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기의 울림

권석만 조각展   2006_0930 ▶︎ 2006_1130

권석만_사유_화강석_120×120×300cm_2006

초대일시_2006_0930_토요일_06:00pm

2006 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야외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Tel. 031_955_0062

숨쉬고 말하는 돌들-권석만의 조각 ● 조각가 권석만의 돌조각들이 파주출판도시라는 특수한 현대 건축물 사이에서 전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놓여 있다. 누군가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고 앉아 있고 누워 있다. 조각가 권석만이 손댄 돌들은 재질이 갖는 본래의 성품이 되도록 다치지 않게, 그렇게 정성 바친 흔적이 역력했다. 돌이 스스로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작가는 뒤에 숨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돌들의 생명감을 살려내기 위해서 인위적인 흔적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돌들이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물질이 그 성질대로 살아 있게끔 하는 데 작가는 단지 안내자인 것이다. 돌의 생명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닌가 싶다. 저 돌들이 '이렇게 나를 다뤄 달라'고 인간에게 부탁하는 말이 들리는 듯싶다. 권석만의 돌들을 보면서 나는 물체物體의 언어를 듣는 것인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 조각가 권석만은 돌을 다루는 데 있어 대단히 능숙한 관록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돌 장인匠人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손을 안 댄 것 같은 솜씨를 형태로써 실현하고 있다. 외국 돌에 익숙한 권석만이 한국의 화강석과 오석의 품질에 왜 그토록 매료되었는지 그 사정은 알 수가 없지만, 참으로 조각가가 아니면 챙길 수 없는 한국 돌의 특수한 매력을 잘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돌산에서 그냥 떨어져 나온 그 생경한 석질石質의 미美. 손을 댔으되 스스로 그렇게 몸짓한 것 같은 자연스러운 손질. 그리고 덩어리塊體와 공간空間의 천연스런 공존에 특별난 매력이 있었다. 돌이 숨을 쉬도록 하는 것, 그것도 산에 있을 때보다도 더 큰 숨을 쉬게 하는 것. 몇 억만 년을 잠자고 있었던 돌들에게 비로소 입을 열 수 있게 숨통을 열어 주는 것. ●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돌조각들을 보았다. 우리나라의 석물石物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집트며 그리스며 인도와 중국, 로마와 멕시코의 돌조각들을 보았다. 그 속에서 수많은 걸품傑品들을 만났다. 권석만의 이번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인류의 돌문명을 총체적으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혹 돌들을 너무 잔인하게 다루는 일은 하지 않았던가. 혹 돌들에게 말을 강요하지는 않았던가. ● 여기 이 돌들을 보라. 조각가 권석만은 돌들 본래의 몸짓을 찾아 살려내려 애쓴다. 돌들에게서 그들의 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석만의 돌들을 통해서 자연의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런 말을 듣는다. 얼마나 좋은 풍경인가. ■ 최종태

part 1 울림 ● 사각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태로 인간이 만들어 낸 형태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인간의 이성과 특성을 잘 드러내는 형태도 없을 것이다. 원은 우주가 만들어낸 형태로 사각과 함께 대표적인 기하형태이다. 이러한 사각과 원을 자연석과 결합하여 기하학적 형태가 녹아들게 하였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간, 동서가 서로 화해하길 바란다. 그 동안 인간이 양산해 낸 많은 이미지들은 결국 흔적을 남기기 위한 원초적 욕망에서이다. 나는 최소한의 표현으로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 충실하고자 한다. 살아있는 흔적- 마치 세포가 잠에서 깨어나듯 표현하고 싶다.

권석만_울림_세개의 화강석(오석), 철판_ 85×190×140cm, 60×90×230cm, 45×110×110cm_2004

part 2 관조 ● 공간에 대한 동서의 인식은 참으로 다르다. 서양인들은 무엇을 보든지 간에 실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동양인들은 기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서양의 명료성과 동양의 모호성이 융합되어 조화롭게 존재하기를 바란다. 나는 잠재된 기하학적 형태를 표상하고자 한다. 기하형태가 내포하고 있는 인간적이며, 우주적인 본연의 형태를...

권석만_관조_화강석_180×160×180cm_2005

part 3 사유 ● 음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이러한 작업들은 동양의 공간 개념인 빈 공간, 내부공간, 네거티브 공간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기(氣)로 가득한 공간, 성장하고 변화하는 공간, 사유하는 공간. 그 공간은 무와 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찰라의 순간이다.

권석만_사유_대리석_32×32×80cm, 42×45×63cm, 52×52×52cm_2006

part 4 성장 ● 기하 무늬를 사용한 빗살무늬토기, 기하학적 형태의 집적인 탑(塔), 기운생동하는 구름무늬가 새겨진 부도, 해학적이며 고졸미가 넘치는 토기와 도자기에서 우리 민족의 기하학적 감성을 느낀다. 그 속에는 자연미 뿐 아니라 절제미와 자유로움이 상징으로 녹아 있다. 반복과 변화를 통한 성장의 모습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권석만_성장_철_520×120×120cm_2004

고요한 氣의 울림 ● 권석만의 작품에서 외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재료의 물성物性과 기하학적 구성이다. 작품에서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 떠오르지 않고, 하나의 물질 자체로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혈통에 소속될 수 있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미학은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작품의 수준을 모방이 아니라 창조된 것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복잡한 형상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형태의 기하학적 본질을 포착함으로써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불멸의 진리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인간 이성의 산물이고 수학적 사고의 결실이다. 사실 자연에는 기하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자연은 자연에 속한 개체와 그를 둘러싼 기후 환경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외형이 기하 형태로 나올 수가 없다. 미니멀리즘은 자연의 특수한 외양의 근원에 있는 기하학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인간 사고의 결실로서, 1960년대 중반 이후 예술로서 개화된다. ● 권석만의 이번 전시회는, 그의 작품이 미니멀리즘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드러내 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91년 서울대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 작품들은 주로 대리석이나 화강암을 재료로 다루면서 엄격한 기하학적 구조물로 제작되었다. 「내면의 성城」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일련의 시리즈에서 그는 흰색 대리석과 검은색 대리석을 맞물리게 조립하여 심플한 기하 형태를 만들었다. 이처럼 흑과 백이라는 두 개의 대립항이 하나의 조형물에 구성되는 방식은 초기 작품의 전형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데카르트적인 이분법에 근거하여 음과 양, 유와 무, 존재와 부재 같은 이원적 세계를 양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몬드리안이 형태의 본질을 수평과 수직으로 보았듯이, 그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기호를 설정하여 하나의 세계가 서로 다른 두 차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 이처럼 근원적 대립항을 기호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의 대립과 조화를 통해 세계를 구축해 보려는 시도는 최근까지 지속되는 특성이다. 간혹 흑색의 조형물로만 된 작품에도 백색의 공간을 상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허공이 곧 없음을 의미하지 않고 또 다른 방식의 있음을 의미하는 동양적 사유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서 동양적 사유의 개입은 최근 작품으로 올수록 점차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 보이는 숨 막힐 것 같은 단정함과 세련된 기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와해되더니 최근 들어 보다 본격적인 해체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 동안 집착해 온 기하학을 놓음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환원적인 속성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보다 인간적이고 표현적인 터치를 가미하면서 어떤 심리적인 울림이 보다 강해졌다. 이전의 작품이 보다 정신적 차원의 것이라면 최근 작품은 보다 마음의 차원으로, 마음의 울림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 이전 작품에서 대립항이 주로 흑과 백으로 나타났다면 최근 작업에서는 기하학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대립항으로 설정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그는 자연석을 자연스러운 형태를 거의 그대로 살리면서, 선사시대 사람들이 암각화를 새기듯이 그 안에 사각형과 원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을 새겨 넣어 자연과 인간 이성을 조화시키거나 최소한의 표현으로 살아 있는 흔적들을 만들었다. 또한 이번에 새롭게 제작된 「사유공간」시리즈에서는, 대리석으로 날카로운 기하학적 사각형 입체물을 만들고, 그 안을 원이나 유기적인 타원의 형태로 연속적으로 파고들어간 작품들이 선보인다. 이러한 작품들은 조각이 덩어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비어 있는 공간이 형태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 여기서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 실제와 허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사이의 호환이 일어나면서, '형즉시공形卽是空, 공즉시형空卽是形'의 세계가 찰나적으로 체험된다. 동양의 기氣의 개념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생명을 잉태하는 또 다른 실재에 대한 주목은 최근 작품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고요한 기氣의 명상적 울림'을 전하고자 한다. 과거의 작품이 주로 불변의 이理의 개념이 강했다면, 최근의 관심은 견고한 이理와 생동적인 기氣를 조화시키고 보다 균형 잡힌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 그의 작가노트에는 "나는 잠재된 기하학적 형태를 표상하고자 한다. 기하 형태가 내포하고 있는 인간적이며 우주적인 본연의 형태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기하 형태는 원래 비인간적인 차가운 논리로 다가오지만 거기에 생동하는 기운을 실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이 서구 미니멀리즘과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서구 미니멀리즘을 선도한 프랭크 스텔라가 "당신이 본 것이 곧 당신이 본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작품에서 지시의미를 차단하려 한 것이었다. 즉 작품이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 단지 차가운 물질로 현전되는 것을 미니멀리즘 작품이 나아가야 할 귀결점으로 본 것이다. 도널드 저드가 자신의 주관적 내면을 반영하지 않기 위해 공장에서 기하학적 상자를 가공하여 만들어 전시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저드는 그처럼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물질을 '특수한 오브제'라 불렀고, 그럼으로써 미니멀리즘의 이데아인 '자기지시적'인 목적을 실현했다. 이것은 결국 완전한 탈인간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목표는 작품을 인간과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 권석만의 근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서구 미니멀리즘에 동양의 기氣의 개념을 첨가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장인의 손맛과 인간적 체취는 고요하게 생동하는 자연의 생기生氣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요한 새벽에 서서히 동이 터 오는 것처럼 요란스럽지 않은 '고요한 울림'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이 인간 의식의 심층을 찾아 자아의 껍질을 깨고 궁극적인 자기 모습을 발견하듯, 권석만은 기하학의 심층으로 파고들어가 그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모습의 생명성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에 동양의 명상적 태도를 가미한 경우는 인도의 현대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같은 이에게서 성공적 사례를 찾을 수 있으며, 아직 양식적으로 개척의 여지가 많아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 최광진

Vol.20061003c | 권석만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