

격자구조 속에 배치된 익명인의 모습을 압축하고 있는 아파트라는 건축구조물을 통해서 구조와 개체의 문제를 체감해온 송지혜는 아파트를 그림으로써 아파트의 구조화 기능을 드러낸다. 단색으로 처리된 도시의 아파트 숲 위로 내리꽂히는 인체들이 그려진 「익명의 비」는 익명인의 파편화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발가벗은 인체들은 남녀노소의 익명의 개별자들이다. 도시에 흩뿌려지는 빗방울처럼 불특정 다수의 익명의 인간들이 아파트 숲속으로 흩뿌려진다. 주변 환경이나 평형의 크기와 상관없이 도시의 공간 속에 고립된 섬처럼 떠있기는 임대아파트나 타워팰리스나 마찬가지다. 아파트 숲에 떨지는 '익명의 비'는 거대도시에서의 삶을 선택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숙명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송지혜가 바라보는 도시인의 삶을 이렇듯 비처럼 흩뿌려지며 동시에 외로운 섬처럼 도시의 바다 위를 부유한다. 벽체를 사이에 두고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은 무인도보다 더 적막한 유인도로 각인된다. 길을 가다가 문득 바라본 동네 한구석의 반지하 셋방에서,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불켜진 어느 방이나 고시텔 쪽방에서, 수퍼마켓 2층의 어느 방에서 새어나오는 구조 속 개체의 쓸쓸한 모습을 슬쩍슬쩍 담아내고 있다. 그의 특이한 표현대로라면 '냄새만 살짝 풍기는' 방식이다. ● 건물의 특정 부분을 확대해서 그린 '00이 보이는 00'이라는 제목을 붙인 몇몇 작품들은 도시 삶 속에 구석구석 묻어있는 구조 속 개인들의 편린들을 잡아낸 한 컷의 스냅사진 같은 그림들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는 하지만 섬처럼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각각의 방을 엿보듯이 들여다본 이 유인도들은 거대한 그물망이면서도 개별자들의 고립을 피할 수 없는 도시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작은 화면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평면화된 건물 외벽에 창을 하나씩 만들고 그 속에 낱개의 삶을 살짝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창문 안에는 여러 가지 삶이 날것으로 널려있다. 타일로 외관을 마무리한 다모아수퍼 윗층집 방에는 빨간 이불이 보인다. 골목길을 가다가 슬쩍 엿보이는 반지하 어느 남자의 빈방에는 회전의자가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어느 건물의 반지하 화장실의 전구 불빛도 낮선 삶의 흔적을 상기하기에 충분하다. 두란노타운 고시텔의 석회벽 한 켠에는 쪽방 삶의 애환이 자리잡고 있다. 파란 티브이가 보이는 아파트 거실은 늦은 밤 까만 밤풍경 속에 드문드문 불켜진 방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구조속의 인간개체에 대한 감상을 이끌어낸다. 초콜렛의 격자무늬처럼 생긴 빌딩 한구석에 빼꼼이 열린 창문은 빌딩에 인간미를 부여하는 거의 유일한 장치이기도 하다. ● 자신이 직접 찍거나 인터넷 상에서 채취한 사진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전사하고 그 위에 붓질로 마감한 회화작업들도 도시의 건축물 공간 속에 떠있는 섬들에 주목하고 있다. 한 노인병원에서 찍은 사진 이미지를 사용한 「효자노인병원」은 노인돌봄시설이나 실버산업의 허울을 드러낸다. 조회장면을 포착한 사진을 전사 후 뒤편에 학교 건물을 그려낸 「바른스승바른제자」는 교육권력 공간인 학교가 학생들을 구조화하는 상황을 포착한 작품이다. 「뉴스속보입니다」는 빌딩숲 전광판의 뉴스속보 장면 사진과 흐릿한 빌딩 실루엣의 회화이미지가 겹쳐진 작업이다. 빌딩실루엣 속의 전광판은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뉴스를 토해내는 언론권력의 담지체이다. 이밖에도 아파트 빈 거실이나 영안실, 오피스빌딩 공간 등도 현대도시의 건축물이 인간을 배치하고 지배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다. 이들 사진과 회화를 혼합한 작업들은 구체적인 실재의 상황을 담고 있으면서도 실재를 포착하는 기재인 렌즈와 붓질의 차이를 은근히 드러냄으로써 사진과 회화를 병치했을 때의 이질적인 요소를 맛깔나게 드러내고 있다.

송지혜_녹색빗자루의 화장실_천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06
송지혜_익명의 비_천에 아크릴채색_259×194cm_2006

오늘날 도시의 (시각) 환경을 가장 심각하게 장애의 늪으로 인도하는 것은 수십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마치 성냥과 세우듯 나열해놓은 아파트 단지들이다. 과밀도의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서 좁은 공간에 최소한의 기능만을 집약한 주거공간으로 고안된 이 아파트라는 건축물은 한국사회에서는 이제 종교보다도 더 엄숙하게 현대인을 지배하는 물신으로 자리 잡았다. 마당과 정원과 건축물의 외관을 생략하거나 무시한 채 내부공간만을 배려하는 이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현대인들의 삶을 장악한 지 이미 오래이다. 송지혜는 이 끝없는 아파트들의 생장과 번식을 목도하면서 자라온 세대이다. 「다도해」는 낱개의 유인도들이 운집한 현대사회의 파노라마이다. 거대도시를 가득채운 경이로운 아파트들은 산맥보다 더 거대하고 강물보다 더 유장하게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그 이름도 거창하고 거룩한 현대, 삼성, 벽산, 에스케이, 대림 등 동네의 색깔과 주민의 성격과는 전혀 상관없이 거대자본의 이름을 각인한 아파트들이 생태자연을 무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자연으로 자리 잡았다. 송지혜는 건물 외관의 마크와 숫자들과 색깔들을 삭제한 채 아파트 건축물 구조 그 자체만을 그려냄으로써 아파트 파노라마를 보다 전일적인 체계 안에서 동일한 본질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구조적 동일성을 반복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모습을 담은 송지혜의 그림은 구조 속에 포섭된 낱개 삶의 정황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거대도시의 풍경과 장면들을 진술해냄으로써 대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주체의 시각을 보다 객관적인 사실 차원에 두면서도 도시의 전체와 부분을 넘나드는 주밍인과 주밍아웃을 적적히 안배함으로써 주관적인 감성의 차원을 노치지 않고 있다. 특히 그는 동어반복이 구조화한 아파트 공간 속에서 파편화한 익명의 개인들을 파악함으로써 현대인에게 이미 깊숙하게 내면화 한 단절과 소외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다도해」같은 대작에서 드러나듯이 도시 공간과 그 속에서 삶을 꾸리는 현대인의 삶은 아파트 건축에 의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는 하나의 구조체이자 돌이킬 수 없는 환경으로 자리잡았다. 유인도라는 주제의식을 가진 일련의 연작들은 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현대도시 속에 구조화한 삶의 단편들을 포착해내고 있다. 고립된 상황을 상징하는 무인도를 역설적으로 끌어들인 유인도라는 개념은 현대도시가 필연적으로 잉태하는 소외와 단절의 정황을 집약하고 있다. 그는 현대도시의 건축물이라는 매개체에 주목함으로써 도시인들의 개별 공간들을 하나하나의 섬으로 파악하고 그 낱개의 정황을 성찰하고자 하는 유인도라는 적략적 개념을 효율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핵심은 현대도시의 건축물을 하나의 구조체로 파악하고 그것의 구조화 기능을 읽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현대도시의 구조를 읽어내는 송지혜의 유인도 리포트는 거대도시의 구조 속에서 파편으로 존재하는 낱개의 서사들을 엮어서 구조와 개체 사이의 대립과 공존, 화화와 갈등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김준기

Vol.20060824a | 송지혜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