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빛

김성용 사진展   2006_1025 ▶︎ 2006_1031

김성용_위로하는 빛13_컬러 인화_100×10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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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25_수요일_06:00pm

갤러리 나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Tel. 02_725_2930 www.gallery-now.com

까만 어둠 저편에 발광하는 하나의 돌은 보는 이의 시선과 심장에 그대로 와 박히면서 가장 장엄한 구경거리를 선사했다. 수시로 변하는 형상과 어둠을 배경으로 환하게 번지는 빛으로 인해 달은 강력한 볼거리가 되어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했는데 그런 면에서 밤하늘은 최초의 화폭이며 달과 별은 모든 이미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달 표면에 나타난 음영을 보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동시에 온갖 전설과 신화를 창조해냈다. 회화와 문학 또한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어둠을 구원하고 중력에 저당 잡힌 이 현실계 너머를 꿈꾸게 해준 것은 달이었기에 달은 늘 그리움과 몽상, 희망을 비추는 거울처럼 자리했다.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탈중력과 비상에의 욕망을 꿈꾸었다. 달이 없었다면 지상의 모든 이들은 꿈을 잃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달 속에 어른거리는 그 누군가의 얼굴을 애타게 찾는다. 고독과 외로움, 상처를 진정시켜주었던 이미지는 다름아닌 달과 함께 오버랩 되어 떠오르던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달은 만월이어야 제격이다. 달은 인간의 얼굴을 상상하게 해준 결정적인 공간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등처럼 떠있는 밝고 둥근 달은 모두에게 심리적인 안정과 위로를 선사해주었다. 해서 지상에 있는 모든 존재가 저 달로 인해 받았을 은혜를 생각해본다.

김성용_위로하는 빛12_컬러 인화_100×100cm_2006
김성용_위로하는 빛17_컬러 인화_100×100cm_2006

김성용은 우연히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어느 날 겪은 일상의 불쾌와 마찰들이 비로소 달을 통해 정화되었던 개인적인 경험이 달을 보고 찍고 싶도록 유인한 것이다. 차가운 겨울날 밤에 본 그 달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던 그에게 달은 새롭게 다가와 주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는 소리없이 자신의 머리 위에 환하게 떠오른 그 달을 촬영했다. 지속해서 자기에게 위안과 마음의 평안을 심어주었던 달을 그리워하고 다시 그 달을 확인하고자 하는 동경에 의해 채집된 무수한 달들은 현재 자신의 일상적 삶의 장소에 자리한다. 하단에는 삶의 공간들이 납작하게 드러누워 있고 그 위로 처연하게 달이 떠있다. 산동네나 아파트 건물 위로, 화려한 도시의 건물들 위로 혹은 소박하고 한적한 거리 위에 달빛은 공평하고 민주적으로 비춘다. 달빛에 비해 소박한 인공의 조명에 의지한 인간의 주거공간과 한 쌍을 이루는 이 달은 매우 인문적 성격을 띈다. 달이 없었다면 밤풍경은 너무도 삭막했을 것이다. 이지러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풍만하고 꽉 찬 보름달만이 사진 속에서 빛난다. 그는 항상 원형의 달을 찾아 긴 밤 시간을 소요했다. 달을 찾아나서는 밤의 여정이 다채로운 풍경으로 그려져있다. 이것은 밤풍경이면서 동시에 달이 초상이다. 낮 동안의 일상이 잦아들면 그때 밤이 밀물처럼 들어차고 그 위로 달이 떠오르는 순간 사람들은 잠시 낮 시간의 번잡함과 수런스러움, 거칠고 부박스러웠던 마음의 갈래들을 다소곳이 내려놓고 차분함과 경건함으로 모두 휴지(休止)한다.

김성용_위로하는 빛19_컬러 인화_100×100cm_2006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달을 보면서 분노와 황폐함으로 어지럽던 마음이 순간 차분해졌던 그 날의 경험이 마냥 신기했다고 한다. 달은 분명 그 달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인 자연존재의 하나다. 밤의 시간대에 내리는 달빛은 사람들의 몸으로 적셔 들어가 내내 혼곤한 정서에 놓이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의 영향력과 기운을 두려워했다. 오늘날도 달은 여전히 신비스러운 존재다. 그것은 물리적, 과학적인 판명과는 다소 무관하다.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과 슬픔, 상처를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달은 여전히 주술적인 대상이다. 낮과 밤이라는 두 세계가 나름대로 낭만적으로 존재했던 시간은 근대에 와서 달라졌고 그래서 밤을 지워낸 인공의 조명과 시간 아래 요정과 귀신, 신비스러운 밤의 문화가 지닌 주술성은 상실되어갔다. 반면 작가는 다시 달 사진을 통해 신비로운 힘과 주술성을 환생시키고자 한다. ● 달은 무엇보다도 풍요와 관련된다. 유럽에서는 달빛 아래에서 식물이 자란다는 믿음이 있는데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 농부들은 달이 떴을 때 파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단다. 아울러 달빛이 충만한 밤에 성행위를 하면서 여자가 달을 보면 수태를 하게 된다는 믿음도 있다. 우리 선조들도 여성이 임신을 원할 때 달빛을 한껏 쐬곤 했다. 동시에 달의 주기적 변화는 인간을 두렵게 만들었다. 변화하는 주체인 달은 불완전성을 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달을 광기의 상징으로도 여겼다. 달의 모습이 시시때때로 변하듯 그렇게 변하는 정신의 상태를 미친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생리주기는 달과 일치한다. 그래서 달은 여성, 음을 상징한다. 음악에서 베토벤의 '월광소나타'와 슈만의 음악들은 미술에 있어서의 프리드리히나 고야처럼 달에 의해서 영감 받은 것들이다. 중국인들은 가을의 달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의 차가운 느낌은 군자의 덕을 상징했으며 맑고 높은 절개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농업과 관련해서는 풍요의 상징이자 시간의 질서와 시절의 운행, 섭리를 상징한다. 또한 재생과 부활의 기본적 원형이었으며 특히 달의 밝은 빛은 정화하는 힘의 상징이었다. 달은 밝고 원만하되 한 모습을 고집하지 않기에 불교에서는 불법을, 도교에서는 초월이나 승화를 의미했다.

김성용_위로하는 빛21_컬러 인화_100×100cm_2006
김성용_위로하는 빛22_컬러 인화_100×100cm_2006

작가는 밤하늘의 달을 촬영했다. 모두 보름달이다. 그 달은 환하고 아름답지만 쓸쓸하고 처량하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로운 마음에 위안을 주는 존재다. 개인적 감성의 표현에서 시작해 대중의 보편적 감성에 가닿고자 하는 이 달 사진은 컬러사진이지만 실제의 재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감성의 표현과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색의 밸런스를 깨뜨리기도 하고 다소 과장하기도 했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삭막하고 적조한 도시 야경의 모습이 연상된다. 호퍼 그림에 달을 하나씩 넣어주었다고나 할까?

김성용_위로하는 빛26_컬러 인화_100×100cm_2006

항아가 달에 올라간 뒤부터 아폴로 11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사람들이 달을 쳐다보며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가슴에 떠올렸을 것이다. 달이 없는 밤풍경은 상상하기 힘들다. 인간의 발이 달의 대지를 이미 밟아버린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달을 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부침하기도 하고 더러 위로를 받거나 깊은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달은 슬픔과 처량함, 스산함과 적막함과 더 밀접해 보인다. 달은 어딘지 쓸쓸하고 아련하고 슬프고 적막해야 제 맛이다. 지치고 힘들고 고독한 이들이 고개를 들어 저 달을 본다. 거기 위안처럼 달이 떠있다. 세상에 속하지 못해 세상을 등지고 싶은 이들에게 달은 안식처를 제공한다. 특히나 이런 식의 삶에 대해 저항하고 슬픔의 힘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에 위로의 시선을 던지는 예술가들에게 달은 그 어떤 것보다 영감과 상상력의 근원으로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박영택

Vol.20061007c | 김성용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