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on-사라짐과 드러남

박노신 회화展   2006_0921 ▶ 2006_0930

박노신_Relation-Bar Code산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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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21_목요일_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전력홍보관 1층 Tel. 02_2055_1192 www.kepco.co.kr/plaza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아와 희망 ● ... 화가 박노신의 정신세계는 무엇이며, 그것이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는가? 화가의 그림을 얼핏 보면 추상화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거칠게 칠해진 바탕색과 알 수 없는 화면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그림을 들여다보면 이들 형과 선의 모습과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 화가의 삶과 우리의 문화를 반영한 그림인 것이다. ● 화가의 그림에서 화가의 삶과 의식은 드넓은 흰색 위에 놓여진다. 흰색은 화가가 만났던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엷게 덮고 있다. 화가는 이처럼 흰색 위아래로 현재와 과거가 중층 '없음'적으로 그려놓았다. ● 흰색으로 덮인 이미지들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이거나 신문에 실렸던 사진들이다. 문화적 충격이나 역사적 사건을 차용한 일종의 패러디(parody)다. ● 패러디란 유명한 인사나 기록을 이용해 그것들을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문화를 말한다. 유명인사의 언어로 현실을 풍자하는 개그도 패러디다. 화가는 패러디의 대상으로 조선시대 화가 정선의「인왕제색도」, 중국 청나라 화가 석도의 산수화, 그리고 미군부대 확장을 위해 철조망이 쳐진 대추리의 논밭과 농산물 개방에 반대해 불태워진 논밭을 끌어들였다. 선배화가들의 그림은 찬사(homage)의 의미로, 농촌의 현실은 정치비판의 의미로 등장시킨 것이다.

박노신_Relation- Mc Nud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6
박노신_Relation-인왕제색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6
박노신_Relation-대추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6

화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정선이 중국화와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반도의 산천을 직접보고 그린 것처럼 그도 과거의 대가와 충격적 문화를 거울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진정한 예술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 그 확인과 구축의 도구는 흰색위에 그려져 있다. 돌멩이나 발자국 같은 네모 또는 원 모양의 까맣거나 하얀 이미지, 실타래 같은 가느다란 선들이 그렇다. 모두 그의 생각과 의지와 철학을 반영한 흔적이다. 이들 흔적은 물론 재현적이지 않다. 기호적이고 상징적이다. 관람자가 생각하고 유추할 수 있는 장치로 등장한 화법이다. ● 이들 흔적은 그 아래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그려진 역사와 문화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비교적 뚜렷한 형태와 색채를 보여준다. 이미지가 분명하지만 개체별로 분절되어 있다. 이는 파편화된 현대인의 상징처럼 보인다. 중심을 잃고 부유하는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 그러나 화가는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현실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그는 파편화되어 부유하는 현대인에게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궁 속에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뒤 빠져나온 아리아드네의 실을 엮어준다. 현실은 힘들지만 희망을 갖고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희망을 전도하는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노신_Relation-판도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06
박노신_Relation-판도라(블랙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06
박노신_Relation-Indra's net 황새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06

이때 실은 서로 다른 개체를 하나로 엮는 끈이다. 무수한 시간과 다양한 사람, 사물들의 사이를 연결하는 끈, 즉 관계(relation)이다. 부모관계, 부부관계 같은 사회적 관계나 문화적, 역사적 관계가 모두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끈 때문에 사람들은 교감하고 화합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리적 끈이 아니라 심리적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 화가는 이러한 관계의 끈을 화면에 수없이 그렸다. 흰색에 덮여있거나 흰색 위에 그려져 있으나 그 끈들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선명하게 또는 희미하게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의 관계란 그런 것이다. 관계가 좋으면 그걸 엮어주는 끈이 눈에 띌 듯 선명하게 느껴지지만, 관계가 나쁘면 끈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세계와 관계하면서 살아간다. 이게 역사이고 문화인 것이다. 화가는 이러한 관계를 이삼년 전에 '중심 지향 혹은 중심의 상실'이라는 테마로 보여준 적이 있다. 이때 화가는 희망의 끈인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현대인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는 교훈을 그의 그림에 넣어 두기로 했다. 지금의 그림보다 훨씬 더 추상적인 그림이지만, 그는 그리스의 추락한 이카루스 신화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려 과욕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스스로에게 반추했던 것이다. ●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움을 느껴야하고, 관객은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신화와 역사와 문화를 통해 자신 삶을 반추하고, 나아가 관객에게 사유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이러한 즐거움과 희망을 감상하는 재미는 어떨까? ■ 김이천

Vol.20060921f | 박노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