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연옥 Pleasant Purgatory

문지하 회화展   2006_0928 ▶ 2006_1014 / 월요일 휴관

문지하_여우가 호랑이에게 시집가는 하늘 풍경_한지에 잉크와 아크릴채색_201×15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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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28_목요일_06:00pm

책임기획_박장민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유쾌한 연옥 ● 미국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는 문지하는 이제까지 일상과 예술에서 서로 상충되는 것들을 주제로 삼아 한 화면 안에 정교하게 결합시키는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양식과 매체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추상과 재현, 사실과 표현, 르네상스 회화와 동양 수묵화, 풍경화와 장식회화, 종교화와 세속적인 광고물, 즉흥적인 붓질과 세심하게 그려 넣은 선, 만화적 아이콘과 심오한 도상, 난색과 한색, 인공색과 자연색, 스며드는 잉크와 표면을 덮는 아크릴 등 다양한 범주의 회화 언어들을 사용한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동양, 특히 한국적인 문화와 서구적인 문화, 자연과 문명, 회화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 이성과 직관, 정신과 물질, 상징과 기호, 이승과 저승, 현실과 꿈,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식물과 동물 등 대립되는 개념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일견 환상문학이나 공상 과학 영화에서 나올 법한 가상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업은 조화롭다기 보다는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인다. 그것은 상이한 요소들이 화면 안에서 교잡하여 새로운 의미와 형태군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색의 관계처럼 섞이지 않고 서로 대조되는 '공생'을 택함으로써 끊임없는 긴장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문지하_신화풍경:천공풍경_한지에 잉크와 아크릴채색_62.5×100cm_2006
문지하_신화풍경:하얀 폭포_한지에 잉크와 아크릴채색_54.5×77.5cm_2006

그의 작업은 신비스럽고 모호한 은유들을 집어넣어 비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작가적 상상을 펼치고 있는 듯 하지만, 이는 하나의 상징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의식한 결과이다. 다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동시대인으로서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에서 느끼는 경험, 예를 들면 유동적이고 변형적인 삶의 패턴, 조직적인 동시에 무질서한 시스템, 폭발적인 정보와 일상과 밀착된 상업적 문화에 대한 인상들을 서술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이번 브레인 팩토리에서 전시되는 작업들은 대립적인 것들이 혼란스럽게 부글대는 표면 위에 표류하던 것에서 좀더 심원한 아래의 풍경 속으로 진입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역설적인 것들이 존재하는 유토피아라는 뜻에서 '유쾌한 연옥'으로 명명한 이번 작업들은 제목만큼 유쾌한, 이전에 보이던 작고 귀여운 것들은 화면에서 모두 사라지고 자전적인 우화보다는 원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찬 일종의 설화나 신화적인 상징화를 상기시킨다. 그의 작업은 마치 신화가 삶의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는 대립항들을 총체적으로 해석해 줄 의미 있는 등식을 세우는 것처럼, 명백히 무질서한 풍경들이야말로 삶의 긍정적인 모습임을 말하고자 한다.

문지하_초록 용_한지 바른 캔버스에 잉크와 아크릴채색_51×41cm_2006
문지하_방랑_한지 바른 캔버스에 잉크와 아크릴채색_30.5×23cm_2006
문지하_기류이상_한지 바른 캔버스에 잉크와 아크릴채색_30.5×23cm_2006
문지하_유쾌한 연옥展_브레인 팩토리_2006

현재까지의 사회와 역사를 돌아볼 때 모든 분쟁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공존이 아니라 융화와 동화를 요구할 때 생겨난다. 우리는 실제로 이분법적인 세계에서 살아간다. 크게는 과학과 사회적 규칙으로 무장된 이성의 세계와 잠과 꿈, 환영과 상징의 베일 속에 가려진 무의식의 세계에서 기거하고, 인간의 본성은 자아와 타자, 대립과 차이 위에서 발전한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이 동전의 양면처럼 균형있게 존재할 때 만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이란 개개의 것들이 총체성 속에 희석되지 않고 온전히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것들이 공생하는 유토피아를 작가가 '연옥'으로 이해한 것은, 역사적으로 전통교회가 애써 무시해온 이단과 이교도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신학적 장치로, 덕망 있는 이교도의 영혼이 머무는 림보(limbo)의 개념을 '아브라함의 품'과 결합하여 연옥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중첩되면서, 흥미로운 선택으로 보인다. ● 화면의 추상적인 자국에서 받은 느낌을 토대로 이를 세심하게 발전시키는 작가의 작업방식은 그가 물리적인 눈이 아니라 내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직관적 이미지를 담아내고자 함을 의미한다. 직면한 현실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무엇으로, 주어진 완성체가 아니라 해석자의 은유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이 어지럽지만 우리의 눈과 사고를 자극하는 이유는 작가만의 내적 시선으로 다시 표현해낸 이 그림들이 분명코 꿈의 세계가 아니라 작가가 이해한 현실이며, 이분법적인 세계의 경계를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박장민

Vol.20060929e | 문지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