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양태숙 회화展   2006_0913 ▶ 2006_0919

양태숙_구름따라_캔버스에 유채_31.8×40.9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21109a | 양태숙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913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양태숙의 '생각하는 나무'전에 부쳐 ● 지난 십 수 년 동안 주로 개인전을 통해 활동해 온 양태숙의 근작들이 점점 무르익고 있다. 올해로 다섯 번째 개인전. 그의 테마와 화풍이 제 성격을 굳혀간다. 간결한 구성과 수수한 이미지로 매력 점을 끌어내는 것이 그의 특징.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와 화려하지 않은 색채들로 구성된 풍경들의 해맑은 이미지가 그의 주된 테마인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대체로 차분하고 청량한 색조를 띄었는데 이는 아마 작품의 주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지속적으로 끌고 있는 주제인 '생각하는 나무'는 그 성격상 감성보다도 이성의 뿌리에서 자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태숙_땅_캔버스에 유채_37.9×45.5cm_2006
양태숙_강물처럼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06

그의 그림은 보기 편하다.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상상하며 그려낸 세상 같기도 하다. 현실과 꿈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 세상(현실)의 법칙에 관심 없이 - 의식의 지시에 따라 구름을 나무로 바꾸거나 반대로 나무를 구름으로 바꿔버린다. 구름에 벚꽃이 피는가 하면 나뭇잎 몇 장으로 산을 만들고, 구름에 물도 그리고 파도도 그린다. 그래도 억지스럽지 않은(오히려 당연해 보이기까지도 한) 것이 바로 이 그림들 지닌 신기함이다. 어쩌면 그 광경들이(사실은 뒤죽박죽인 세계가) 거북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늘 꿈꾸며 그려오던 세상이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바라볼 것이다. 그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하기까지 한 즐거운 나라로 느낄 것이다.그의 풍경들이 친근해 보이고 즐겁게 느껴지기까지하는 이유는 나지막하고 작은 기와집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그린 집은 한적하고 평온한 언덕이나 숲에 있는데(꿈에서나 그려본 옛 고향 땅의 한 무대처럼) 왠지 세속과 동떨어져 보인다.

양태숙_새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6
양태숙_꽃잎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6
양태숙_꽃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6

지금은 사라졌지만 분명 달콤했고 낙원 같았던 땅, 솜사탕같이 행복하게 녹아드는 동심 (童心)의 공간 언저리에, 조작된 기억들로 재편집된 (그야말로) 그림 같은 집을 그리고 있다. 아마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비슷한 그림들을 그려봤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화가의 회화적 전략에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겼던 심리학적 기술이 깔려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의 그림은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와 화려하지 않은 색채들로 구성된 풍경들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의 그림엔 이야기가 없다. 아니, 이야기를 엮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또 화려하지 않은 색채들로 구성됐다고 했는데 사실은 사유의 빛으로 찬연하다. 또 의식의 지시에 따라 구름과 나무를 임의적으로 뒤바꾼다고 했는데 사실은 무의식의 지시를 받아 의식적으로 꾸며낸 풍경들이다. 그는 그의(우리들의) 마음 밑바닥에 흐르는 동경의 세계로 건너간다.

양태숙_비_캔버스에 유채_60.6×50cm_2006
양태숙_길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6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그에게도) 편안하게 보이고 일종의 안식처 같은 구석이 보여 진다면, 그래서 우리(모두)가 행복한 공간으로 인도된다면, 우리 마음의 밑바닥을 치는 통쾌한 기쁨이 깔려있다면, 우리는 평소 우리가 바라는 본연(무의식)의 우리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본연의 우리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의 방식은 절제된 구성과 계산된 질서의 코드, 의식과 무의식의 막을 관통하는 이성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그의 '생각하는 나무'는 이 사회의 정치, 이념, 권력들의 문제들이 배제된 세상으로 문을 연다. 그리고 우리들 내면에서 잔잔히 흐르는 깊은 무의식의 속삭임을 듣는다. 그의 그림은 그런 해맑은 마음의 노래와도 같다. 그의 그림에서 지저귀는 새의 노래를 볼 것이다. ■ 윤익영

Vol.20060913b | 양태숙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