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rust You

이기일展 / LEEKIIL / 李起日 / sculpture   2006_1107 ▶︎ 2006_1121

이기일_propaganda_ABS, 나사 볼트, 철사_133×260×63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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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6_1107_화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종로구 가회동 72-1번지 Tel. 02_747_4675 www.skape.co.kr

Do I Trust You? ● 작가 이기일은 자본시장체제에서 권력적으로 작용하는 숨은 구조와 선전성에 대한 논리를 '프로파간다' 작업을 통해 그간 선보인바 있다. 이번의 'I Trust You'전은 기존의 프로파간다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권력이 독점된 형태로 구조화되는 모습을 담뱃갑 로봇과 플라스틱 프레임 로봇으로 시각화한다. ● Trust의 사전적 의미는 대게 개인적인 상호관계에 있어서의 믿음을 뜻하는 말로 신임, 신뢰, 신용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경제, 사업, 법 등의 전문분야에서는 별도의 용어를 지칭하기도 한다. 작가는 프로파간다의 신뢰할 수 없는 선전성으로부터 경제용어로 사용되는 트러스트의 의미에 주목한다. 경제 분야에서 트러스트는 '기업합동·기업합병'을 뜻하는 용어로 기업들이 시장독점을 위하여 개개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합동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최종적으로 독립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상위 소수의 기업의 생산고나 매출액의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되어, 그 결과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화의 경향을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트러스트 현상은 작가의 담뱃갑 로봇 작업에서 그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여러 외제 상표의 담뱃갑은 서로 혼재된 상태로 로봇의 팔, 다리, 몸통, 머리 등의 부분을 차지하며 강력한 로봇의 모습으로 완결되는데, 이는 담배라는 거대 기업의 상품에 내재된 기업들의 트러스트를 로봇의 형상으로 구조화한 것이다. ● 작가의 담뱃갑 로봇 작업에서 출발한 트러스트는 전시장에 꽉 차게 설치된 플라스틱 로봇 작업을 통해 이제 그 거대함을 폭로하게 된다. 이전에 파출소였던 공간에 설치된 날아가는 모습의 플라스틱 프레임 로봇은 권력이 통합된 구조를 압도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실에 내재된 프로파간다 현상을 제시한다. ■ 갤러리 스케이프

이기일_propaganda_ABS, 나사 볼트, 철사_133×260×630cm_2006

'Trust'적 관계설정 ● 이기일이 로봇 작품을 처음 선보인 것은 2001년 갤러리 다임에서의 2인전에서였다. 담배 케이스 큐빅들을 조합하여 제작한 로봇은 작지만 예리하고 공격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청소년에게 금지된 재료를 가지고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무언가를 만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로봇 작업은 주로 유머와 위트의 차원에서 해석되면서도 담배 케이스라는 재료가 주는 시각적 강렬함과 존재론적 암시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이기일은 이후 자신의 로봇 시리즈에 '프로파간다'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본격적으로 로봇에게 건조한 성격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의 로봇들은 간결함과 세련됨을 갖춘 채 주로 쇼케이스 속에서 보여질 만큼 대상화된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이기일의 '프로파간다'는 문자적 의미대로 특정 대상을 타자화시켜 선전한다는 것보다 '프로파간다' 자체의 허구적 속성과 시대적 상황에서 전개되는 여러 선동적 행위들의 전략적 면모에 대한 관찰이라고 볼 수 있다.

이기일_propaganda_ABS, 나사 볼트, 철사_133×260×630cm_2006

2002 년 겨울, 세종문화회관 데크플라자 야외공간에 7미터 높이의 철골 구조로 세워진 이기일의 로봇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19세기초 러시아 구성주의적 기념비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로봇은 기존의 담배 케이스 로봇이 주는 화려함보다는 견고하고 구조적인 느낌을 주었다. 송전탑의 육중한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된 이 로봇은 군사주의적 발상의 산물인 이순신 장군상과 동일한 높이로 제작되어 동상을 내려보게 배치되었다. 과거 이 땅의 권력을 독점했던 군사정권의 빛 바랜 상징을 내려다보며 오늘날 그 권력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는데, '권력'의 가공적 존재감과 변하지 않는 속성을 도상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로 이기일은 여러 다른 형태의 작업을 시도한다. 2004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에서 열린 전시, '프로파간다'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설치와 퍼포먼스 등을 통해 소비적, 자본적 사회 현상과 공간의 재해석을 보여주었다. 2005년 관훈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성냥그림'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성냥의 붉은 마찰면으로 만든 캔버스에 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리게 하여 물질과 비물질, 고정된 시간과 통사적 시간의 혼재와 접점을 짚어낸 바 있다.

이기일_propaganda_담배케이스와 혼합재료_21×4.5×9cm_2003-2006

2006 년 갤러리 스케이프의 개인전을 통해 이기일은 다시 로봇 작업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등장한 로봇은 2002년 철 프레임으로 제작된 형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재료로 철이 아닌 아크릴을 사용하고 있으며, 표면은 매끈한 흰색으로 처리되어 부드럽고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로봇은 시멘트의 차가운 물성이 감도는 전시장 내부에서 와이어에 매달려 전시장 밖을 향해 날고 있는 모습으로 디스플레이 되었다. 관객의 시선과 같은 높이로 배치된 로봇의 디테일은 정교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애당초 이기일의 로봇은 가사 노동이나 단순 작업을 대신해 주는 친절한 로봇이 아니라 굉음과 불꽃을 일으키며 미사일을 발사하고 근육질의 육중한 몸체를 유연하게 동작시켜 상대를 무자비하게 도괴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 전투 로봇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 호전적인 로봇은 선과 악의 분명한 경계 구도를 설정하고 전투에 의한 섬멸을 통해 독자성을 수호하며, 분열과 조합을 통해 그 존재성을 거대화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로봇은 과거의 것보다 섬세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시선을 교란시켜 관객의 지각능력을 무력화 시키는데, 그 난반사를 조금 피하여 보면 거대한 몸집으로 전시장 내부를 가득 채워버린 것을 알게 된다.

이기일_propaganda-담배케이스와 혼합재료_17×4.5×10cm_2003-2006

이기일은 이번 전시에서의 로봇을 통해 과거 프로파간다의 포괄적인 관점에서 나아가 좀 더 구체적인 논점을 제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I Trust You'라는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Trust'라는 단어는 일상적 의미에서 '믿는다'는 뜻으로 쉽게 번역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간적인 이해와 믿음에 기반한 관계설정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서구적 사고방식에서 'Trust'는 상호간에 지켜져야 할 강제적인 룰이 설정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경제학 용어로서의 'Trust'는 위탁자가 수익 창출의 목적으로 일정 재산의 관리 처분을 의뢰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시장 독점을 위하여 취하는 개별 기업간의 합병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통용된다. 다분히 공격적인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이 단어는 우월한 자본을 이용하여 경영권 확보가 가능한 수만큼의 주식을 매입하는 적대적 합병부터 해산을 통한 합병, 흡수에 의한 통합 등의 형태까지를 포함한다. 개별 주체들간 이합집산의 이면에는 강자의 시장 지배를 확대시킨다는 뚜렷한 목표가 존재하는데, 끊임없이 주위를 흡수파괴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흡수당하고 붕괴해 버리는 자본 권력의 양태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협력과 제휴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거대 지배력 확장을 목표로 한 무자비한 위협과 공격에 의해 복속되어 지배피지배 관계에 놓여지고 마는 것, 이것이 바로 'Trust'의 관계 설정인 것이다. 결국 'I Trust you'는 강자의 논리로 체결된 상호간 규칙의 준수를 상기시키는 압력이며, 약자를 유혹 또는 협박하는 메시지이다. 로봇이 가진 존재성을 통해 드러나는 이 메시지는 이기일의 작업이 구축하는 방향성에 대한 단서가 아닐까? ■ 고원석

■ 찾아오시는 길_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출구 북촌미술관 방향 7~8분 소요

Vol.20061107f | 이기일展 / LEEKIIL / 李起日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