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象)을 반복하다

오순미 개인展   2006_0908 ▶ 2006_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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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15_금요일_06:00pm

협찬_이호글라스_동원 G&I_태양목공샷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Tel. 02_580_1518 www.sac.or.kr

『무한한 프렉탈 구조 속에 표현된 실재와 상상의 세계』- 오순미의 작품세계 ● 사방의 벽면과 천정, 바닥이 모두 일정하게 구획된 거울로 뒤덮여 있는 육면체의 방. 1에서 9까지 하나씩 증가하는 표식들이 담긴 9개의 작은 육면체들. 그리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또 그 나를 바라보는 나.... 좌표를 잃은 거울 속의 나는 앞으로 가면서 뒤로 가기도 하고 뒤로 가면서 앞으로 가기도 한다.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길을 뚫고 과연 나는 본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오순미_Space of Fractal_은경, 알루미늄_가변설치_2006

오순미의 작품 『상(像)을 반복하다』에 들어선 관람객은 상, 하, 좌, 우, 대각선 방향으로 무수히 분화되며 반복, 증식되는 자신의 이미지 앞에서 마치 거울나라의 앨리스처럼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된다.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을 특징으로 하는 시어핀스키 양탄자(Sierpinski Carpet)처럼, 오순미의 『상을 반복하다』는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오묘한 전체를 이루는 프렉탈(Fractal)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무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실재하는 자신과 거울에 의해 무한히 복제되어 제시된 허상으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야릇한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이 거울의 방에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걷기도 하고, 작은 육면체에 의자처럼 걸터앉아서 벽, 천정, 바닥에 서로 부딪치며 반복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관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상을 반복하다』는 움직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시간성을 포함한 4차원의 세계, 거꾸로 돌아가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오순미_Space of Fractal_은경, 알루미늄_가변설치_2006

오순미는 『상을 반복하다』에서 상을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정작 실재를 왜곡시키는 거울을 작품의 재료로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의 앞선 작품들은 주로 유리의 투명성을 이용하여 우주의 기초원소 중 하나인 물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유리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 『적막함의 한 가운데서』와 『세상으로의 통로』는 역동적이면서도 고요한 물의 이미지와 그 안에 담겨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제시했던 이미지의 4원소론에 맞추어 본다면 오순미는 물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작가이다. 이러한 작가에게 투명성과 투시성을 지닌 유리는 고체이면서도, 액체인 물의 이미지와 가장 많이 닮아있는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한 고체이지만 눈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 것도 없는 듯한 투명한 유리를 통해, 작가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고 손에 쥘 수 있으면서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서로 상반된 실재를 경험하고 이내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상상은 '관계'라는 명제 속에서 한층 더 복잡하게 전개된다. 작가는 유리병의 입구와 끝부분을 잘라 붙여 만든 작품 『깃털 유리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오순미_Space of Fractal_은경, 알루미늄_가변설치_2006

"만날 수 없는 병의 처음과 끝 부분을 붙인다. 그리고 가운데 부분에 깃털을 꽂는다. 이것은 세상의 평이함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다. 세상을 뒤집어보자 하나하나의 생명력이 모여든다. 이들은 모여 서로의 원동력을 마구 뿜어낸다"(작가노트) ● 『깃털 유리병』에서 작가는, 결코 만나지 못할 유리병의 처음과 끝을 의도적으로 붙임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뒤집어보고 그 결과로 각각의 존재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존재의 만남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과 그 안에 형성되는 에너지에 대한 탐구는 작품 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이제 타인과 나, 나와 나의 관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 중 은 이전의 작업에서 색유리나 무색의 투명유리를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각각 다른 크기의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세 개의 거울 중 하나를 직각으로 세워 배열하여 그 상이 서로 비춰지도록 한 작품이다. 서로의 상을 반복하여 비추고 있는 이 작품은 오순미의 대표작인 『상을 반복하다』의 일부를 떼 내어 보여주는 듯하다. 계속되는 자기반복을 통해 미세하게 분화되는 상들 앞에서, 실재의 자신과 허상으로서의 자신 사이를 오가며 겪게 되는 혼돈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있는 『상을 반복하다』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오순미_Space of Fractal_은경, 알루미늄_가변설치_2006

작가 오순미는 『상을 반복하다』를 제작하기에 앞서 공동작업으로 『파란 상상』를 선보인 바 있다. '이브 클랭(Yves Klein)의 블루'를 연상시키는 짙푸른 색으로 뒤덮인 이 작품은, 오순미의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방' 작업의 첫 번째 작품이다. 바닥과 세 벽면이 모두 푸른색으로 된 『파란 상상』 안에서 관객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허공, 하늘, 그 안에서의 비상 등, 작가의 말대로, 그것이 무엇이든 현실이 될 수 있을 때까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끝없는 창공을 향한 비상은 작가 오순미의 오랜 욕망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작품 『비상』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순미_Space of Fractal_은경, 알루미늄_가변설치_2006

"점점 좁아지며 점점 높아진다. 날기 위한 준비단계다. 자! 이륙준비!"(작가 노트) ● 우주에 대한 탐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 나와 또 다른 나와의 관계에 대한 사색... 긴긴 여정을 통해 도달한 오순미의 작품 『상을 반복하다』는, 지금까지 작가가 보여준 작업의 미세한 단편들이 종합되어 있는 프렉탈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속으로 빠져버린 나르시스가 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되기도 하고, 무한공간으로 비상하려는 꿈을 품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오순미의 신비스런 거울의 방에는, 무수히 반복된 나 자신의 '상' 만큼이나 셀 수 없이 많은 미지의 또 다른 '나', 즉 단순히 거울 속에 반사된 허상이 아닌 나 자신의 일부가 존재하고 있다. 자기복제를 통한 분화가 거듭될수록 본 모습에 가까워지는 프렉탈 도형처럼, 우리는 거울의 방에서 우리 자신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 아닐까.

오순미_Space of Fractal_은경, 알루미늄_가변설치_2006

오순미는 『파란 상상』, 『상을 반복하다』에 이어 다시 한 번 '방' 형태의 작업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을 선보일 계획이다. 불투명한 『파란 상상』에서 대상을 반사하는 『상을 반복하다』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전개를 보면서, 과연 다음번에는 어떠한 공간개념을 제시하는 방을 선보이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 정수경

Vol.20060917c | 오순미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