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다시 읽기

제19회 소조각회 정기展   2006_0906 ▶ 2006_0912

권민정_권치규_김병철_김석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소조각회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906_수요일_06:00pm

권민정_권치규_김병철_김석_박장근_배정준_배진호_배효남 설총식_안경문_양형규_오상욱_오세문_이병희_이수천 이원경_이원석_전덕제_조윤환_조훈_최현승_추은영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예술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기록 그 이상이다 ● 스물두 명 작가들의 '일기 다시 읽기'는 제각각이다.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이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과거를 현재의 모습으로까지 전이시키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삶의 총체성을 갈구하기도 한다. 이렇듯 특정한 주제를 대하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은 생각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각을 우선하는 감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감각의 차이란 절대적인 존재근거이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 감각의 다름을 스타일의 문제를 통해서 확인하곤 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다소간 넘쳐 보일 정도로 각 작가들의 스타일로 가득 차 있다. ● 특정한 주제를 놓고 여러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는 경우에 작가들은 혼자 개인전을 준비할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에 빠진다. 아무리 비슷한 성향과 유형을 가진 창작동호인들이 모여서 결정한 주제라지만 그 비좁은 공간 안에서 감각의 차이를 드러내야 하는 일은 여간 남감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하한 과정을 거친 이들의 고민은 의외로 스타일의 문제를 통해서 해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주제 자체의 서사적 구조와 문맥을 가지고 씨름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대체로 그 결과물은 스타일의 차이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조각이라는 장르가 워낙 질료의 규정성이 강한 장르인 탓이 크다. 작가들은 자신이 익숙하게 다루는 재료와 기법에 따라 각각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스타일의 창이에 따라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앞서 말한 바대로 스타일의 차이를 따라서 나눠보자면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절반이 넘는 작가들이 선택한 방법은 인체를 다루는 일이다. 인간의 형상을 빌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는 작업들이다. 이러한 작업들의 경우 특히 스타일의 문제가 감각의 차이를 주도한다. 인체 표현 작업들을 몇 가지로 묶어서 잃어보자면, 심플한 인체 표현과 일러스트 풍의 인체 표현, 사실적인 묘사를 강조하는 경우와 격정적인 감성표현에 무게를 두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인체를 다루지 않은 경우이다. 일부 작가들은 인체를 다루되 특정 부분만을 결합하여 다른 구조체를 만들거나 사물이미지와 결합하기도 한다. 세 번째 부류는 개념적 오브제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작업 경향들이다. 이 경우 레디메이드 설치와 더불어 오브제와 조형작업을 병행한 경우로 드러나기도 한다.

박장근_배정준_배진호_배효남

애초의 태동 자체가 그러했듯이 오늘날의 조소예술에 있어서도 인체의 표현은 매우 유력한 지점이다. 예술이 삶의 문제와 밀착한 그 무엇인 한 우리는 사람의 몸을 통해서 개인과 사회와 자연을 관통하는 예술적인 성찰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인체 표현도 제각각이다. 가장 눈에 띠는 경향은 일러스트 조각풍의 작업들이다. 김병철의 「상실감」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철망 원통 안에 갇혀 절규하고 있는 인물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자신의 아집과 고독의 그림자를 쓸쓸하게 돌아보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토루소인 전덕제의 「비너스의 드레스」는 인체를 비틀어 놓고 있다. 이상화 한 인체미의 기준으로 통용되는 비너스상을 토루소로 차용하되 그 형상을 왜곡시키고, 나아가 목 부분에 옷깃을 넣어 기성의 관점화 한 누드 인체를 비틀어 놓음으로써 전형성의 억압으로 벗어난 해학을 선보이고 있다. 설총식의 「그녀의 경쟁력」은 합성수지로 만든 인체 위에 아크릴채색을 한 인체이다. 여기서의 인체는 생선을 경쟁력의 상징으로 삼는 고양이의 모습이 담긴 의인화한 인체이다. 고양이의 특징을 인체에 적용해서 얼굴과 몸의 비례를 잡고 그 위에 설총식 특유의 컬러를 입힌 작품이다. 최현승의 「Three Faces」는 동을 두드리고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그는 '기쁨, 슬픔, 분노'라는 세 가지 감정 상태를 각각의 두상에 담고 있다. 이들 세 두상은 하나의 원통으로 연결되어 팔짱을 끼고 있다. 결국 한 몸으로 세 가지 얼굴을 지탱하고 인간의 내면 심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조훈의 「무반동일상」은 일상에 함몰되어 탄력 있는 반응을 상실한 삶의 정황들을 담은 몸통이다. 자신의 처진 살들 사이에서 삐죽이 자라난 작은 날개를 통해서 감각을 상실한 자신을 돌아보고자하는 작업이다.

설총식_안경문_양형규_오상욱

신체의 특정한 구조를 확대하고 과장하는 일러스트 조각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인체를 다루는 심플한 인체작업들도 있다. 권치규의 「life-상황1」은 흰색과 검은 색의 화강석 판재 두 개를 직각으로 꺾어서 세우고 각각의 판재 한쪽 귀퉁이에서 따낸 자화상 같은 인체를 서로 다른 판재 위에 세워두었다. 명과 암이 엇갈리는 자신의 기억을 담아내기 위해 상징과 배치의 미학을 구사함으로써 자신의 (또는 인간의) 내면에 깔린 이중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오세문의 「From the Form」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는 인체의 모습이다. 정육면체의 얼굴과 곡선을 가진 사각 파이프 팔뚝으로 간략하게 묘사된 이 인물조각은 세부의 내레이션을 생략하고 굵은 골조만을 남기는 작가 특유의 조형 방법이 잘 드러나 있다. 안경문의 「절규」는 스테인리스 스틸 선재와 판재로 만든 두 개의 인체이다. 선재를 용접해서 만든 인체는 머리 부분을 대체하고 있는 철재 정육면체를 부여잡고 절규하고 서 있다. 그 아래 바닥에 놓인 판재 인체는 서있는 인체의 그림자이자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거울로 작용한다. 그림자와 거울의 상반된 의미를 하나의 물질 속에 담아냄으로써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 다니는 콤플렉스를 투영해내고 있다. 박장근의 「KISS」는 수직과 수평으로 얽힌 두 개의 장방형 덩어리로 이뤄져있다. 이 두 덩어리는 극도로 왜곡된 두상이다. 직각으로 교차하는 길쭉한 얼굴은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상기하며 숨겨진 청춘의 일기 한 페이지를 떠올린다. ● 사실적인가 아니면 표현적인가 하는 인체 묘사의 방법을 가지고 나눠볼 수도 있다. 세부로 파고들던지 아니면 구조전체를 뽑아내던지 간에 인체의 특징과 구조를 충실하게 재현해 내는 작업으로 배진호와 이원석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배진호의 「두상」은 거대하게 부풀려진 자신의 얼굴을 제시한다. 두 눈을 뻥 뚫어 놓았다. 세월을 따라 주름이 깊어가고 눈그림자가 짙어지는 자신의 얼굴이야말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일기이다. 눈을 생략함으로써 그 속에 과거와 미래를 담아내고 그것을 통해서 현실을 바라보도록 하는 장치로 읽힌다. 이원석의 「두 쪽」은 기둥에 매달려 돌아가는 인체와 구체로 이뤄졌다. 합성수지로 만들어 채색한 누드 인체와 스테인리스 스틸 구체는 색채를 상실한 채 창백하게 허공을 유영하는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딸랑 두 쪽 만을 달고 욕망을 좇아 헤매는 그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 감성에 충실한 인체 표현들도 있다. 배정준의 「일기-매일의 회개」은 흙으로 빚어서 만든 인체 좌상으로써 형상을 재현하는 관념의 언어라기보다는 비정형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적인 요소가 드러난 몸의 언어이다. 그는 무릎기도로 삶을 꾸려나가는 자신의 종교적인 삶을 강조하기 위해서 머리와 팔과 다리를 생략하는 토루소의 어법을 살짝 뒤집어서 무릎을 남겨놓고 있다. 투명 합성수지로 만든 남성 누드 전신상 「남남」을 출품한 조윤환은 '깡마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왕이면 뚱뚱했으면' 좋을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어정쩡하게 서있는 자세와 온몸이 균열된, 부분적으로는 파편이 떨어져 나간 몸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체를 통해서 그는 몸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고 있다.

오세문_이병희_이수천_이원경

pvc 필름지 위에 야광안료를 발라 유사한 프레임을 가진 얼굴이 겹쳐지도록 한 양형규의 작업은「우발적 범죄」이다. 소외와 불안에 노출된 개인, 다수 대중에 억압되는 소수 개인의 모습은 때로 우발적인 범죄를 유도하곤 하는데, 이러한 도발적인 자신의 모습은 선명하게 드러나는 단일한 모습이 아니라 두 겹 세 겹 겹쳐 보이는 불확실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몸을 벗어나서 몸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몸의 일부를 부분적으로 따서 쓰는 작업들을 포함해서 몸 이미지를 전혀 다루지 않는 이들 몇몇 작업들은 구상인체의 틀을 벗어나서 스타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경우들이다. 이병희의 「이카루스」는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다는 별의 이름 '이카루스'를 따서 지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담고 있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욕망의 담지체인 인간의 전형이다. 작가는 이카루스가 가지고 있는 덧없는 욕망의 그림자와 끝없는 도전 의식 두 가지 모두를 담아내고 있다. 무언가를 움켜쥐기 직전의 모습을 한 손을 이어 붙여 만든 다섯 개의 각을 가진 별모양이다. 이원경의 「돌아 보다」는 혼합매체 작업이다. 평면의 중앙을 기준으로 위로는 나무가 아래로는 그 나무의 뿌리가 뻗어있는데, 기실 그 뿌리마저도 또 다른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쪽으로는 두 개의 두상이 놓여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두 그루의 나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배효남은 두 개의 부조판을 제시했다. 그의 출품작 「passion」은 바닥에 놓인 원반과 수직으로 선 비정형의 평면으로 이뤄져있다. 두 개의 평면 위에는 음각과 양각으로 새겨진 자연과 문명의 아이콘들이 박혀있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문명과 자연이라는 양날의 환경적 요인을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오상욱의 「논병아리」 곡면의 철판을 이어붙인 작품이다. 그의 용접 작품들은 이미 견고하게 나름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몇몇 개의 판재들을 이어붙여서 전혀 다른 맥락의 구조체로 전환 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작품 읽기를 유도한다. 네댓 개의 판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심플한 형상 조합으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수천의 「memory」는 대리석 한 덩어리 속에서 건져 올린 기억을 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뒤늦게 깨달았다. 기억 속에선 아픔마저 눈부시더라". 그가 견고한 석재 속에서 캐낸 기억은 상처이다. 격자무늬로 전개되는 평면 위에 펼쳐진 기억의 덩어리는 가시가 돋친 나무 한토막이다. 인터랙티브 영상작업을 선보인 추은영은 망각하고 있는 추억들까지도 담고 있는 옛 일기들을 들추어보며 역설적으로 '망각의 고마움을 되새긴다'고 말한다.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하여 일기를 쓰지만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잊어버릴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일기를 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화작용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원석_조윤환_조훈_전덕제
최현승_추은영

마지막으로 기억을 담지하고 있는 질료인 오브제를 제시한 작업들도 있다. 권민정은 허름한 외투 한 벌을 내걸었다. 그의 기념비적인 오브제 「2006년 일기 다시 읽기」는 낡고 허름했던 자신의 청춘의 기억을 담고 있다. '내면의 소리'에 대고 독백을 반복했던 자신의 일기를 세월이 흘러 탈색한 자신의 옷가지를 통해서 대변하고 있다. 두 팔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어디론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듯한 청춘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하다. 김석의 작업은 오브제와 조형작업을 병행한 설치작업이다. 그의 출품작 「가벼운 생각에 잠재된 어떤 형이상학의 소리들」은 턴테이블 위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투명 플라스틱 두상을 제시한다. 그 아래 투명 박스와 녹색 박스 속의 스피커에서는 존 레논의 노래들과 웃음소가 교차한다.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며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낡은 오브제들을 통해서 그는 '현실을 규정하는 과거'를 상기시킨다. 그는 전축 오브제들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돌려서 만든 자신의 두상 속에서도 반복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려는 작품의 개념을 작업 방식 속에서도 담아냈다. ● 삶의 길이만큼 켜켜이 쌓인 일기들을 꺼내 읽어보면서 갖는 추억과 상념들은 문득 자신이 서있는 곳, 삶의 좌표를 확인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이란 그렇게 저 멀리 아득하게 멀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바짝 붙어있다. 그것은 과거이면서도 현실을 규정하는 강력한 실재, 리얼리티이다. 우리는 그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순간 삶을 되짚어보고, 과거를 생각함으로써 다시 미래를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을 집약하고 있는 일기의 실체는 종이 위에 남겨진 문자언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조각회 작가들이 열아홉번째 회원전 주제로 선택한 문자언어 기반의 일기를 시각언어로 재해석해보는 일.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집약하고 있는 일기를 다시 읽고 그 가운데서 특정한 내러티브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전환해보는 작업이며, 자신에게 있어서 일기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점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이들의 작업 '일기 다시 읽기'는 일기에 대한 일기, 즉 메타 일기이다. 예술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기록 그 이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 김준기

Vol.20060906f | 일기 다시 읽기_소조각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