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주(Footnote)

오영숙 개인展   2006_0927 ▶ 2006_1003

오영숙_Footno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5×91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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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2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정 갤러리 서울 종로구 내수동 110-36번지 Tel. 02_733_1911 www.artjungwon.co.kr

Footnote Becomes Image ● 오랜 시간 동안 부식된 암갈색 토기. 이가 나가고 금이 간 깨진 표면이 시간과 역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견뎌온 토기의 우직함을 말해준다. 그래서일까? 백자의 세련된 곡선과 청자의 화려한 문양을 마다하고 오영숙은 흙으로 빚은 토기의 질박함을 좋아한다. 고대토분에서 갓 발굴한 듯 투박한 표면 위로 양각으로 새겨진 한글 자음이 반듯하게 열과 행을 맞추고 있다. 전통적인 읽기 방식을 응용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각주의 형식으로 짝을 이루며 배열되어 있지만, 모음이 생략되어 구체적인 의미를 읽어내기 쉽지 않다. 대신 모음의 빈자리가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관객 스스로 자신만의 모음과 조합하며 텍스트로서의 토기와 이미지로서의 자음과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해석이 불가능해졌지만 다양한 개별적 읽기가 가능해진 셈이다. 작가 자신의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이 같은 장치는 선과 악, 안과 밖 등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한 해체와 판단 유보를 추구하고 있는 작가의 의도와 일치한다. ● 오영숙의 토기는 완전한 형상을 감춘 채 부분만 보여준다. 안에 내용물을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전형적인 외관을 보여주는 대신 왼쪽 혹은 오른쪽 측면을 절단해서 화면을 구성하거나 위에서 내려다 본 생경한 모습을 그린다. 토기가 담아 낼 수 있는 토기 안의 물리적 공간 크기와 토기 밖 공간 사이의 경계를 부정한다. 토기의 좌측 면과 이웃한 토기의 우측 면이 나란히 놓이며 생긴 빈 공간이 또 다른 토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부 공간이었던 여백이 토기가 되고 단단한 토기 껍질은 배경이 된다. 이처럼 오영숙은 안과 밖이라는 경계. 즉 인습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이항대립적 논리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오영숙의 작품을 프레임 안에 갇힌 독립된 개별적인 작품으로 한정해서 보아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웃한 캔버스의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모여서 배경 속에 숨겨 졌던 또 다른 이미지를 드러낸다. 토기라는 기능적인 측면이 사라지고 상징과 함축으로 가득한 빈 공간이 탄생한다.

오영숙_Footnote_캔버스에 혼합재료_각 45×38cm_2006
오영숙_Footnote_캔버스에 혼합재료_각 45.5×53cm_2006
오영숙_Footnote_캔버스에 혼합재료_각 113.2×40.5cm_2006
오영숙_Footnote_캔버스에 혼합재료_91×73cm_2006
오영숙_Footnote_캔버스에 혼합재료_40×40cm_2006
오영숙_Footnote展_2006

오영숙의 작품에 반복해서 각주로 사용되고 있는 한글 자음은 텍스트로서의 지시적 기능을 상실했다. 각주로서 토기의 각 부분을 부연설명 하는 역할을 하겠지?라는 막연한 추측만 무성할 뿐 어디서,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모음이 빠진 한글 자음은 읽히기를 거부한다. 이처럼 읽을 수 없는 한글 자음은 더 이상 텍스트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이다. 작가는 텍스트를 읽는 방법과 이미지를 읽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활용해 불완전한 텍스트, 즉 모음이 빠진 채 자음으로 구성된 텍스트를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로 변화시킨다. 오영숙의 그림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토기의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일련의 숫자를 따라가며 읽는 방법, 한글 자음 만으로 구성된 텍스트를 독립된 하나의 이미지로 바라보는 노력, 그리고 동시에 모음과 자음을 결합시키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상상력 등 다양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 엄밀히 말해 오영숙이 가지고 있는 이분법적 구조에 대한 반감은 경계의 해체가 아니다. 경계를 사이로 이항대립을 이루고 있는 두 구성요소의 관계의 역전, 관계의 순환을 의미한다. 종이죽를 이용해 토기 항아리를 만든 뒤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을 표면에 뚫어 내부에 설치된 조명을 통해 빛이 밖으로 새어 나갈 수 있게 만든 설치 작품 역시 이러한 관계의 역전과 순환을 엿볼 수 있는 예이다. 어두운 전시장 공간에 빛 줄기를 내뿜고 있는 토기 항아리는 응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응시의 주체가 된다. 그림을 통해서 보여 주었던 실제 토기와 같은 기술적 완성도는 종이죽을 빚어 만든 설치 조각작품에선 질감과 함께 무게감 마저 느끼게 한다. 이처럼 물질성을 극복하고 있는 오영숙의 작품이 이제는 개념화, 구조화의 압박 또한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만난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를 자신 만의 개념으로 소화했듯이 이 문제 또한 넘어 쉽게 극복하리라 믿는다. ■ 이대형

Vol.20060928a | 오영숙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