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김지영 회화展   2006_1108 ▶︎ 2006_1114

김지영_바람이 분다1_한지에 먹, 분채_91×116.8cm_2006

초대일시_2006_1108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공휴일_10:30am~06: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바람, 꽃 그리고 아련한 기억들 ● 바람이 머물고 간 화폭 안에는 알 수 없는 정적이 감돌고 있다. 이끼가 서린 돌들을 배경으로 꽃을 그려내는 김지영의 그림 속에는 의식의 심연을 일깨우는 통로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자아를 향한 긴 여행을 하게 된다. ● 김지영의 작업은 바람과 꽃으로 압축된다. 그녀에게 있어 꽃은 바로 자기 자신과도 같다. 마치 조각하듯이 깎아낸 새초롬한 목련화에서 냇물을 등지고 피어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까지. 어느 하나도 그녀 자신을 넣지 않고 작업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욕심스럽게, 때로는 환한 천금의 미소를 지니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그 꽃들의 표정들을 향유하면서 한가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왜 단 하나의 꽃인가? 작가의 작업이 비슷한 패턴으로 압축되면 압축 될수록 그 의문은 더해진다. 나는 김지영의 작품을 한참을 여행하고서야 그 꽃이 그녀의 자아, 그 전부였음을 알게 된다. 화폭에 그려진 단 한송이의 꽃은 작가의 시선이 얼마만큼 자기 자신에게로 투하되어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단서와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여린 꽃 한송이 주변에는 늘 바람이 지나고 있다. 꽃송이 주변에 가볍게 날리는 꽃 이파리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적에 정적을 더하는 효과를 지닌다. 오히려 바람처럼 지나는 시간의 흐름을 뒤로한 채 그녀가 그려내고자 하는 꽃송이는 클로즈업되어 시간성을 초월해서 견고하게 멈추어지는 구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순간이 롱테이크 되어 아득함을 더하듯이 말이다. 흩날리는 순간 속에 화석화되어 마치 크리스탈처럼 빛을 내고 있는 그 꽃이 작가의 분신이 아니라면 그토록 절실할 수도, 견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김지영의 자연은 자연 그 자체라기보다는 작가의 의식 속에서 마치 상징처럼 기표화된 추상적인 의미의 자연이며, 그녀의 언어이며, 무의식이 화면화 되는 공간이다.

김지영_바람이 분다2_한지에 먹, 분채_91×116.8cm_2006
김지영_공(空)1_한지에 먹, 분채_72.7×60.6cm_2006
김지영_공(空)2_한지에 먹, 분채_60.6×72.7cm_2006

아련한 태고적 기억들. 김지영의 그림은 여성적이다. 수많은 여성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은 다른 작가들 보다도 나는 그녀의 그림 속에서 여성성을 보게 된다. 물론 꽃은 문학적인 의미에서, 혹은 일상적인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김지영의 작품은 그러한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여성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분신인 꽃을 떠받쳐주고 있는 돌들의 배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 김지영의 작품 속에서 때로는 배경으로, 때로는 그것 자체로 화면의 대상이 되곤 하는 돌들은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의식의 심연은 바로 이 돌들에서 나온다. 이끼를 안고 물밑으로 침잠하는 돌은 의식의 심연보다 더 깊은 곳 , 바로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기억이 존재하기 이전, 태내 속에서 어머니와 한 몸이 되어 있었던 그 완벽한 합일에의 환상이 김지영의 화폭에서 재현되고 있다.

김지영_물빛1_한지에 먹, 분채_90.9×60.6cm_2006
김지영_여행길_한지에 먹, 분채_45.5×27.3cm_2006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온전한 에덴에의 기억은 레테의 강물을 건너, 지상에 떨어진 이 순간까지도 다시 회귀하고 싶은 욕망을 품게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언어차원을 넘어서 표현되는 그림이라는 매체로 다시 재생된다. 노을을 그려낼 때, 그림 안의 울림을 표현할 때조차 모태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여성성은 김지영의 그림을 읽어내는 코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모태에의 기억은 견고한 자아를 배태해내는 꽃의 이미지와도 연결되는 것이라 읽혀진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가장 닮은 꽃을 그려낼 때까지 자아의 탐구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 나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의식의 심연을 재생시키는 김지영의 그림을 보면서 무한한 가능성의 한 단면을 예감한다. 근대 문명의 폭압 속에서 자연을 그려내는 동양화가 우리의 일상을 딛고 단절되었던 대화의 장을 새롭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화면 가득 여성성을 담지하고 있고, 의식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김지영의 작업은 작가가 예술이 지향하는 바를 온 몸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단서이리라. ■ 서지형

Vol.20061108b | 김지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