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풍경을 읽다

박희숙 회화展   2006_0918 ▶ 2006_0927

박희숙_산하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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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18_수요일_06:00pm

미술출판 아트블루 기획 초대展

갤러리 크세쥬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1-6번지 JP빌딩 3층 Tel. 02_332_4618 www.quesaisje.org

프랑스의 추상화가 올리비아 드브레는 풍경화가로 불린다. 왜냐하면 그는 풍경을 그리기 때 문이다. 그러나 실제 그의 그림을 보면 그가 켄바스를 들고 차를 몰고 가서 그린 그럴듯한 풍경은 없다. 그렇다고 풍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마음속에 풍경, 그가 느끼고 본 풍경만을 그리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성리학을 사상적 바탕으로 조선 고유색을 추구하는 진경문화를 이끌면서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고유의 회화미로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 최근 희숙의 그림들속에도 올리비에 드브레의 풍경화 같은 향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그 풍경의 실체는 불투명하다. 그는 실경산수를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마음속에 풍경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박희숙_봄향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cm_2006
박희숙_흐르는가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00cm_2006

희숙은 다른 구상 화가들이 보여준 다양한 기법들을 거부하고 애초부터 그가 본 풍경들을 손으로 그리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고유한 기법을 선보였다. 그 풍경이나 모습이 참으로 겸재 정선을 떠올린다. 그러나 보다 진전된 테크닉과 감성으로 돌아온 희숙의 풍경은 과감히 생략되고 단순화 된 형태로 풍경들을 읽어낸다. ● 그 풍경들은 마치 필터를 낀 것처럼 전체가 푸른색 혹은 붉은 색등 단일한 톤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은 마치 붓을 옆으로 뉘어 빗자루를 쓸어내리듯 묵찰법의 인상을 떠올리는데 특히 풍경이 마치 필터를 통하여 보이는 듯 그런 현상들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표현에 있어서도 속도감 있게 그린 나무들이 또 다른 나무들을 물고 늘어지듯 안개 속에 물기가 스며든 풍경이 펼쳐진다. 또 어떤 풍경은 마치 설산의 웅장한 모습을 비춰주기도 하고, 바람에 휘날리는 빙하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대상을 향한 그의 시선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희숙의 자연풍경의 원천은 소나기가 내린 후 개이기 시작한 하늘의 느낌으로 풍경 읽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는 산 언덕, 들판 등 폭풍속의 흔들리는 풍경 이미지만을 집중적으로 담아왔다. ● 이것은 자연을 보는 형식이 바로 마음속에 대상이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드브레가 실제 풍경을 보고 마음속 풍경을 담아낸다면 희숙은 그가 본 이 외형적인 인상을 담아 다시 풀어낸다. 그의 화폭이 보다 정제된 풍경의 표현이 가능한 이유이다. 겸재가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차원의 풍경을 넘어 고유한 화풍을 만들어 내듯이 이제 희숙의 풍경도 스스로의 형식을 갖추는 단계로 이동되고 있는 것이다.

박희숙_눈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cm_2006
박희숙_적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06

마음속의 풍경, 희숙은 그 풍경을 가능한 손과 가슴으로 그려내길 희망한다. 눈앞에 펼쳐진 대상을 아카데믹하거나 리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가슴속의 진동으로 풀어내려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색상들이 이들을 잘 말해준다. 처음부터 대상의 이미지나 사실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희숙의 의지는 그럼에도 사실적인 자연의 모습에서 채집된 풍경이라는 점에서 그의 마음속 풍경읽기는 보다 폭넓은 상상력을 열어 보이고 있다. ● 내가 그의 첫 개인 전에서 주목한 그의「내면의 진동이나 파장처럼 미묘한 감정」「눈 덮인 설산에 순수함과 눈 내리는 날의 모습」 「작열하는 듯하다 핑크빛의 열정적인 꽃」「설산의 눈처럼 깎아지른 빙벽의 풍경」등에 집중하는 모습 등은 여전히 그의 감성이 부드러움과 내면의식과 닿아 있단느 것을 말해준다. 과거의 핑크빛 꽃들이 화폭 전면에 봄의 멜로디처럼 들려오는가 하면 온통 봄날의 오후를 눈부시게 하는 노란개나리는 없지만 그의 역동적인 구성과 그만의 자연해석은 남아있다. 최근들어 열정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그의 의지는 무지개처럼 다양하고 풍부하여 놀랍다. 마치 사람들의 가슴을 젖게 하거나 떨리게 하는 다양한 색채의 필터들이 풍경을 몽환적이고 환상적으로 변화 시키는 것이다. ● 그러면서도 초기에 가졌던 풍경의 골격과 형상들을 보다 세련되게 만들어냄으로서 풍경을 색채로 인지하거나 감정의 조율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하고 있어 희숙만의 구별되는 매력과 독창성이 확보되어 있다.

박희숙_화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00cm_2006
박희숙_청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00cm_2006

무엇보다 최근 작품에서 보이는 큰 변화는 중성적인 색채와 조화를 충분히 획득함으로서 그 가 초기부터 추구했던 색채표현에 단순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제 그의 화풍은 내면의 추 상화와 몽환적인 표현주의가 결합 되어 새로운 풍경과 욕망의 내면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세계야 말로 희숙의 개성적인 표현이며 도달이며 완성이다. 예를 들면 이제 한정적인 색채에서도 벗어나 거침없이 자유롭고 리드미컬한 선으로 내면풍경의 영역으로 모노톤 회화의 특성을 살려내면서 회화의 근원적인 표현의 밀도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음이 이것을 대변한다. 희숙의 노력, 그것은 아마도 겸재 정선이 추구하고 열망했던 우리풍경의 아름다움을 우리 고유화법으로 풀어내려는 치열한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 김종근

Vol.20060925b | 박희숙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