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류지선 회화展   2006_0906 ▶ 2006_0912

류지선_어떤 자화상_종이에 아크릴채색, 파스텔_75.5×55.5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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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06_수요일_06:00pm

후원_송은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www.artside.net

이번 전시가 이제까지의 전시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조형적 측면에 대한 관심과 관람객의 시각을 중요한 화두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새삼스럽게 조형적 관심이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까지의 나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조형에 대한 미학적 성취보다는 나의 시각과 관념을 드러내는 것 자체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작품이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만큼 작가의 의도와 주관적 표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주제의식과 표현에 대해 다소 모호하면서도 상당히 애매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발언을 주제의식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면에서는 그것을 숨기고 싶기도 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직설적인 어법으로부터 은유적 방법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폭이 넓은 것도 이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의 표현에서는 서툴러 보이는 형태와 마무리 되지 않은 듯한 터치, 그리고 불편한 색의 사용 등의 이른바 '나쁜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회화가 매끈한 상품으로만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나의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관람객은 불친절하고 모호한 시각이미지를 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처음 중시되었던 주제의 서술성은 약화된 채 외로운 독백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 이번 전시는 작업 전반에 대한 이와 같은 반성적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하에 주제와 표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시도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작업이 즉각적으로 이미지자체를 토해내는 식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좀 더 긴 호흡으로 이미지위에 머문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비유한다면 화면 위를 떠돌던 유목민으로부터 정착민으로의 전환이랄까? 다시 말해 서술의 통로로써 단순히 이미지를 재현하고 구성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지에 어떤 시각적 특성과 물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에 작업의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보는 이를 끌어 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회화의 추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것이 쓴 웃음으로 끝나는 반전이 될지라도. 현대사회의 풍부함 뒤의 허무함에 주목하는 나의 시각을 표현하기에는 이런 역설적인 전략이 더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류지선_305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볼펜_116×91cm_2006
류지선_나는 소망한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4×77cm_2006

이번 전시의 내용은 크게 토끼가 등장하는 우화적 작품과 팝콘, 사탕 등과 같이 달콤하면서도 가벼운 일상의 대상을 다룬 작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토끼는 비록 인간의 판단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소심하고 나약한 존재감이 우선 다가오는데, 나는 이런 측면이 사회와 조직 속에서 왜소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세상을 외면하듯이 질끈 눈을 감은 모습으로 표현한 것도 이런 소심함과 무력함을 나타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의 작업도 이 같은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지만, 개별적인 표현에서는 변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작품 「305호」에서 토끼인간은 이소룡식 복장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소룡은 무력한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소시민의 대리 만족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인물이 앉아 있는 거대한 소파는 애견 용품의 방석이다. 뒤에 보이는 글자는 애견 센터임을 나타내는 작은 단서가 되는데 뒤집어 진 채로 제시함으로써 실내 공간의 느낌을 강조하고자 했다. 나는 이런 배경과 인물의 부조화적인 조합과 대비를 통하여 현실에 길들여지는 듯한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고자 한다. 앞의 작품에서 여전히 눈을 감은 사실적인 모습의 토끼 머리는 다른 작품 「어느 멋진 하루」에서는 평면적이면서 캐릭터에 가까운 모습으로 처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눈을 뜬 것은 더 이상 소극적 이미지의 소극적 전달에 머물지 않으려는 나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 두 번째는 팝콘과 사과, 사탕 등은 모두 식욕이라는 인간의 욕망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 이 소재들은 개체 하나로 제시되기보다는 반복되어 가득 쌓여져 있는 형태로 그려진다. 그럼으로써 끊임없이 소비하고 계속 채워야만 하는 풍요속의 결핍과 같은 현대 사회의 속성과 연결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행복의 나라1」은 거대한 팝콘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부유하는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부풀다 못해 터져 버린 팝콘의 형태에서 비대하면서도 가벼운 현대인의 욕망을 읽어낸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그 위를 유영하듯이 떠 있는 낡은 배의 인물은 스피드를 즐기듯이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 이 같은 연출을 통하여 나는 순간적이며 찰나적 욕망을 즐기는 현대 사회의 일면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류지선_장식적 귀를 한 토끼의 위험한 사랑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6cm_2006
류지선_행복의 나라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cm_2006

이와 같이 개별적인 작품에서는 대상을 통해 다양한 의미의 그물망을 구축하고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조형적 측면에 대한 관심은 결국 침묵이 아닌 관람객을 향한 새로운 말하기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좀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 류지선

Vol.20060907c | 류지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