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서사에 대한 욕망

박영근 회화展   2006_1021▶︎ 2006_1103

박영근_정복의 산_캔버스에 유채_210×550cm_2006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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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25_수요일_05:00pm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28

어린 시절, 세상이라는 좌표에서 원점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세상은 내가 아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그 바깥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끝없이 지속될 것이고, 내가 가본 곳이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중심은 점차 나에게서부터 외부로 이동한다. 객관적인 서사도 결국 주관적인 서사의 집합이거나 혹은 목소리 큰 주체가 만들어낸 (개인적) 서사의 확대판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서사는 종종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서사 앞에서 압도당하곤 한다.

박영근_정복의 산(황산/북한산/알프스산)_캔버스에 유채_210×550cm_2006
박영근_사는 곳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06_부분
박영근_입는 것 / 사는 곳 / 먹는 것_캔버스에 유채_각 97×194cm_2006

캔버스에 바탕색을 칠하고, 그라인더와 샌더로 형태를 만들어낸 후, 휙 흐르는 듯한 곡선들로 속도감을 더하는 기법으로 이질적인 시공간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조합하는 '이미지 계보학'(양정무_박영근의 이미지 계보학 읽기_2005)을 해왔던 박영근은 그 연장선상에서 더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서사 만들기를 시도한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좌표의 중심을 외부에서 자신에게 되돌리고,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에서 파생된 이미지와 그로부터 시공간적으로 확장된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객관적인 서사와 상관없는 주관적인 서사를 구축하는 일을 시도했다.

박영근_정복의 도구_캔버스에 유채_227.3×725.4cm_2006_부분
박영근_정복의 도구(말/우주선/범선)_캔버스에 유채_227.3×725.4cm_2006
박영근_운명의 강(황하강/한강/나일강)_캔버스에 유채_150×730cm_2006

누구나 알고 있듯 역사 교과서 속에서 한강과 인류 4대문명 발상지인 황하, 또 북한산과 나폴레옹의 알프스는 전혀 다른 비중으로 다뤄진다. 그의 집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산은 중국의 황산, 유럽의 알프스로 확장되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강은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던 강들-황하, 나일강과 짝을 이룬다. 그는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사실과 상관없이 전지적 시점에 서서 임의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선택하고, 조합해나가는 일종의 유희를 즐긴다. 말과 배, 우주선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정복'이라는 단어로 병렬시키고, 박정희, 렘브란트, 양귀비, 고흐, 릴케, 모네라는 뜬금 없이 보이는 조합은 '꽃'이라는 단어로 한데 묶였다. 죽기 직전에 연못을 만들어 수련을 기르고 그렸던 모네, 말년에 튜울립에 투자했다가 파산했던 렘브란트, 열심히 무궁화를 심고 또 심었던 박정희처럼 특정한 꽃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인물화와 꽃 그림으로 그렸다. 흑백으로 표현된 인물들은 실제 인물보다 동상을 보고 그린 듯 견고하고 기념비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하단에 위치한 꽃들은 화려한 빛깔로 싱싱하고 생기 있게 묘사돼 대조를 이룬다.

박영근_박정희의 무궁화/유지자사육성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06 박영근_고호의 해바라기/고락지모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06
박영근_렘브란트의 튤립/무전유죄, 유전무죄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06 박영근_릴케의 장미/사후약방문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06
박영근_양귀비의 양귀비/가인박명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06 박영근_모네의 수련/아전인수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06

눈에 띄는 것은, 여기에 이미지(인물)와 이미지(꽃)를 연결시키는 작가의 텍스트가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네 때문에 개울물이 끊겨 아랫마을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못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에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해석을 붙이거나, 장미를 좋아하던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은 것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라 해석했다. 보는 이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지극히 주관적인 서사에 대한 작가의 욕망이 여기, 이 텍스트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박영근의 회화 자체가 시각적 전달력과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친절한 해설 없는 이미지만으로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게 할 듯하다. 하지만 그간 21번의 개인전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이미지와 그 소통의 문제를 고민한 결과가 '이미지를 보완하는 텍스트'라는 적극적인 형태로 반영된 것 같다.

박영근_나와 처와 딸들(나와 처)_캔버스에 유채_각 90.9×72.7cm_2006
박영근_나와 처와 딸들(첫째와 둘째)_캔버스에 유채_각 90.9×72.7cm_2006
박영근_나와 처와 딸들(셋째와 네째)_캔버스에 유채_각 90.9×72.7cm_2006
박영근_나와 처와 딸들(다섯째와 여섯째)_캔버스에 유채_각 90.9×72.7cm_2006
박영근_딸들과 처와 나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06

마지막으로 "어느 어둑한 날 밤, 집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곤히 잠든 70개의 발가락을 보았다"는 고백이 덧붙여진 가족 초상화 「나와 처와 딸들」은 가족, 즉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가장 명확한 세계에서 다시 출발하려 하는 작가의 의지를 재확인시켜준다. ■ 이수정

Vol.20061005a | 박영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