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의 항해

김지수 회화展   2006_0920 ▶ 2006_0926

김지수_Towards Heaven_캔버스에 유채, 바느질_65×91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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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20_수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www.noamgallery.com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저 그림들이 그렇게 화려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차분하고 소박한 정서들을 잔잔히 머금고 있는 듯한 느낌들이 더 앞선다. 이렇게 편한 느낌을 주기에 명상하듯 찬찬히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느낌들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작가가 그림 속에서 담아낸 이미지들이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들과 가깝고 그만큼 화려하고 요란한 이미지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 섬, 산, 다리, 집, 정자, 탑, 열기구, 비행기 등 우리의 주변에서 익히 볼 수 있는 형상들이 조금은 정교하지 못한 채로 그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형상의 묘사 대신 잔잔히 우러나오는 이미지들의 잔상 효과에 더욱 신경을 썼기 때문인 듯싶다. 이런 잔잔한 느낌을 주는 데는 또 다른 이유들도 있는데,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접한 색의 점들을 반복하고, 덧칠하면서 형상들을 입혀가고 만들어가는 작업 방식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이미지들이 드러나는 효과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면의 전부는 아니지만 금빛이 도는 실로 바느질 하듯 마무리를 한 것 역시도 이런 느리면서도 인상적인 느낌에 한 목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단순히 화폭에 평면적인 형상을 채워가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긴 과정을 통해 화면에 부분적인 입체감을 만들어가는, 그래서 새로운 물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면에서 정성을 들인 작업이라고도 해야겠지만, 작가가 그림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엿보게 하기도 한다. 마치 오래된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펼치듯이, 혹은 반복하면서 물성화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바로 이런 작가의 그림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세부 이미지들이 정교한 형상일 필요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김지수_The lake house_캔버스에 유채, 바느질_60×72.5cm_2005
김지수_The island_캔버스에 유채_130×163cm_2005
김지수_The island_캔버스에 유채_193×130cm_2005

그렇다면 작가가 그림을 통해 전하려 했던 것도 단지 어떤 구체적인 형상만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야 이런 형상들을 통해 그것이 감각이든 이야기이든 어떤 소통을 하는 것이겠고, 작가 역시도 이러한 형상들을 빌어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나지막이 펼치려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형상이 전하는 그 자체가 전부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그림은 무척이나 내면적인 독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치 남의 일기를 보듯 작가 개인의 느낌이나 기억을 겸연쩍게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바다, 산, 집 등의 이미지들은 평범하고 소박해보이지만 작가의 구체적인 이야기들과 결합이 되었을 때 더욱 그럴듯한 이미지들로 다시 전해진다. 그것은 작가의 삶의 궤적 같은 이미지들이기도 하고, 마치 오랜 여행을 하듯 이어지는 삶의 여정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억이나 경험들이기도 하다. 산과 호수의 이미지들은 작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의 기억들이기도 하고, 이 그림들이 시작되었을 때, 그러니까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작업을 했을 때 반복적으로 떠올리려 했던 고국의 고향에 대한 추억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단순한 기억이라기보다는 본원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동경이자 정체성에 대한 확인 같은 것들과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물론 이러한 기억들 모두가 과거로만 향해 있지는 않다. 우연히 마주친 일상의 이미지들이기도 하고, 여행 중에 만난 혹은 먼 훗날의 여행을 통해 만나고 싶은 어떤 풍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득 작가의 블러그 사진첩에 올린 문구가 기억이 나는데,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저의 일상이에요"라고 소개된 그 사진 이미지들 속엔 작가의 그림 속에 담겨졌음직한 즐겨가던 산, 경포호, 광안대교, 중국과 일본여행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 속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저 형상들은 사실 봉은사, 남산타워, 광안대교, 중국 항주에서의 유람선, 경포호, 강릉 주변의 산의 이미지 등으로 사실적으로 해석이 될 수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이들 일상과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풍경들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기나긴 삶의 여정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들을 빗대어 전하는 작가 자신의 세상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들에 더 가까운 것들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작가의 그림 속에는 유난히 떠돌고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눈에 띠는데 예컨대 뜬금없이 등장하는 열기구의 이미지나 비행기, 혹은 잔잔한 파도를 따라 느린 듯 움직이고 있는 유람선이나 섬들의 이미지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들 이미지들은 결국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비유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유이기에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그리는 상상의 공간인 것이고, 우리가 보는 것들도 어떤 특정한 풍경의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와 이미지들의 풍경들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이미지들의 풍경과 상상의 공간은 사실 작가의 삶의 여정에서 반복되면서 떠올린 세상에 대한 일정한 사유와 느낌들의 풍경이자 공간일 것이다.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림을 통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그런 공간들인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금색의 실로 표현된 형상들이 과거의 기억속의 추억의 장소, 오래 동안 변치 않고 남아 있는 느낌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도해본 것들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우연히 시도해 본 것이지만, 반짝거리는 금색의 느낌이 입체적이면서도 재미있어 시작된 것이라지만, 점차 색감이 주는 묘한 느낌에 마음이 끌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원래 금색은 우리가 다 아는 이유로 인해, 귀중하고 성스러운 색이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던져주는 색이고, 종교적인 느낌하고도 무관하지 않은 색인 것이다. 작가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그 화려하고 찬란한 세속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성한 느낌마저 던져주는 그런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니 이런 느낌 모두를 담고 있는, 상반되면서도 묘한 효과를 주는 그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천국으로의 항해'라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 역시 이런 분위기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여기서의 천국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천국이라기보다는 (사실 도달할 수 있다면 천국이 아니지 않는가) 늘 어떤 곳을 향해 동경하지만, 실제로 그곳에 가면 그렇게 꿈꾸었던 그런 곳이 아닌 천국의 이미지, 상상과 추억 속에서 반복되는 그런 천국에 더 가까운 것들이다. 이를테면 다시는 현실로 돌아갈 수 없는, 오래된 느낌의 추억들과 기억의 공간들인 셈이다. 동시에 새로운 곳을 향한 호기심과 바램에 가까운 것들이기도 한데, 이런 서로 엇갈린 희구와 아련함이 작가가 말하려 했던 천국의 이미지라 할 수 있고, 작가는 그림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현실적으로 붙잡을 수 없는 그런 이미지들을 반추해내고, 소망하려 했던 것 같다.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에게 있어 미지의 새로운 곳을 향한 호기심과 갈망은 마치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세상을 향해 부유하는 모습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림 그리기 자체가 작가에게 있어 그러한 여행에 대한 기억과 느낌을 되새기는 것과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림에서 종종 등장하는 열기구나 유람선, 물위에 떠 있는 집이나 섬들의 이미지들은 그런, 작가의 새로운 곳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과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결국 자신의 모습, 자신의 삶의 궤적과 이후의 삶에 대한 동경 같은 것들을 형상화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유난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이를테면 동양화에서 말하는 부감법의 시선이 많은 것들도 이러한 여행의 모티브와 연관이 있는 것들이고,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색의 점들의 이미지도, 간혹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장식적인 모티브라기보다는 야간 비행 중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불빛이 좋아서라는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로 인해 무척이나 그럴듯한 이유를 가진 형상들로 되살아난다.

김지수_A pleasure boat_캔버스에 유채, 바느질_60×91cm_2006
김지수_The bridge_캔버스에 유채, 바느질_73×91cm_2006
김지수_My Palace_캔버스에 유채, 바느질_72.5×60.5cm_2006

사실 작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언제나 떠돌고 부유하는 것만은 아니다. 집이 없는 현대인에게야 집조차도 유목의 공간처럼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추억 속에 머물고 있는 고향 집이나 산의 이미지는 기억 속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들이고, 여행 중에 떠올리는 집의 이미지 역시 휴식을 주는 머무름의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서는 이런 머무름의 장소들조차도 잔잔히 움직이는 형상으로 표현된다. 이런 떠돎과 머무름의 이미지가 서로 맞물려 있기에 작가의 그림 속에 종종 등장하는 산의 이미지도 때로는 섬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이 반복이 되기도 하지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선 역시 종종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리의 이미지도 자세히 보면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땅과 또 다른 땅을 연결하는 다리의 기능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다. 연결의 의미들과 연결되지 않은 형상, 결국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맞물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인데, 화면을 분할하여 구상과 추상의 이미지를 서로 이접시킨 것들도 이런 맥락에서 얼마간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것 같은 물의 이미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동치는 것 같은 그런 느낌들인데, 이를 두고 정중동(靜中動)이라 표현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면에서 문득 동양적인 사유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아무래도 유학생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이라 여겨졌던 것들에 대한 희구로 동양적인 풍경이나 사유에 이끌렸던 작가의 궤적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불교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탑의 이미지나 중국산수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 이를 반영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분명 한계는 있다. 작가의 작업을 동서양의 시선의 차이 문제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분할된 한쪽을 메우고 있는 형형색색의 점들의 이미지이나 추상과 구상이 결합된 화면의 배치만 하더라도 동양적인 것으로 묶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달할 수 없는 저 천국을 갈망하는 것, 과거의 기억과 낯선 삶에 대한 동경이 맞물려 있는 것, 상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혼재되어 있는 것은 비단 동서양의 시선의 차이로 가를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의 작업에서 전해오는 저 잔잔하고 나지막한 이미지들의 풍경이, 화려한 듯하면서도 소박하게 다가오는 느낌들이 이런 해석들에 더 앞서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산처럼 보이는 섬의 이미지처럼 머물고 싶어도 하지만 늘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더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을 향하여'라는 저 오래된,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소 익숙한 경구마저도 흔한 느낌 대신 더 솔직한 이야기, 소박하지만 단단한 소망과 희구의 느낌으로 전해오는 것만 같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앞서 평범하지만 결코 간단치 많은 않은 그런,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 민병직

Vol.20060920c | 김지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