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然寫眞屛1×newspaper

신혜선×고정남展   2006_1010 ▶︎ 2006_1024

고정남_newspaper_흑백인화_54×39.5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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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10_화요일_06:00pm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Tel. 011_9991_1701 www.curiosity.co.kr

newspaper-어느 일간지 아카이브 마니아의 앞뒤 바뀐 스테인드글라스 ● 일본 체류 시 콘크리트 축조물이 갖는 무표정한 미니멀리즘을 프레임에 담아온 고정남이 금번 소재의 스케일을 한층 축소했다.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4평 규모에 작품의 스케일을 맞추려한 걸까? 「On concrete by Ando Tadao」나 「Yumebutai」연작처럼 아예 대놓고 콘크리트 구조물에 집착한 전례를 비롯, 그가 종래 천착했던 주제는 인적 한산한 일본식 가옥을 바라보는 밋밋한 앵글이 주를 이루었던 점을 기억하자. 종심 깊은 원근법으로 구조의 물성(物性)과 입체감이 전작들에 종속된 속성이었다면, '호기심'에 내걸릴 8장의 사진은 그와는 정반대로 기왕에 평면으로 출력된 일간지 인쇄물의 양쪽 면을 한 면(동일한 시공간)위에 제시하는 프로젝트다. 비교적 단조로운 제작기법이 만든 결과물이지만 얼핏 봐서는 그 공정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깔끔하게 마감된 일간지 모퉁이의 면면도 그렇고 뒷면이 반투명해진 앞면 위로 투사되어 동시적으로 제시되는 재현 방식이 관자에게는 익숙하지 않아서 일게다. 제작 원리는 이렇다. 그가 수년간 모아온 한일(韓日)양국 일간지의 광고면을 유리창에 부착한다. 창을 투과해 빛은 불투명한 일간지의 얇은 면으로 스며들어 순간 반투명하게 만들면서 한 장짜리 신문의 앞뒤를 동일한 면 위로 중첩시켜 드러낸다. 이 장면을 촬영한 후, 유리창이 드러난 일간지의 가장자리를 도려낸다. 즉 이런 양면 효과에 일조한 빛과 유리창의 기여도는 최종 결과물에서 자취를 없애는 것이다. 일본 건축물을 하염없이 찍던 시절의 관성 탓인지 고정남의 니뽄필은 이번에도 포기되지 않았다. 선별된 일간지 8쪽 중, 한일 간 배당은 3 : 5다. 유리창(window)은 본래 고대 스칸디나비아 어 vindauga에서 유래하는데 바람(vindr = wind)과 눈(auga = eye)이 결합된 용어로, 13세기 무렵 유리가 없는 지붕의 작은 구멍을 일컬을 때 사용했다. 이후 이 용어는 문학적으로 '들여다보는 구멍(eye-hole)'을 뜻하기도 했으니, 창이란 안과 밖을 시각적으로는 연결시키되 물리적으로는 차단하는 관음 장치로 이해될 법하다. 고정남의 신작은 양면이 비치는 일간지의 동시성만 포획될 뿐, 유리창이 기여한 역할은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셈이다. 관음증의 장치를 지운 것이다. 앞뒤 면의 불가피한 중첩으로 앞면의 이미지와 그것과는 내용적 연관성을 갖지 않는 뒷면의 텍스트가 한 면에 놓인다. 예를 들어 단아한 의상을 차려입은 여성 모델 2인이 등장하는 우롱차 광고는 그것과 무관한 뒷면의 NHK의 방송 편성표의 훼방을 받는다. 모델의 백색 상의 위로 편성표가 가지런히 올려진다. 한편 전면을 깔끔하게 도안한 Suntory사의 천연수 광고 역시 반대면의 블특정 광고 문구로 인해 생수 특유의 청량감이 훼손된다. 이태리 브랜드 베네통이 극동지역의 일간지 위로 도입되는 과정은 더 신랄하다. 흑인 광고모델의 오른 머리의 위에서 아래로 '한국 특허에 이어 미국특허까지 획득!'이라는 뜬금없는 문구가 좌우 뒤바뀐 채 오버랩 된다. 이번 신작은 고정남이 수집한 95년부터 2003년 사이 발간된 한일 일간지에서 선별된 것이라서 이미지와 기사의 시의성은 2006년이라는 동시대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철지난 서태지의 정면과 우리는 만나는 이유다. 앞뒤 면이 서로 뒤엉켜, 정보 전달은 실패한다. 더욱이 10년도 더 된 일간지는 이미 동시대성을 자진해서 포기한 것이다. 투과된 빛을 활용하여 유리의 채색과 음영을 드러내는 조형적 전통은 4-5세기 초기 기독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찾을 수 있다. 고딕 시대에는 보다 현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무지몽매한 신자와 신(神)사이를 결박시켰다. 그러나 이제 스테인드글라스의 종교적 가치는 유명무실하고 장식적 기교만이 칭송받는다. 마찬가지로 일간지 수집광 고정남이 만든 변형 일간지 스테인드글라스 또한 명색이 정보 만능 시대에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는 현란하고 감각적인 이미지가 장악한 매체전달의 양면을 스테인드글라스의 원리에 기대어 보여준다. ■ 반이정

고정남_newspaper_흑백인화_54×39.5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고정남 홈페이지로 갑니다.
신혜선_自然寫眞屛1(자연사진병1)_180×36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신혜선 홈페이지로 갑니다.

自然寫眞屛1(자연사진병1)-포토그래픽 실경산수를 담은 8폭 병풍 ● 제작 용도와 양식 면에서 다른 출발점을 갖기에,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따르겠으나 한자 문화권에서 기원전 제작된 병풍(屛風)과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삼면화(triptych)를 포함한 일련의 제단화는 패널 여래 개를 이어 붙여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부는 접이식(folding screen)이란 점에서 통하는 데가 있다. 다만 종교적 용도가 선행되는 제단화는 정중앙부 패널에 중요 인물과 사건을 배치한 반면, 본디 바람막이용(wind wall)이라는 어원을 갖는 병풍은 패널간의 서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운반이 용이한 병풍은 춘하추동의 절경을 실내 공간에 임시방편으로 옮겨오는 효과가 있고 벽에 거추장스럽게 부착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직립할 수 있는' 구조적 이점 때문인지 전시 공간 속에 스펙터클을 펼쳐놓기에는 이만한 형식이 또 있을까 싶다. 일찍이 박윤영처럼 비교적 젊은 수묵 화가는 병풍의 틀을 빌어 고리타분한 산수화의 답습을 버리고 다분히 현대적 내용물을 그 안에 결합시켜 주목을 받았다. 병풍이라는 매체가 익히 그 태생을 기원전에서 찾을 수 있을 뿐 더러 그것이 담는 내용도 동시대적 삶과는 유리된 것이어서 병풍에 변형을 가하는 시도는 옆으로 펼쳐지는 병풍의 스펙터클만큼이나 도발적이 될 공산이 크다. 「Untitled」라는 이름으로 95년부터 98년까지 제작된 '섹슈얼리 호러 픽쳐쇼' 다운 사진작업과는 상반되게 신혜선이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내놓은 「My models and my landscape」은 다소 무색무취해보였던 게 사실이다. 연도표기를 가리고 본다면 가 오히려 후속작 처럼 느껴질 만큼 「My models and my landscape」는 카메라워크와 피사체의 자세가 다소곳하다 못해 어색하기까지 하다. 일단 신혜선이 채택한 모델들이 작가 자신의 일가친척에 묶여있는 탓에 제3자의 도발적인 해석을 무력하게 만들었다고나할까? ● 신혜선의 이번 신작은 성 도착적 비주얼이나 작가 주변에 대한 천착 모두를 저버리고 오로지 형식 실험에 전념했다. 작가에 따르면 회화가 사진으로 대체되는 매체 변화의 실상을 병풍이라는 전근대적 조형 틀을 빌어 실험하려 했다 한다. 8폭 병풍에는 충청도 연미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전망이 총 4폭에 들어차고, 그 사이사이 4폭에 작가 스스로 그동안 연마해온 서예가 올려지는 구성이다. 조선 중기에 와서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실경산수는 기실 일종의 개념적 전환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산수에 대한 관념적 정형성의 답습에서 벗어나 실제의 것을 옮겨오려는 미학적 태도는 삶에 대한 진정성과도 연관되리라. 한데 이것을 아예 기계적 재현의 결과물인 인화지로 대체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병풍 위로 올려진 출력 인화물은 화학적 프로세스에 입각해 '지금 거기에서 목격한' 객관적 실체를 고스란히 옮겨오는 것이다. 병풍이라는 비-현대적 틀과 결합된 네 폭짜리 사진 작품은 결과적으로 동서와 고금을 혼재했다는 수준 이상의 미학적 기대치를 낳을지도 모른다. 먼저 신혜선이 개작한 병풍에는 개념적으로 모방된 관념 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인화물의 형태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더더군다나 사계절이라는 일 년치의 시간적 흐름을 담고 있지 조차 않다. 본디 8폭짜리 병풍은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라 하여, 4계절의 아름다운 8가지 면모를 담기 위해 고안된 형식이다. 자연사진병(自然寫眞屛)이란 제목이 붙은 혼성 병풍의 4폭에는 세로로 기다랗게 인화된 결과물이 고속도로와 금강 그리고 그 위로 가로지르는 다리를 포착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4개의 이미지 사이의 유기성마저 포기된 것이다. 다만 동일한 곳(연미산 정상)이라는 시점만 일치할 뿐. 더욱이 장관(壯觀)이 선별된 것도 아니어서 아름다운 산수를 방안에 옮겨온다는 취지마저 무색해졌다. 시점, 형식, 미학 모두가 세대교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을 신혜선은 8폭 병풍이라는 번거로운 틀 안에 자신의 전공을 결합시켜 입증하려 한다. ■ 반이정

Vol.20061010e | 신혜선×고정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