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학의 풍경화 혹은 산수화

박영학 회화展   2006_0926 ▶︎ 2006_1124

박영학_'보아가는'풍경_장지에 방해말, 목탄_190×19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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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25_수요일_06:00pm

신미술관 기획 초대전

신미술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 556-2번지 Tel. 043_264_5545 www.shinmuseum.org

박영학의 풍경화 혹은 산수화 ● 박영학이 그려내는 풍경은 관객을 다가가게, 그리고 멀어지게 한다. 가까이 다가서면 그의 화면은 손에 잡힐 듯한 입체감으로 살아나고, 햇살에 증발해버린 듯한 여백은 뒤로 물러설 때 선(線)을 넘어선 생동감을 획득한다. 검디 검은 숲은 나무들의 각각의 종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세밀하고 흰 여백과 대비를 이루어 실제 그러해야 할 것보다 더욱 깊어 보인다. ● 야산의 우거진 검은 숲과 등고선과도 같이 풍경의 구획만을 보여주는 흰 여백은 비현실적인 대비를 이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어내는 화면은, 어디선가 본 듯한, 한번쯤은 그 땅을 밟아보았을 듯한 친근함을 가지고 있다. 그의 검은 숲에는 응당 작은 생명체들이 기식하고 있을 듯하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멀리 화면 너머로 바다 내음이 풍겨올 것 같기도 하다. ● 한눈에 그의 그림은 먹을 이용한 수묵화로 보인다. 그러나 흑과 백, 검은 면과 흰 면으로 이루어진 그의 화면은 실은 종이에 목탄으로 그려낸 그림이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 하나 하나의 점법(點法)이라도 논해야 할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명암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꼼꼼한 드로잉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박영학_'보아가는'풍경_장지에 방해말, 목탄_100×100cm_2006
박영학_'보아가는'풍경_장지에 방해말, 목탄_190×190cm_2006
박영학_'보아가는'풍경_장지에 방해말, 목탄_162×130cm_2006
박영학_'보아가는'풍경_장지에 방해말, 목탄_190×190cm_2006
박영학_'보아가는'풍경_장지에 방해말, 목탄_80×80cm_2006
박영학展_신미술관_2006
박영학展_신미술관_2006

그의 작품 속에서는 이른바 '동양화'의 방법과 매체, 그리고 '서양화'의 방법과 매체가 서로 투쟁하지 않고,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일체감을 이루고 있다. 동양화의 매체를 주된 것으로 손에 익힌 동시대의 화가들이 가지는 고뇌의 흔적, 서양화의 매체에 더 익숙한 관객들이 안고 있는 낯설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이 눈여겨볼만한 그의 특징이다. 더군다나 그의 목탄 자국은 동양화의 운필에 익숙한 자가 보기에는 서양화적인 것이고 서양화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동양화적인 것이다. 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조화, 그것은 서양의 매체를 이용한 동양화가 아니고, 동양적 정신을 담보한 서양화도 아니며, 그냥 '그림'일 뿐이다. ●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 뿐 아니라, 이분법적인 구분을 무화시키는 방법은 그의 작품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그의 그림은 흑과 백, 자연과 인공, 실제와 개념, 현실과 비현실 등의 대립적인 개념쌍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면서 화면에 몰입케, 혹은 화면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숲을 이루는 검은 화면은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의 자연을 표상하는 반면, 화면 밖으로 멀어지는 듯한 백색의 화면은 인공적 지면(地面)을 개념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학은 큰 개념적 대립 지점들을 의도적으로 교합시키는 방식이 아닌, 그리고 개념들이 크게 떠드는 방식이 아닌,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보이고 더욱 드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공존하게 한다. 그의 그림은, 참으로 오랜만에 대하는, 많이 말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말하는 그림이다. ■ 이윤희

Vol.20061005b | 박영학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