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김은미 개인展   2006_1101 ▶︎ 2006_1115 / 월요일 휴관

김은미_뚜렷해지다: 모든 좋은 관계가 언제나 좋게 시작되는 건 아니다_ 종이에 연필_25.5×25.5cm×30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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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04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01:00pm~09:00pm / 월요일 휴관

엔 스페이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31-24번지 3층 Tel. 02_793_7541 www.cafe.naver.com/nspace.cafe

나의 작업은 나를 찾는 과정이다. 작품들은 나와 내 주변을 연결하기 위해 내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순간들을 묘사한다. 나는 내가 머무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또한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해 받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먼저 내 안 깊은 곳에서 나오는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이때 그 작품이 나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우선 접어둔다. 이 과정을 통해 나를 이해할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다양한 형태와 개념을 가진 작업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서서히 나의 생각의 중심부에 다가가 그 곳에 있는 내 진실한 목소리를 찾게 되고, 그 목소리를 통해 문화나 언어, 경험 등의 공유 여부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다가갈 수 있게 된다. ● 작업활동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핵심적인 수단이다. 금속공예와 새로이 접한 조소의 영역을 기반으로 하여, 나는 나의 느낌과 생각, 질문과 그 대답 등 스쳐 지나가기 쉬운 무형의 개념들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형상화한다. 그 결과로 장신구와 오브제,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조소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작업활동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내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어주고, 안정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나를 새로운 방향에 도전하게 하며, 내 중심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긴 과정에서 나를 끊임없이 북돋아 준다.

김은미_뚜렷해지다: 모든 좋은 관계가 언제나 좋게 시작되는 건 아니다 종이에 연필_25.5×25.5cm×30_2005

타국에서 사람들을 사귀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껏 사는 동안 저지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실수들을 저지른다. 기초 금속 공예를 가르치던 중 한 학생에게 "금속 자투리를 이용해 이 작품을 만들었니?"라고 묻는 대신 나는"금속 똥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니?"라고 묻고 말았다.(영어로 자투리를 뜻하는 scrap과 배설물을 뜻하는 crap을 혼동했다) 제발 학생들이 내 말을 농담으로 여겼기를. 사람들을 사귀고 싶지만, 그저 사람들을 귀찮게만 하고, 그래서 나 자신도 괴롭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관심과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 그 친구를 괴롭히기만 하는 어린 아이, 그 같은 심정이 되고 만다.

김은미_감시_적동, 정은, 나일론_11.5×11.5×5cm×4_2005

느리게 깨달아간다.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 모두는 각기 다른 존재라는 것. 내가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점들을 받아들이고 내 삶과 작업의 주인이 된다.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또한 그 사람들을 마주 바라보기도 한다.

김은미_시작은 그 끝이 또 다른 시작을 만나는 곳에서 끝난다_스티로폼, 정은, 페인트_ 300×150×20cm, 15×7.5×1.2cm_2006

시간이 흐른다. 이제 막 유학 온 학생과 이야기하는 중에, 그가 서툰 영어로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본다. 늦은 밤 외국인 학생들이 작은 파티를 벌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 또한 그랬던 것을 회상한다. 외로운 타국 생활에 지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면서 만들어낸 수많은 실수들에 질려서,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서로의 얘기를 듣고, 서로를 다독이고, 그래서 내일을 견뎌낼, 다음주를 살아갈 힘을 얻었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아직 이곳에 속하지는 않은 채, 나는 여기에 있다. ● 내가 있는 이 곳에서, 마침내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집을 떠나 새로운 세계에 왔을 때 새로운 시작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시작을 매듭짓고 또 다른 시작점을 향해 가고 있다. 시작은 그 끝이 또 다른 시작을 만나는 곳에서 끝난다. 끝나는 듯 싶은 곳에서 이내 시작이 이어진다.

김은미_무슨 일이 있더라도_청동, 아크릴_17×10×10cm_2006

새로운 것에 맞닥뜨렸을 때, 거기에 곧바로 뛰어들기보다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새로움을 익혀가는 사이사이, 전부터 알던 친근한 것들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뒤를 바라보는 마음과 앞을 향해 선 몸 사이에서 갈 곳을 정해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 물론 알고 있다.

김은미_부재_청동, 적동, 정은, 마, 모래, 스티로폼_61×5×6.5cm, 9×46×25.5cm_2006

준비가 되어, 움직인다. 나를 향해 불어온 바람은, 내 남은 자취를 붙잡을 뿐이다. ●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내 목소리를 찾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내가 도전하는 문제, 그래서 해결한 것, 그리고 새롭게 묻고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작업을 통한 이러한 질문들이 나를 다음 작품으로 이끈다. ● 어렵고 궁금하게 느껴지는 갖가지 점들을 작업으로 표현하면서, 그 어려움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는 여유와 그 어려움에 처한 나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 내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나타낼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 대고 말하기 위해, 그래서 내 삶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이해 받기 위해. ● 항상 변화하는 나이고, 그 변화 과정의 순간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 내 작품이다. 이렇게 나를 원천으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움직임의 한 순간을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있다. 반대 방향을 동시에 제시하거나 원인과 결과를 한 작품 안에 보이는 등의 이중성 또한 가진다. 간단한 형태들이 무리를 이루어 하나의 작품이 되고, 각각의 형태가 가지는 작은 동작들이 모여 하나의 크고 분명한 동작을 제시한다. 이 생각들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의 재료, 기법, 크기, 설치 장소 등 적잖게 습관화되어 있었던 요소들에 새롭게 도전한다.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나타낼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작업 방식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기를 원한다. ● 한 번에 조금씩, 나를 허물고 다시 쌓는다. 새로 쌓은 것은 다시금 허물어야 할 것이 되고, 그렇게 나는 움직인다. 이 과정을 위해 스스로를 유연하게 한다. 동시에 이 지속적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항상 지켜나갈 수 있도록 심지를 다진다. 독립적인 동시에 주변과 연결될 수 있도록, 나를 지키고 허무는 것의 균형을 맞춘다. ■ 김은미

Vol.20061112b | 김은미 개인展