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ercices en rouge et noir

니콜라 샤르동 개인展   2006_1026 ▶︎ 2006_1126 / 월요일 휴관

니콜라 샤르동展_가인갤러리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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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26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가인갤러리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02_394_3631 www.gaainart.com

기하학 추상이 레디메이드를 만났을 때 ● 흰색과 검은색의 기하학적 형태가 주조를 이루는 니콜라 샤르동(Nicolas Chardon, 1974- )의 회화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20세기 초반 말레비치(Kazimir S. Malevich)의 검은 사각형부터 현대미술 작가 다니엘 뷔렝(Daniel Buren)의 흑백 줄무늬 작품까지 한 세기 가깝게 계속되어 온 특정한 기하학 추상의 계보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내밀히 살펴보면 우리는 샤르동의 회화가 단지 이러한 선임자들의 계보를 잇는 평범한 기하학적 추상회화에 그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기하학 추상이라는 대표적인 모던 아트(Modern art)의 모티프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그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새롭게 변형한다. 그것은 모던 아트의 단순한 재생이나 계승이 아닌 모더니즘에 대한 동시대 예술의 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그린버그식의 협소한 의미의 모더니즘이 아닌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모더니즘일 경우에만 굵은 글씨로 표기하기로 함) ● 샤르동의 기하학적 추상의 핵심은 그가 캔버스 대신 사용하는 체크패턴 천에 있다. 그는 모든 화가들이 캔버스를 그 틀에 씌우듯 '그리드(grid)'를 가진 기성 천을 캔버스 틀에 당겨 고정한다. 이 때 천을 당기면서 가해지는 균일하지 않은 물리적 힘에 의해 천의 씨실과 날실은 약간씩 틀어지고 그로 인해 천의 그리드 또한 변형을 겪는다. 이 위에 천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젯소를 칠한 뒤 그리드의 왜곡된 선을 따라 자신이 원하는 기하학적 형태와 구성을 그려넣고 나머지 부분을 흰 색으로 칠하는 것이 샤르동의 주된 작품제작 방식이다. 천이 팽팽하게 당겨짐으로써 생기는 그리드의 변화와 왜곡을 따라 기하학의 형태는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직선이 아닌 비일률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의 기하학적 형태는 이렇듯 작가의 의도에 따른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체크패턴 천의 물질적 특성에 따른 우연적인 결과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체크패턴 천이라는 레디메이드 오브제는 샤르동의 기하학적 구성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 제작방식은 이처럼 매우 쉽고도 명료하다.

니콜라 샤르동_composition 5figures rouges_천에 아크릴채색_60×73cm_2006
니콜라 샤르동_composition 3figures rouges_천에 아크릴채색_60×73cm_2006

우리는 이렇게 단순한 방법론과 한정된 수단으로 만들어진 그의 회화에서 생각보다 큰 시각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만의 부드러운 기하학 형태는 일반적인 기하학에서는 느낄 수 없는 리듬감과 율동감을 부여하며 그것이 당겨진 천의 체크패턴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트와 유머를 느끼게 한다. 사실상 체크패턴 천은 샤르동에게 그만의 기하학 형태를 그리기 위한 그리드를 제공하는 보조도구인 동시에 그 자체로 부차적인 시각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물감이 칠해지지 않은 캔버스 측면에는 작품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천의 패턴들이 존재하고, 회화의 화면에는 천의 미묘한 텍스쳐가 느껴진다. 또한 그림이 흰 벽에 걸렸을 때 천의 색과 패턴이 반사되는 모습은 관객에게 예상밖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렇듯 샤르동의 기하학 추상은 체크패턴 천으로 인한 비일률적인 곡선의 새로운 기하학 형태를 만들어내는 조형적인 특징 외에 재료의 물질적 특성으로 인한 시각적 다양성을 가진 독창적인 회화임에 틀림없다. ●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회화가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미술사에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온 상이한 개념을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한 데 녹여 새로운 결과물로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기성 천을 사용하여 기하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그리드를 변형시키는 샤르동의 회화는 모더니즘의 주된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모더니즘의 대표적 양식 중 하나인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재해석하는 중요한 도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모더니즘의 재해석에 있어서 그는 모던 페인팅의 상투적인 요소들을 사용한다. 그가 빈번하게 시도하는 검은 사각형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검은 사각형은 말레비치가 처음 시도한 이래 절대주의(Suprematism)를 따르는 화가들을 비롯해 그 후 20세기 전반을 거쳐 많은 예술가들이 소재로 삼은 추상회화의 상징과도 같다. 샤르동은 이러한 모던 페인팅의 클리셰를 자신의 회화에 도입하여 기성 오브제의 물질적 특성과 그에 기반한 제작기법으로 그것을 새롭게 해석해내는 것이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과 뒤샹의 「샘」이 1913년 같은 해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샤르동의 회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니콜라 샤르동_losange blanc_천에 아크릴채색_170×170cm_2006
니콜라 샤르동_cible noir_천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06

이러한 샤르동 회화가 지닌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해주는 것은 그의 장소 특정적인(site-specific) 설치작업이다. 모빌의 형태로 제작되는 그의 설치작품은 체크패턴 천과 같이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베니어판을 재료로 한다. 베니어판의 양면에 단색 아크릴 물감을 칠한 뒤 그것을 구부려 부러뜨리고 두 부분으로 쪼개진 판넬을 천장에 매다는 방식을 취하는 그의 모빌은 회화의 제작방식이나 개념과 그대로 부합한다. 캔버스 틀에 천을 당김으로써 그리드가 우연적인 변화를 겪듯 판넬을 구부려 부러뜨림으로써 쪼개진 판넬의 모서리는 불규칙하고 매번 다른 모양을 띤다. 뿐만 아니라 회화에서 우연적으로 틀어진 그리드 위에 작가 자신의 의도대로 기하학적 형태를 그리듯이 모빌에서 역시 우연적 효과에 기대는 과정 외에 작가는 판넬의 분할 비율이나 설치의 위치와 구성을 더해 작업을 완성한다. 또한 회화에서처럼 모빌작업에서 역시 '모노크롬'이라는 모던 페인팅의 대표적인 클리셰를 자신의 방식대로 변화시킨다. 한편,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샤르동의 설치 작업은 항상 그 공간에 맞추어 새로 제작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전시장의 회화작품 설치를 마친 후 그에 맞추어 한국에서 구한 베니어판과 아크릴 물감을 가지고 1대 2 비율로 분할한 빨간색 모빌을 만들어 한쪽 공간에 매달고, 같은 비율로 분할한 또 다른 모빌을 전시장의 또 다른 공간의 바닥에 설치하였다. 사실상 설치작업을 포함한 모든 작품의 디스플레이를 각각의 전시공간에 맞추어 즉석에서 제안하는 그의 작업 전반은 현대미술의 유동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니콜라 샤르동_가인갤러리_2006
니콜라 샤르동_가인갤러리_2006

그러나 앞서 말한 듯이 샤르동의 작업이 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모더니즘과 이를 포함한 예술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입장을 가진 현대미술이라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일종의 모더니스트라고 천명하거나 자신의 독창적 기하학 추상을 '또 다른 모더니즘(alter-modernism)'이라는 신조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평면성과 같이 회화의 형식적인 측면에 치중한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이 아닌 새로움에 대한 추구라는 모더니즘의 진정한 본질에 동조하는 그의 확고한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0년대 초 추상표현주의가 쇠퇴하고 그린버그의 형식주의적 관점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불가능한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등장한 것을 두고 단토(Arthur C. Danto)는 예술의 역사를 대변하는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하고 역사 이후(post-history)의 '동시대 (contemporary)' 예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단언했다. 그러나 과연 모더니즘은 끝이 났고 예술의 역사는 다음 단계와 단절된 채 분리되어 진행되고 있는가? 워홀의 「브릴로 박스」 이전에 뒤샹의 「샘」이 있었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샤르동이 생각하는 모더니즘은 기존 전통의 가치에 대해 건강한 회의를 갖고 계속하여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예술에의 태도를 뜻하는 것이지 결코 특정한 양식의 강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모더니즘은 지속 가능한 것이며 '동시대' 예술은 모더니즘과 양립 가능한 셈이다. 요컨대 니콜라 샤르동은 모더니즘을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는 뚜렷한 목적으로 동일한 원리와 도구를 사용해 조금씩 차이가 나는 다양한 양상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분명한 개념을 지닌 '동시대' 미술가임에 틀림없다. ■ 신혜영

Vol.20061022e | 니콜라 샤르동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