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objet

유인호 조각展   2006_0920 ▶ 2006_0926

유인호_perfect objet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30913b | 유인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920_수요일_05:00pm

큐브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37번지 수도약국 2층 Tel. 02_720_7910

perfect objet_●완전한 형상.완전함은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다. 사물에 완전성의 개념을 부여하는 것, 혹은 완전함을 하나의 개념적 실체로서 상상하는 것은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미부여의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인호의 작업은 개념들의 형식적 완전함과 인간적 행위의 불완전성에 대한 미시적 판단의 결과에서 비롯되는 물리적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니멀리스트들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계수적 완성성과 포스트미니멀리스트들의 계수적 형상들에 대한 정서적 접근의 미분화된 지향성을 제시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또한 다른 면에서는 의미를 소극적으로나마 배제한다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유인호의 작업에서는 근본적인 형태들로부터 결과적인 형상들을 유추하는 형식주의적 차원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 이번 전시 작품들은 원형에 대한 시각적 탐구, 의미의 상황적 논리들을 배제하고 일정한 형상들의 집합을 집단적으로 제시한다는 면에서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미래주의(Futurism) 작가들의 반응적 의지 - 희망과 불안이 협착되어 있는 - 와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가에게 작품으로 드러나는 형상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객관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작가의 주관적 의지가 배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포스트미니멀리스트(Post-minimalist)의 개인적 차원의 형식적 탐구에 대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미니멀리스트들은 관객의 존재를 작품과 긴밀히 연결시키고,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의 중요성과, 그런 공간 안에 존재하는 작품의 정신적 컨텍스트를 작품의 상황으로서 수용한다. 그러나 포스트미니멀리즘은 형식적으로 미니멀리즘과 연결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전에 20세기 초반부터 뒤샹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예술적 전통으로 정착한 일상적 차원의 감성적 계기들을 부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감성들을 적극적으로 작품의 내용으로 받아들여 왔다.

유인호_perfect objet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6

그러나 유인호의 작품이 완벽히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형식적 의지에 의해 형상화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우선 그는 개념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원을 비롯한 기하학적 개념들을 그의 작품의 근간을 구성하는 형식적 조형으로 도입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에는 미니멀리스트 작품에서 보이는 기념비적인 성격과 장식적인 성격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차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극복하는 제3의 특성이 그의 작품을 통해 정의되어야만 한다. 이는 그가 의미와 형식을 하나의 통일된 결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의미가 형식을 추월하거나 형식이 의미를 제어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 이번 전시 완전한 형상은 그의 형식에 대한 의지와 지향성뿐만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의미가 형식을 포용하고, 형식이 의미를 형식의 본질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 형식적 요소들이 단순해 보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것이 공허해 보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들이 자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형식이 소멸되는 듯이 보일 수도 있지만, 포스트미니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삶의 근본적인 에너지를 순화시키려는 요구가 존재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의 작품은 일종의 정신적인 운동의 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유인호_perfect objet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6

물리적인 구체성에서 보면 모든 작품이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작품은 그 자체만의 질감을 가지고 있고, 모든 작품이 일정한 형식적 질서를 따르고 있지만, 각 작품들이 개별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면에서 다양성은 동일성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고 있고, 동일성은 시각적인 객관성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동일성은 이번 전시의 유인호 작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의미의 분화와 개별적 상황에 대한 의미부여의 노력이 삶의 "소위(so-called)" 객관적인 질서와, 상황의 다양한 결정론적 질서들을 포괄하는 동일성의 차원에서도 해소될 수 없는 속성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동일성은 모든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포괄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유인호_perfect objet_혼합재료_70×120×120cm_2006
유인호_perfect objet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6

이처럼 일종의 정신적 풍경은 유인호가 자신의 예전 작품들을 통해 추구해 왔던 의미의 가지치기, 궁극적인 삶과 인간적인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의 주요한 특성은 과정에 대한 사유로 이루어지고, 다른 면에서 보면 사유를 통해 삶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매 순간 지니고 있는 가벼운 의미들(light significances)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의 본질에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미학적 반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완전한 형상은 미학적 반성도 아니고, 예술의 보편적인 목표인 절대적인 차원에 대한 추구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의미가 목표를 추월하지 않는 다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헤겔적인 의미에서의 절대성, 즉 삶과 우주의 의미론적 결론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인간과 예술의 존재론적 근거가 증발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유인호가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상황을 통해 유추되고 환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완전한 형상은 신과 인간, 인간과 운명, 운명과 객관적 진실 등과 같은 역사의 커다란 테마들에 대한 작가의 '감각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용도

Vol.20060920f | 유인호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