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_Write-contemplation

한정희 수묵展   2006_1108 ▶︎ 2006_1114

한정희_Life_Writ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91×116.8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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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08_수요일

학고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수묵으로 피어나는 도시의 꿈 ● 한 작가의 작업이 변모하고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만약 그것이 젊은 청년 작가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들의 변신과 변화는 필연적으로 작업에 대한 고민과 갈등, 희망과 좌절 같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과 목전에 닥친 절절한 삶의 흔적들은 여과 없이 작품에 반영된 체 드러나기 십상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들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뼈가 야물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작가로 이 세상을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 작가로서 한정희는 이제 비로소 입문의 과정을 걷고 있다 할 것이다. 세속의 물리적인 나이도 그러하지만 작업의 연륜으로 볼 때도 더욱 그러하다. 부단히 다가오는 갈등과 회의 속에서 어렵사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그의 작업들은 그만한 연륜이면 맞닥뜨리게 될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 작업은 오로지 수묵으로만 이루어 진 특징적인 것이었다. 일반적인 세태가 다양한 재료 실험과 자극적인 색채 조형을 추구할 때 그는 오히려 금욕적인 수묵의 세계로 방향을 잡았다. 지필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운필과 적묵, 그리고 여백의 적절한 운용은 당시 그의 작업이 다분히 전통적인 것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작업이 남종 문인화의 고루한 수용이나 전형의 반복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운필의 집적을 통하여 강건한 수묵의 틀을 구축하고 이를 여백과 대비시켜 강조하는 방식은 현대적인 조형감각이 다분히 반영된 것이었다. 그는 수묵의 교조적인 정신성 대신 조형의 수단으로 수묵을 수용하고, 이의 부단한 추구를 통해 수묵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내용에 육박하며, 이를 일종의 현대성과의 일정한 연계점으로 인식했던 경우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정희_Life_Writ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130×160cm_2006
한정희_Life_Writ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130×160cm_2006
한정희_Life_Writ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130×160cm_2006

사실 작가가 선택한 수묵은 그 자체가 대단히 민감한 재료이다. 역사적으로는 동양회화의 전통성을 고스란히 내재하고 있는 절대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가 이미 완성된 재료라는 인식이 있는가 하면, 수묵이 여전히 오늘을 호흡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재료인가 하는 점에 대한 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작가가 수묵을 주 표현 매재로 선택함은 수묵이 지니고 있는 현대적 변용의 가능성과 그것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전통적 축적에 의미와 가치를 두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수묵이 지니고 있는 전통의 엄청난 무게는 결코 예사로운 것일 수 없다. 작가가 시도한 수묵의 변주, 혹은 변용은 바로 이러한 전통성에서 탈피한 자신의 표정 찾기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검고 강한 수묵 일변도의 조형적 작업에서 수묵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감각을 익힌 작가는 근작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변화 양태를 통하여 수묵의 새로운 표정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이는 그가 일관되게 지향하는 수묵에 대한 가치 확인과 의미 발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도이다. ● 새로운 작업들은 양식적 특성상 예전의 그것들과는 상반된 양태를 보이고 있다. 검고 질박했던 수묵은 마치 백묘를 연상시키듯 정연하게 정돈된 선들로 대체되고, 넘쳐나던 적묵의 기세는 무수한 묵점들로 바뀌었다. 도시의 이미지들을 백묘와 같은 기계적인 선들로 포착한 화면 속에는 어김없이 농묵으로 표현되어진 인물들이 전혀 의외의 장소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은 차의 지붕이나 가로수의 가지 위, 심지어는 신호등 위에 자리하며 돌연 화면에 긴장감을 구축한다. 도시를 구획하고 있는 직선의 정연한 선들과 그것을 메우고 있는 수많은 담묵의 점들은 이러한 검은 인물들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특정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한정희_Life_Writ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60.6×72.7cm_2006
한정희_Life_Writ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60.6×72.7cm_2006
한정희_Life_Writ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60.6×72.7cm_2006

작가의 도시 이미지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것이다. 가로의 풍경이나 소소한 사물들의 위치나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분히 설명적인 화면에 돌연 등장하는 이러한 인물은 실로 돌발적이다. 더욱이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의외의 장소일 뿐 아니라, 그 동작의 양태가 그러하다. 도시라는 것이 언제나 요동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마련이지만 작가에 의해 포착된 도시의 이미지는 극히 정적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껍질만 남은 도시의 이미지 속에 돌연 등장하는 인물의 양태는 분명 설정된 조형적 장치이자 작가의 의중이 반영되어진 특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징일 것이다. 작가는 이를 꿈, 혹은 바램과 같은 말로 풀이를 한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한 번쯤은 꿈꾸었을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설이다. 즉 꽉 막힌 도로에서 잠시라도 차 위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싶고, 분주하기 짝이 없는 도시의 가로수에 올라 자동차의 흐름을 마치 강물 보듯이 굽어보고 싶은 그러한 꿈이다. 일견 동심과 같은 천진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보다 절실히 와 닿는 것은 오히려 도시라는 공간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일상이다. 도시라는 새로운 자연 속에서 전원의 산수를 꿈꾸며, 자동차의 흐름 속에서 도도한 강물을 연상하는 작가의 설정은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가 한번쯤은 가슴 속에 품어 봤음직한 잃어버린 꿈을 반영하는 것이라 이해된다. ● 기계적이고 도식적은 선들은 일견 계화(界畵)를 연상시킬 정도로 정연한 모양이다. 마치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사물의 윤곽을 규정하는 선의 기능만을 살린 듯 한 이러한 선의 구사는 분명 전통적인 운필, 혹은 선조의 운용과는 다른 것이다. 굳이 이러한 기계적인 선들을 구사함은 수묵의 새로운 표정 모색이라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중봉에 의한 유려한 선묘의 감각적인 운용보다는 오히려 기계적인 선들의 반복을 통하여 도시라는 특정한 공간의 특정한 이미지를 포착하고 표출하고자 함은 일단 작가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이 수묵을 중심으로 한 표현 체계이며, 그 조형 체계를 원용하고 있는 형식이라 할 때 필연적으로 야기될 모순과 충돌은 해결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기계적인 필선들의 무한한 반복이 보다 여유롭고 융통성을 가질 때, 그리고 수많은 묵점들이 보다 풍부한 내용들을 담보해 줄 수 있다면 이는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작가의 작업은 이제 비로소 시작점에 선 셈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면,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새로운 수묵의 표정이 흥미로운 단서들을 내재한 미처 가공되지 않은 새로운 것이라며, 우리는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변화의 향배를 좀 더 진지한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관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김상철

Vol.20061108a | 한정희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