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ffic Trouble

이진혁 개인展   2006_0906 ▶ 2006_0912

이진혁_멀미-Red zone_장지에 주묵(朱墨)_135×203cm_2006

초대일시_2006_0906_수요일_06:00pm

학고재 제4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B1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체증으로 드러난 도시에서의 일상 ● 세부를 도외시하고 본다면, 수년 전만 해도 한국화는 도대체 변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었다. 한국화가 다른 장르에 비해 전통성이 강하게 작용해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니까 변화보다는 심화의 과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경향성이 강한 만큼 섣부른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변화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형식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그 변화가 현저해진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전통적인 재료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재료를 도입, 실험하는 식의 소극적인 방식에서부터, 아예 한국화라는 장르적 특수성과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까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소재 역시 산수와 화조 그리고 인물 등의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도시와 일상 그리고 대중문화 등을 다루는데 주저함이 없다. ● 적어도 그 그림에 나타난 생리로 볼 때, 이진혁은 전통적인 한국화 이후의 세대에 속한다. 여전히 한지와 먹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선 전통에 그 맥이 닿아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도시적 일상을 소재로 취한다든가, 이를 풀어내는 서사적인 방법에서 전통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화의 전통을 견지하면서도 이를 재해석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이 작가의 그림에서는 느껴진다.

이진혁_Traffic Trouble_장지에 주묵(朱墨)_135×190cm_2006

이진혁은 버스를 기다리다가 깜박 존다. 그리고 잠깐의 꿈속에서 거리를 온통 가득 메우고 있는 차량들을 보고, 그 행렬로부터 빠져나와 알몸으로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본다. 이는 무리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당혹감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자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무리 속에서는 무리가 보이지가 않는다. 무리를 보기 위해서는 무리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소외가 필연적이다. 소외가 단순한 심리적 경험을 넘어 자의식과 자기반성적인 경험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작가는 '도대체 저 많은 차량들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고 묻는다. ● 누구든 한번쯤은 자문해봤을 법한 이 물음은 그대로 존재론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진혁의 그림은 인생이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맞닿아 있다. 그 물음 속에서 인생의 상징적 의미가 길과 만나고 있으며,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차량의 행렬과 만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대로 작가의 주제의식에서도 확인된다. 즉 전작에서의 주제가 '길 위에서'였으며, 근작에서의 주제는 '체증'(Traffic trouble 혹은 Traffic jam)이다. 이는 작가의 그림이 동시대적인 삶에 대한 메타포에 연이어진 것임을 말해주며, 그 상징적 의미가 길과 자동차임을 알려준다. ● 이처럼 외관상 차를 소재로 한 작가의 그림은 인생이라는 존재론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에 맞닿아 있으며, 동시대적인 삶의 메타포와의 연관성 속에 있다. 그 이면에는 차를 단순한 소재이거나 물질적이고 재현적인 대상 이상의 의미론적인 대상으로 보는 자의식과 자기반성적인 시각이 놓여있다. 이것이 도로의 사각지대에 설치된 반사경(혹은 볼록거울)과 신문을 소재로서 도입케 하고, 이를 차 그림과 중첩시키는 형태로서 드러낸다. 여기서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차량들을 보여주는 반사경 자체는 그대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리얼리즘 미학에서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인 셈이다. ● 한편, 작가는 한지에다가 인두로 차량들을 그린(태워서 그린) 그림을 신문과 중첩시키는데, 이때의 신문 역시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의 또 다른 형태인 것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어지러울 정도의 차량들의 행렬 속도, 마치 잼처럼 뒤엉킨 정체, 경쟁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갑갑증, 새치기와 몰염치, 공공연하게 줄서기를 조장하는 사회, 매연과 오염, 그리고 실질적이고 심리적인 심폐증 등의 개념과 맞물려 메스꺼움을 자아낸다.

이진혁_그 곳에 가다_장지에 주묵(朱墨)_205×147cm_2006

이진혁의 근작은 여러 면에서 전작과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차를 매개로 해서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는 주제의식을 심화하면서, 형식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띠게 전작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근작에서는 순수하게 주묵(朱墨)만을 사용하여 가급적 선에 변화를 주지 않은 채 이미지를 그린다는 사실이다(이는 흑묵을 사용한 것이나, 발묵법을 통해서 필선에 상당한 변화를 준 전작과는 비교된다). 이렇게 드러난 선 그림(線畵)은 한국화의 전통성을 재해석한 것이며(한국화의 본질은 선에 있다는), 동시에 드로잉과도 같은 외관으로 인해 양화와 한국화라는 지역적 특수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서 변화 없이 그려진 선 그림이 전체 화면을 단순화시키고 평면화시키는데, 이는 현대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물론 기본적으론 먹그림인 탓에 인공적이거나 기계적인 느낌과는 그 거리가 있다). 이로부터 회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작가의 경우에는 선)에서 회화의 장르적 특수성을 찾은 모더니즘의 관념마저 느껴진다. ● 작가는 이렇게 그려진 먹그림에다 차를 프린트한 이미지를 오려붙이는 식으로 중첩시킨다 (그 자체 일종의 콜라주로 나타난), 전작에서의 신문을 소재로서 차용한 것이나 인두화도 그렇지만, 이처럼 그림을 프린트된 이미지와 중첩시키는 식의 작가의 태도에서 형식실험의 일면이 엿보인다. 그 자체는 동시대에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고 작동되는 방식, 동시대에 이미지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자기 반성적 과정의 산물로서 보인다. 한국화의 특수성을 견지하면서도 이렇듯 상당정도의 변화와 모색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 이진혁의 그림에서의 차 자체는 비록 일상에서 차용해온 소재이지만, 이를 표현하고 형상화하는 방법만큼은 일상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이다. 즉 그림 속에서의 차는 폐차장을 연상시킬 만큼, 일종의 차 무덤을 연상시킬 만큼 무질서하고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따개비와도 같이 지붕이 낮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동네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허공가득 차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작가는 차 그림으로써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렇게 그려진 비정형의 선으로써 화면의 가장자리를 한정한다. 이로써 마치 유기체 덩어리를 연상시키며, 일종의 공간공포(독일의 미학자 빌헬름 보링어가 북유럽의 고딕회화를 지시하면서 사용한 형식개념인)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화면에서는 여백이 없다. 비록 화면의 가장자리와 간간이 차와 차 사이에 최소한으로 설정된 여백이 있긴 하지만, 이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여백(미처 화면에 그려지지 않은 어떤 것을 암시한다는)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의 그림 속에서의 여백은 오히려 공간공포로 나타난 심리적 정황을 강화해 줄뿐이다. 그러니까 여백 본래의 의미에 반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진혁_그 곳에 가다_장지에 주묵(朱墨)_50×147cm_2006
이진혁_Traffic Trouble_장지에 주묵(朱墨)_137×137cm_2006

이진혁이 그린 그림 속에서 차는 현대인의 초상처럼 읽혀진다. 정체된 채 꽉 막힌 길에 붙잡혀 있는 차들은 출구를 차지 못한 채 현실에 발목 잡힌 현대인의 삶처럼 읽혀진다. 따라서 작가가 근작에 부친 '체증'이란 주제가 단순히 교통체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체증은 단지 현대를 읽는 하나의 키워드일 뿐, 그 숨은 뜻은 다름 아닌 현대인의 팍팍한 일상과, 문명의 이기에 오히려 발목 잡혀버린 일상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서의 차는 이처럼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이루고 있는 한 세포, 단자, 모나드의 한 형태로서 도입된 것이며, 이로부터는 일상성 내지는 일상 사회학 담론에 대한 상당한 공감이 읽혀진다. 단순히 체증 때문이 아니더라도 각박한 삶이 느껴지고, 단순히 매연 때문이 아니더라도 숨쉬기조차 어려운 일상이 느껴진다. 문득,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서 빌딩들 사이로 드러난 조각난 하늘이라도 올려다보고 싶어진다. ■ 고충환

Vol.20060905c | 이진혁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