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조윤지 개인展   2006_0927 ▶ 2006_1003

조윤지_가시돋친 입을 가진 식물들_혼합재료_97×13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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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27_수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www.noamgallery.com

인간의 가시 돋친 눈과 입 ● 카프카의 소설『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 한 마리 커다란 벌레로 변신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까만 몸뚱이에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흉측한 자신의 모습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혼란보다 사실상 그레고르에게 더 절박했던 것은 자신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한데서 오는 소외감과 상실감이었다. 파산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집안의 대들보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들 눈에 띌까 그 존재를 감추기 급급한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중상을 입고 점차 쇠약해져 빈사 상태를 맞게 되고, 그가 죽자 가족들은 유유히 교외로 산책을 나간다. 가상적인 현실 상황을 통해 고립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은 모든 인간관계가 자신의 이익과 위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섬뜩함을 가지고 있다.

조윤지_자라나는 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06
조윤지_수다쟁이 식물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60cm_2006

조윤지의 그림에서 카프카의『변신』을 떠올린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녀의 거의 모든 화면에 등장하는 특정 식물로 변환된 인간의 신체기관의 형상들 때문이며,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녀의 그림이 일상의 인간관계와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회화작업은 작가 자신이 평소 생활하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이중성을 절감했던 개인적인 몇몇 사건들로부터 출발한다. 앞에서는 입에 발린 칭찬을 하고 뒤돌아서는 비난과 험담을 아끼지 않는, 보이기 위한 마음과 감추어진 마음이 다른,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하고 속으로는 흠잡기에 바쁜, 다정한 듯 보이지만 서로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는..., 그녀가 경험했던 이 모든 인간의 이중적 모습은 사실 인간성 좋지 않은 일부 사람들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많은 사람들과 맺은 다양한 관계 가운데 부분적으로 얼마만큼은 이러한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안에 공존하며 대립하는 자아와 타자, 그리고 그러한 수많은 개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라. 그녀의 그림 앞에 선 우리가 미소를 머금었다가 이내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웃음을 거두게 되는 이유일지 모른다.

조윤지_감춰진 마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06
조윤지_ 호기심Ⅱ_혼합재료_130×162cm_2006

처음 그녀의 그림을 대할 때 얼핏 갖게 되는 느낌은 밝은 화면과 만화 캐릭터스러운 등장인물로 인해 사실 발랄한 쪽에 가깝다. 그러나 찬찬히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발랄은 커녕 오히려 섬뜩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우선 그녀의 그림에는 사람의 입을 상징하는 '파리지옥'이 자주 등장한다. 그 입 안에는 벌레를 잡아먹는 파리지옥의 촉수처럼 남의 말을 함부로 지껄이기 좋아하는 무수히 많은 가시들이 돋쳐있다. 인간관계의 모든 오해가 주로 입에서 나오는 말로부터 빚어지고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때로는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는 매우 적절한 비유대상인 듯하다. 한편 입과 더불어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신체기관은 눈이다. 위로는 가시 돋친 안구 모양을 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식물들이 자라나고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안구들이 그 열매들이 떨어지길 기다린 채 입을 벌리고 있다. 「자라나는 눈」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끊임없이 편견을 가진 채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을 표현하고 있다. 「준비된 가시 달린 눈」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그림에서는 한 손에 주렁주렁 가시 달린 안구들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가시 달린 눈을 외면하려는 듯 눈을 감은 채 서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타인의 비판에는 의도적으로 둔감한 태도를 취하고 언제든 자신의 잣대를 내세워 타인을 제단하려는 인간의 이중성을 잘 드러내는 그림이다. ● 이밖에 그녀의 여러 그림에 등장하는 '스파이' 캐릭터는 항상 눈을 감은 채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 역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려 하기 보다는 들리는 소문에 먼저 귀를 기울이기 쉬운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수심으로 뻗은 해파리의 촉수들이나 커다란 빨간 꽃 모양을 한 얼굴과 그 중심으로 뻗은 사람들의 손(혹은 발)을 그린 그림들의 경우, 인간의 가벼운 본성에 대한 표현의 연장선상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혹하여 표피적인 호기심을 나타내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이렇듯 조윤지의 그림 대부분에는 식물의 일부분으로 전환된 입, 눈, 귀, 손 등 인간의 신체기관이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이는 인간관계의 통로가 되는 대표적인 신체기관들의 왜곡된 형상을 통해 자신의 관심이 의사소통의 단절과 비틀린 인간관계에 집중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동물성의 신체기관을 식물의 일부분으로 전환하는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 표현하려는 대상과 그것을 빗댄 대상 사이의 절묘한 이중성을 담지 하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말이다. 사실상 그녀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단어는 '이중성'에 다름 아니다. 그림의 주된 소재가 되는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은 동물성을 지닌 대표적인 식물이다. 이번 작업의 모티브가 된 파리지옥의 이중적 성질에서부터 인간의 신체기관을 상징하는 다른 모든 식물 형상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의미, 그리고 그 형상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중적 태도라는 주제에 이르기까지 '이중성'이라는 일관된 단어가 그녀의 그림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점을 숙지한 채 「지친 사람 혹은 당당한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 진다.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만으로는 그 혹은 그녀가 고개를 떨 군 채 주저앉아 있는 지친 사람인지, 턱을 당기고 꼿꼿이 앉아 있는 당당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야말로 '하나의 사물에 겹쳐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이라는 '이중성'의 정의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윤지_호기심Ⅰ_혼합재료_72.5×60.5cm_2006
조윤지_준비된 스파이_혼합재료_73×60cm_2006

이렇듯 조윤지의 회화작업은 제목과 그림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가시 돋친 입을 가진 식물', '수다쟁이 식물들', '감춰진 마음', '행복한 입', '털 난 관계' 등 다소 설명적인 제목들은 우리에게 화면에 등장하는 낯선 상징적 형상들이 지닌 이중적 의미를 이해하게끔 하고,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 지닌 이중적인 본성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그리 세련되거나 잘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표피적인 감흥 그 이상의 울림을 던져준다. 그것은 산업화 사회의 인간소외와 실존에 대한 자각이라는 카프카의 그것처럼 거창한 맥락은 아닐지언정, 현대사회를 사는 이십대 여성 작가의 절실한 경험과 치열한 고민에서 기인한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절실함과 치열함 이야 말로 이제 첫 개인전을 여는 작가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앞으로의 길에 대한 희망적인 단서가 아닐까.■ 신혜영

Vol.20060927f | 조윤지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