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그리고 소통

이수경 회화展   2006_0913 ▶ 2006_0919

이수경_Leap Ⅰ_닥종이에 먹, 오리목_179×9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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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13_수요일_06:00pm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02_732_6458 www.dongdukartgallery.co.kr

질주, 그리고 소통 ● 목표가 보이지 않는 경쟁사회 : 우리 사회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이지만, 경쟁사회이다. 끊임없이 발전하거나 가능성이 없다면 낙오되고 도태된다. 고대 동양의 조화(造化), 공존(共存)의 개념이 과연 있는가? 너도 나도, 누구라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다투어 뛰어간다. 나의 그림은 이러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익명의 발들이 앞으로 뛰어가고 있다. 그 발은 질서조차 없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또는 자연히 학연 (學緣)·지연(地緣)등 갖가지 인맥(人脈)을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관계는 유기적이지만 난맥상(亂脈相)이다. 나의 그림에 사용한 '닥종이'와 '닥피'라는 매체는 그 엉켜있는 양상이 그러한 난맥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수경_Leap Ⅱ_닥종이에 먹_182×132cm_2006

현대 한국인의 인간상 - 양면(兩面) : 현재 쌩얼, 얼짱, 몸짱 등의 신조어를 들여다보면, 남성의 외모가 여성의 美의 가치척도와 가까워져 꽃미남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대 한국인의 인간상은 너무나 감성적인 상(像)이 유행하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여성상은 그 존재 의미를 잃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여성도 남성과 같이 직업을 갖기를 원하며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슈퍼우먼(super woman)을 원한다. 물론 교육에는 차별이 없어 그렇게 됨직도 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정한, 지속적인 이상적 여성상이 있는가? 고 묻고 싶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운동경기를 위해 군살 없는, 조각 같은 몸이 美의 상징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예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모성애를 자극하는 꽃미남이 유행일지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남성상은 그러나, 현대에도 불변적이다. 나의 그림에는 얼굴이 드러나 있지 않다. 남성의 손과 발의 몸짓으로 되어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눈빛과 몸짓으로 나타낼 수 있다. '남자다움'은 흔히 힘, 역동성, 폭력 등으로 표현되는데, 나는 남성의 그런 면모를 손과 발로 상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자리에서 거꾸로 서 있는 나의 남성의 모습은, 사회를 뒤집어서 바라보고자 함이요, 세상을 들어 올리는 형상인, 양면의 모습이다.

이수경_질주 Ⅰ Lush_닥종이에 먹, 오리목, 닥피_180×360cm_2006

인두의 필획(筆劃)과 붓의 수묵 용필 : 스티로폼(styrofoam)위에 인두로 필획을 긋는다. 나에게 스티로폼은 종이를 뜨기 전에 인두로 드로잉을 하기 위한 하도(下圖)이자 종이를 건조하는 밑판이다. 압축 스티로폼(extruded polystyrene foam)은 두껍고 단단하여 앞뒷면을 함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가벼워서 두꺼운 닥종이를 말리고 이동하는 데도 편리하다. 붓은 현재 모습의 붓 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동양화에서는 붓이 대표적인 그리는 도구였다. 기존의, 평평한, 그래서 평이한 마음으로 작업하는 한지가 아니기에 붓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본 작업은 인두를 동양화의 붓 대신 사용하였다. 인두 드로잉을 한 후 닥종이의 원료를 두껍게 떠서 압착하면 두터운 면에 엠보싱(embossing)이 나타나는데, 요철(凹凸)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선명하면 할수록 나의 표현의지는 더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종이를 말린 후 뒤집으면, 인두의 드로잉이 동양화의 배채(背采)인 듯이 드러난다.

이수경_질주 Ⅱ Lush_닥종이에 먹, 오리목, 닥피, 호분_180×360cm_2006

남성사회의 힘의 표현 - 요철과 꼴라주, 파묵(破墨), 일획(一劃) :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급성장했다고 해도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여전히 남성은 힘으로 대변된다. 스티로폼에 인두의 열로 힘을 가하는 것은, 인두의 자국이 앞면에 나온다는 의미에서 꿰뚫다(徹)는 의미가 있고, 또 나의 생각이 종이를 꿰뚫는다(徹)는 의미도 있다. 꼴라주(collage)작업을 접목하다보니 닥종이의 바탕 면에서 오는 질감이-닥이 여러 겹으로 겹쳐지고, 건조 판으로 이동하며 접었다 폈다하는 과정에서 편평하지 않게 되는-남성위주의 문화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닥종이를 직접 만들게 되었다. ● 중국 청(淸)의 석도(石濤, 1642-1707)는 "일획(一劃)은 중유(衆有)의 本이요 萬象의 뿌리(根)다. (그것은) 용(用)을 神에게 드러내고, 用을 사람에게 숨기니, 세인(世人)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石濤畵語錄』「一劃章」) 라고 말하듯이, 용필에서 획(劃)의 의미, 일획의 의미는 크다. 한지 위에 선을 그릴 경우, 붓에 속도감을 가미하고 먹의 물을 조절하면 되지만, 나의 그림은 화면이 종이를 뜬 두터운 면이므로 선이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아, 고안한 '숟가락'을 이용하여 드로잉을 하고, 요철 선에 중봉(中峰)으로 필묵(筆墨)을 가미하였다. 숟가락의 넓고 좁은, 곡선 면을 이용하여 동양화 선(線)의 특성인 힘과 굵기를 조절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둘투둘한 종이 사이사이에 선이 배도록, 선을 긋는다. 전통수묵의 먹의 오채와는 상관없이 빠르게 그은 선은 언뜻 보면 목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양화에서의 먹을 '깨뜨린다'는 의미의 파묵(破墨)이다. 그것도 남성의 힘의 표현이요, 선의 농묵(濃墨)의 사용도 남성의 힘의 표현이다.

이수경_양면 Ⅱ Both Sides_닥종이에 먹_168×53cm_2006

질주, 그리고 : 전통사회는 팔자걸음을 걷는 사대부 양반이 주류였다. 속도보다는 심사숙고가 요구되었다. 현대는 뛰어야 사는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경쟁사회이다. 웰빙(well-being)문화가 유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빨리, 빨리'란 의식이 우리 문화를 주도한다. 모든 사람이 질주하는 듯하다. 보다 높이, 멀리 날기 위해.

이수경_양면 Ⅲ Both Sides_닥종이에 먹, 닥피_181×132cm_2006

먹(墨) - 황(黃) : 경쟁은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결코 화려하지 않다. 경쟁사회를, 먹(墨)을 통한 모노톤(monotone)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반대로 황(黃)은 욕망의 색이다. 「질주Ⅱ」는 남성사회와 대조되는 여성사회와의 융화를, 에서는 나와 다른 공간의 개념으로 황(黃)을 첨가하여 표현하였다.

이수경_CircleⅡ_닥종이에 먹, 오리목, 닥피_180×180cm_2006

원(Circle) - 소통 :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아간다. 각자 개인의 공간, 그 중심에서 바깥으로 손과 발을 뻗어 원을 그리며 공간을 확보해 나간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처럼, 사람들은 바깥세상을 향해 움직인다. 내가 세상을 움직이고자 하는 욕망은 손과 발로써 표정을 담아 표현하고자 하였고, 그 의지는 남성사회에 비유되는 힘으로써 나타내고자 했다. 그렇게 열심히 각자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세상을 향해 질주하지만,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원의 중심에서 보면 원주는 모두가 같듯이, 그러한 인간의 모습도 크게 나만의 공간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불경(佛經)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수많은 항하사(恒河沙)중 하나 내지 몇인지도 모른다. ■ 이수경

Vol.20060914d | 이수경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