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최종운 개인展   2006_0908 ▶ 2006_0918

최종운_SPACE_한지에 채색_55×33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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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08_금요일_06:00pm

갤러리 더 스페이스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2번지 Tel. 02_514_2226 www.gallerythespace.co.kr

부유하는 자연, 그 또 다른 공간의 유영 ● 전통을 여하히 이해하고 소화할 것인가 하는 것은 현대 한국화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다. 만약 전통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경우라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을 전통의 전범으로 삼을 것이며, 만약 탈 전통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에 대한 해석과 수용의 문제는 신진작가들에 이르면 더욱 곤혹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통적 가치, 혹은 조형에 대한 학습과 체험이 상대적으로 취약할 뿐 아니라, 서구 조형의 훈도 과정을 거쳐 획득되어진 상이한 조형 체계에 오히려 더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공부함에 있어서는 제일 먼저 암석을 묘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붓을 다루는 방법은 암석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고, 또 암석처럼 형태가 완비된 것도 없으니, 암석을 묘사하는 솜씨가 익숙해지면 다른 것은 모두 이에 따라 만족하게 그릴 수 있다.'라고 시작되는 작가 최종운의 작품 설명은 그의 작업이 원칙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자원화전]같은 전통 회화의 전범으로 인식되는 고전적 학습서의 준법, 혹은 운필에 관한 학습의 첫 머리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인식은 일단 자연물을 대상으로 한 사물 인식과 운필훈련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오로지 운필의 변화를 통하여 대상의 음양을 구분하고 질감과 양감까지도 표현내야 하는 동양회화의 조형 방식은 운필에 대한 엄격한 훈련을 통한 기능적 장악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돌에는 세 면이 있다'(石有三面)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가치를 개괄하는 것이다. 사실 전통의 실체란 바로 이러한 선에 의한 조형을 포괄하는 심미적, 조형적 내용들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가하는 점일 것이다. 작가 최종운의 고민과 갈등 역시 이러한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비록 그의 작업이 전통적인 가치관과 조형 학습 방식을 원용함으로써 비롯되고 있다 할지라도 필경 그가 속한 세대의 가치는 보다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운_SPACE_한지에 채색_80×80cm×2_2006
최종운_SPACE_한지에 채색_73×91cm×2_2006

작가는 암석이라는 상징적인 대상을 통해 전통을 체험하고 학습한 셈이다. 초기의 그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암석에 대한 그의 관심과 이해가 다분히 원칙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여실하다. 일차적으로 암석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와 표현을 전제로 이를 통하여 일정한 이미지, 혹은 메시지를 구축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자연물로서의 암석과 이를 수용하여 조형적인 가공 처리를 하는 작가와의 관계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앞서 작업 노트에서와 같이 작가는 암석을 동양회화 입문의 방편이자 수단으로 인식하고 수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암석의 상징성이 이러한 내용으로 제약된다면, 이는 일종의 관념적인 소재주의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작가는 현명하게도 암석을 공간에 부양시킴으로서 이러한 질곡을 타개해 내고 있다. 즉 암석은 공중에 부양됨으로써 기존의 경직된 관념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작가는 암석이 부유하는 공간을 통하여 암석과 작가, 사물과 공간간의 관계라는 새로운 조형 요소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종운_SPACE_한지에 채색_90×150cm_2006
최종운_SPACE_한지에 채색_190×230cm_2006

기하학적인 직선들로 이루어 진 새로운 공간은 끊임없는 생성과 수렴의 공간이다. 확산과 결집의 반복적인 질서 속에서 작가의 암석은 본연의 틀과 꼴을 헤쳐 시켜 새로운 공간에 적응한다. 그것은 부유하는 관념이다. 가상의 공간에 띄워진 암석은 이미 그 형태나 질감의 표현에 앞서 일정한 이미지를 통해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자연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적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생성과 변화의 양태들을 암석과 기하학적인 직선의 상호 이질적인 구조를 통하여 새로운 자연을 표출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동양적인 사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작가의 사색은 보다 주관적이다. 작가의 주관은 선험적인 조형 경험과 학습을 통해 획득되어진 다양한 내용들을 포괄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가치와 서구적인 조형 방식이 혼재한 가운데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가미된 것이다. 작가는 공간을 방기된 여백으로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유의미한 공간으로 수용하고 있다. 반복적인 기하학적 선들과 밀도 있게 다듬어 진 색채의 축적은 그 자체로 공간과 공간, 사물과 공간간의 관계에 대한 일정한 조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수히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색채의 축적은 전통적인 채색운용의 묘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구축되어진 공간의 깊이감은 단순한 기능적인 내용의 발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의미를 지닌 가상의 공간을 구축한다. 가상의 공간위에 암석을 부유하게 함으로써 관념과 사실, 객관과 주관이 어우러지고 충돌하며 새로운 질서를 구축케 한다. 이러한 새로운 공간과 질서의 정체는 모호하지만 암석으로 상징되는 원초적인 자연과 건축적 요소가 가미된 기하학적인 직선들의 대비는 얼핏 자연과 인공을 연상케 한다. 이에 더하여 무한히 열려짐과 동시에 일정한 내용으로 귀납되고 있는 공간은 마치 우주가 그러하듯이 또 다른 자연의 상징으로 제시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만약 이러한 도식적 해석이 유용한 것이라면 결국 작가의 관심은 관념적이고 전통적인 자연의 상징으로 암석을 상정하고, 이를 그가 속한 현대라는 공간 속에 투영함으로써 또 다른 자연, 또 다른 공간의 모습을 유추해 보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 시작은 전통적인 것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관심과 방향이 점차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사변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최종운_SPACE_한지에 채색_130×396cm_2006

전통과 현대는 어쩌면 진부한 화두일지 모르지만 현대 한국화가들은 이로부터 일방적으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이질적인 사물간의 대비와 충돌, 그리고 그 결과 파생되는 공간의 문제에 대한 부단한 관심은 결국 일종의 전통적인 가치를 전제로 한 새로운 해석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전통과 현대는 모순과 갈등의 상대 항이지만, 이의 조화와 균형은 오늘의 한국화가 지향해야 될 절대 가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가의 사고와 성과, 그리고 고민과 갈등은 바로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비단 작가 개인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커다란 전제를 바탕으로 작가의 작업을 수용하며 그 발전적인 결과를 기대해본다. ■ 김상철

Vol.20060909d | 최종운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