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의 존재와 물 이야기

이상민展 / LEESANGMIN / 李尙珉 / sculpture   2006_0919 ▶ 2006_1022

이상민_파동의 존재와 물 이야기展_갤러리 아지오_2006

초대일시 / 2006_0923_토요일_05:00pm

갤러리 아지오 Gallery Agio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1리 362-10번지 Tel. +82.(0)31.774.5121 www.galleryagio.co.kr

시간과 공간 속으로 흩어지는 이미지 ● 작가는 유리판에 어떤 자취를 남겨 놓았다. 우연적으로 생긴 얼룩이나 떨어진 물방울 같아 보이는 형상은 사실 실제 유리의 표면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흔적이다. 그 흔적을 통해 얇고 투명하면서 견고한 이 유리의 피부는 순간 수면이나 창공이 되어 기묘한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일정한 평면에 환영을 주는 장치를 회화라고 한다면 이 작업은 분명 회화로 볼 수 있다. 동시에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유리판에 만들어진 자취는 얇은 조각/부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이한 유리조형작업인 셈이다. 유리란 물질은 투명하고 견고하며 입체와 평면을 아우른다. 작가는 판유리가 지닌 본래의 물리적 속성을 유지하면서 이 피부 위에 슬쩍 주름을 잡아 실제 자연풍경, 물 풍경을 얹혀놓은 셈이다. 창공은 정지된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실상 구름이 있어 동적인 이미지가 되듯이 수면은 물의 파장이나 주름, 파문이 있어 비로소 흘러가는 이미지가 된다. 작가는 이를 유리판에 환생시켰다. 그로 인해 유리의 표면이 수면과 동등한 위상을 차지하면서 보는 이의 눈에 다가온다. 유리(거울)와 수면은 인간이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었던 매개이자 모든 이미지의 기원을 가능하게 한 사물이다. ● 유리라는 소재는 투명한 재질로 인해 안과 밖이 동시에 공존하는 한편 모든 것을 비쳐주고 받아 주며 교차하는 현상을 표현하는데 더없이 적합한 재료가 되었다. 이는 또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은유로 작동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강가에서 물수제비 뜨며 놀던 동심의 추억을 떠올렸고 그 경험을 이렇게 유리판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얇고 투명한 유리 판에 흡사 물결, 파동, 흐름과 같은 추상적 형상이 부감된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판유리를 접합하여 두께감을 가진 유리 덩어리를 가지고 조각적으로 본 시간의 교차 의미'를 조형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 "물의 흐름은 곧 시간의 교차흐름이고 돌의 움직임 또한 시간의 존재이다. 물을 통하여 시간의 교차 표현하는 것으로 자연적 존재의 숭고함과 깊이를 이해하고 이 깊이감은 돌을 매개체로 하여 교차실존으로 다가온다."(이상민)

이상민_blue wave_판유리에 조각_60×60cm_2006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 다름아닌 동양적 사유구조인데 그 핵심에 물水이 있다. 물은 우주의 자연 현상체 중의 하나지만 동양인들에게 물은 이 세상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자 모든 것의 뿌리였다. 동양인들은 시간을 직선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원 위를 달리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반복되는 형태인 이 원은 시간의 개념에 있어서 물을 은유로 사용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샘을 원천으로 가진 채 흘러가는 물이 연속성과 무상성의 관념을 위한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원천으로부터 흐르는 물은 계속해서 끝없이 흐른다. 형이상학적 표현으로는 시간 자체의 흐름과 같다. 동양에서 시時란 일반적인 의미의 시간을 나타내기보다는 어떤 것이 성공적으로 완성에 다다른 정확한 계절이나 적당한 시간, 변화가 반복되는 틀로서의 자연 질서 안에서의 적당한 시간을 나타낸다. 그래서 동양의 현자들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물에 대해 심사숙고했던 것이다. 인물산수화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강은 영원성과 변화를 암시하는데, 하나의 거처로서 강 위에 표류하는 작은 배 역시 인간사의 짧음이나 무상함을 표현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알리는 한편 강의 풍경에 의해 상징된 우주 안에 한 사람을 묘사함으로써 피할 수없는 시간의 흐름 또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상민_blue wave_판유리에 조각_60×60cm_2006

작가는 물수제비 뜨던 경험과 판유리의 속성을 결합해 물에 대한 동양적 사유의 한 자락을 이미지화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는 유리그림인 동시에 유리조각이고 유리 자체가 지닌 물리적 속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인위성을 가미해 올려놓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유리이면서 유리판에 우연히 생긴 흔적으로 다가온다. 유리 판에 떨어진 물이나 액체들이 퍼져나가다 문득 멈춰있는 자취 같기도 하고 중력의 법칙에 의해 밀리고 끌린 자국들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 하는 작업의 특성이 은연중 반영되어 있다. 우연과 필연, 자연법칙과 인간의 개입이 어떤 긴장을 유지한 체 임계점 앞에 멈춰선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는 유동성과 밸런스가 주목된다. 작가는 일반 유리판에 회화적 효과를 인공적인 그리기나 재현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올려놓았다. 레이어를 한 겹 쌓아 올린, 형태와 색채의 유연한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그로부터 리듬감, 긴장감 등 미묘한 회화적 언어를 모색하고 있다. 색채에서 발현되는 감각적 효과를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다양한 형태가 빚어내는 고유의 입체감과 운동감 역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투명함은 촉각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몽환적인 풍경을 안긴다. 구체적인 형상들을 비껴가면서, 슬쩍 지나가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태를 일으키면서, 착시를 부여하면서 사라지고 출몰하기를 반복하면서 공간 속으로 순회하고 있다.

이상민_blue wave_판유리에 조각_40×40cm×9_2006

시간과 공간 속으로 흘러가듯 얹혀지는 이미지의 층은 착시를 일으키고 문득 긴장과 여운을 자아낸다.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미지가 만드는 잠정적인 느낌, 어느 한 순간 이미지가 응결되어 있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 윤곽이 시시각각 바뀌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표면 위에서 지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점막뿐이다. 모호하고 반투명한 점막들의 색 층이 이 작가의 이미지다. 그것은 중력이 만들어낸 우연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엷은 색 층 속에는 시간의 두께, 그리고 사방으로 끝없이 흩어지는 움직임, 보이지 않는 힘의 작동이 깃들어있다. 이 유동적인 이미지들은 '형상 이전의 형상, 형태 너머의 형태'이고 감지될 수 없는 미세한 부피와 끝없이 모습을 바꾸는 진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사물들은 이렇게 지속 속에서만 보여지고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할 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찰나적인 순간에 잠시 흔들리는 잔영들에 불과하다. 작가는 그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사물의 본질은 명료한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진화하는 시간과 공간의 자취를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자취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어느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 아울러 그 움직임이 비로소 끝나면 과연 무엇이 남겨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는 단지 사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 박영택

Vol.20060924b | 이상민展 / LEESANGMIN / 李尙珉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